날로 먹을 수 있는 일은 날로 먹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도록(학급 경영 편)
도와달란 말을 건네기가 힘들다. ‘내 부탁을 귀찮아하지 않을까? 민폐 끼치는 건 아닐까? 아주 최선을 다하면 혹은 시간이 많이 걸리면 할 수 있는 일일 텐데 힘들어도 그냥 혼자 할까’ 도움 요청하길 주저하게 만드는 여러 생각들. 아이들에겐 “도와주면 나중에 도움받아. 돌고 돌아. 주는 것 받는 것 둘 다 중요해”라고 말하면서 정작 도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서툰 건 나다.
이러니 뭔가를 시키는 건 더 힘들다. 그래서 시키는 찝찝함에서 해방될 나름의 방법을 생각해냈다. 파우치에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접어 넣는다. 조회 필수템이다. 도움이 필요한(시킬) 일을 말하고 종이를 뽑는다. 뽑힌 아이가 그 일을 한다.
“OO이 이 짐 좀 교무실까지 가져다줄래?” 아이들은 뽑기를 참 좋아한다. 뽑힌 순간 비명을 지르다가도 운에 순응하며 다음번엔 자기가 뽑겠단다. “OO이 이것 좀 잘 보이는 곳에 붙여줄래?” “여기에 붙이면 될까요?” 질문하며 열심히 도움을 준다. 시키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지 몇 번 하니 쉽다.
오늘은 그냥 내가 짐을 들고 가려하는데 “들어드릴까요?”란다. 습관대로 “괜찮아”하려다 “그래”라고 했다. 친구와 대화하며 나를 앞서 무거운 짐을 들고 교무실로 향하는 그 모습이 예쁘다.
자꾸 교탁으로 슬금슬금 나오는 아이가 있다. “앉아”하려다 내가 하려는 걸 하고 싶나 싶어 “OO이가 해볼래?”라고 했다. 즐거워 보인다. 오해했다. 무턱대고 일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걸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걸 수도. 그 덕에 여유롭게 아이들을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시키는 것. 그래서 날로 먹을 수 있는 일들은 날로 먹는 것. 진심을 다해 고마워하는 것. 칭찬하는 것. 넘치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쓰고 부족한 나의 에너지를 아껴 밸런스를 맞추는 것. 중요하다. 그래서 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