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평일 오후, 조용하고 차분한 공간을 지향한다는 한 카페에서, 보늬밤을 씹으며 시작된 글이다.
시즌마다 유행하는 식재료가 있는 것 같다. 샤인 머스캣, 명란, 아보카도, 흑임자 등등. 최근 들어 눈에 띄는 식재료는 보늬밤이다. 밤은 아는데. 보늬밤은 뭘까 궁금했지만, 모르면 잠 못 잘 정도는 아니라서. 보늬밤 케이크, 보늬밤 라떼를 먹으며 궁금해만 했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보늬는 밤이나 도토리 따위의 속껍질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 집 냉장고 속에는 지난주부터 생밤이 가득 담긴 지퍼백이 두 팩 있다. 밤이 줄어드는 속도가 느리다. 집에선 본체만체했으면서, 카페에서 6,000원짜리 보늬밤 조림을 시켰다니. 열심히 밤을 까신 아빠한텐 비밀로 해야겠다.
보늬밤 조림
잘 조려진 알 하나를 한 번에 입에 넣고 씹는데 진짜 맛있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부드럽다. 맛있다는 내 말에 친구가 말한다. "한 알에 1,200원이야." 맛있어야 했네. 보늬밤이라는 이름의 뜻을 알고 나니, 비싼 값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속껍질의 손상 없이 겉껍질만 벗겨 내고, 속껍질의 떫은맛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과정과 시간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슬로우 푸드라고 할 수 있겠다.
근데 생각해보니 좀 불공평하다.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지퍼백 속 생밤과 같은 나무에 달렸었을 수도 있는데. 중간 성장 과정에 따라 이렇게 대우가 달라지다니. 어쩌면 보늬밤이 되어, 사람들이 SNS에 공유하는 사진 속 주인공이 되었을 수도 있는 냉장고 속 생밤. 오늘 밤, 생밤이 좀 달리 보인다. 평범한 생밤이 어쩐지 나 같아서 더 정이 간다. 보늬밤만큼이나 맛있는 생밤 최고.
생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