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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Aug 21. 2022

실수해도 괜찮아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도록(학교 생활 편)

  3년 차에 학교를 옮기며 짐 정리를 위해 캐비넷을 열었다. 구석에 철제 옷걸이 하나가 보였다. 늦잠을 자 택시 타고 부랴부랴 출근한 날, 학교에 도착해보니 가방엔 옷걸이가 매달려있었다.


  내가 처음 만든 시험지가 공개되는 날, 여러 번 검토했건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과목 코드였다. 시험지의 과목 코드를 사회 과목에 배정된 숫자로 바꿔야 했는데, 예시로 기입된 숫자를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졸업식을 앞두고 반별로 개근상 대상자를 선별해야 했다. 왜인지 모르게, 우리 반은 다른 반에 비해 개근상 대상자가 많았다.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알았다. 1년 개근자가 아닌, 3년 개근자를 골라내야 했던 것이다. 졸업식 순서지에 개근자 명단이 나와 있는 바람에, 담당 선생님께 순서지를 다시 뽑는 수고로움을 안겨드렸다.


  이외에도 나는 다양한 실수를 했다. NEIS&생기부 담당자로서, 생기부 점검 시즌이면 엉덩이 혹은 팔뚝에 나도 모르게,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고 다녔다. 교사용 슬리퍼를 신고 퇴근했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발견하는 일도 흔했다. 이렇게 정신이 없으니 담임으로서 중요한 전달 사항을 빠뜨릴까 봐, 손바닥에 자주 종례 사항을 적어 다니곤 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는 절대 멀리 갈 수 없다.
                                                                             하루를 48시간으로 사는 마법(이재은 아나운서)



  타고나기를 허술한 면이 많은 내가 언제부터인가 완벽한 사람이 되려 했다. 담임이든 업무든 수업이든, 모든 면에서 완벽하려 했다. 약한 모습은 조금이라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울고, 얼굴이 다 정리될 때쯤 나와 밝게 웃어 보였다.


  원하던 대로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목표는 완벽이라서 스스로 끊임없이 부족한 점을 찾아냈다. 그걸 채우느라 분주했고, 채우고 채워도 부족한 것 같아 불안했다. 이런 삶의 태도는 두통으로 이어졌다. 일은 당연히 재미가 없어졌고 사소한 일도 힘겹게 느껴졌다. 국엔  그만두고 어졌다.


 올여름 방학, 나는 온전히 쉬었다. 다음 학기에 학교에 있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에, 예년처럼 수업 준비가 절실하지 않았다. 온전한 휴식의 끝에 원하던 회복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쉬는 것이 필요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읽고 싶은 책들을 맘껏 읽었는데, 그중 '어린 완벽주의자들(장형주)'이란 책을 소개하려 한다. 이 책을 통해 그간 내가 바라 왔던 완벽이 불가능한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처럼 완벽주의로 고통받는 분들이 있다면, 그간 삶의 방식과 일하는 태도를 점검하고 변화하는데 도움이 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대세에는 지장 없다." 작은 실수에도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세상에는 순리라는 게 있다. 작은 실수는 작은 결과를 만들고, 큰 실수는 큰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작은 차이가 모든 것을 바꾼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드라마적인 상상력이다. (129쪽)
지금 고민하는 문제에 정답은 없습니다.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 선택에 믿음을 가지면 그것이 정답이 되는 겁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에게는 후회가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세요. (118쪽)
노력하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덮어놓고 믿는 것은 현재의 행복을 갉아먹는 나쁜 습관이다. 많은 학생들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 학업 스트레스에 짜증이 늘고 잠을 설치면서도 그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노력이 현실을 잠식할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공부 열심히 하세요. 그렇지만 성격을 버릴 정도로 열심히 하지는 마세요."(147쪽)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로, 의대 학생상담센터에서 완벽주의로 고통받는 많은 학생들을 만나왔다고 한다. 책에는 완벽주의의 문제점과 완벽주의자의 특징 및 그 극복 방법 등이 설명되어 있다.


  올여름, 온전한 휴식의 끝엔 원하던 회복과 함께 가능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다시 시작할 용기가 찾아왔다. 실수해도, 설령 겁이 나 아무 말을 못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수업을 하고 찝찝해도,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단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을 가지고 나는 다시 학교로 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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