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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있는. [스포일러 포함]

by 나린글
돌이킬 수 있는.jpg


별점: ★★★★★+★



작년 여름, 돌이킬 수 없는 이라는 소설이 유튜브 및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그때 당시 나는 작은북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클럽 멤버 중 한 명이 이 책을 추천했다. 추천해 준 멤버 본인 스스로도 평소 소설책을 잘 읽지 않아 꼭 도전해보고 싶다 하여 그 달의 책을 문목하 작가의 돌이킬 수 없는으로 정했다.


책 표지를 보고서 나는 디자인이 꽤나 산뜻하고 그것 때문에 내용이 가벼울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완전히 틀린 감상이었지만.


사실 나는 책을 읽을 때 항상 뭔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서 원래 소설책은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소설이 이렇게나 재미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해 준, 나에게는 참 고마운 책이다.


전반적인 줄거리는 윤서리라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초현실적인 국가적 사건들이다. 중심인물은 총 다섯 명. 윤서리, 정여준, 최주상, 서형우, 이찬이다. 다섯 명 모두 대한민국 한복판의 싱크 홀로 인하여 각각의 가슴 아픈 사연과 사건 사고를 겪었다.


이 소설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단순한 스릴러 혹은 추리 소설로 생각했다. 회 차를 거듭할수록 쏟아지는 수많은 반전과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느끼며 점점 책에 빠져들어갔다. 소설 자체를 특히나 공상 소설을 잘 읽지 않았던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을 준 책이다.


이 모든 게 다 그저 어떤 연구자의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인간의 욕정에 대한 혐오가 일었다. 책 중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들을 없애버리려는 것도 그저 그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그 하나였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과 다른 인간들을 혐오한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단순한 초능력 이야기와 흥미 유발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우리와 다른 누군가를 어떻게 다루고 생각하고 있는가?


이 소설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두 번째 주제는 바로 사랑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사랑의 종류는 세 가지 종류로 보이는데 아가페적 사랑, 우애적 사랑, 그리고 짝사랑의 모습을 띈 완전한 사랑이다. 최주상이 윤서리에게 헌신했던 아가페적 사랑은 나에게 있어 인간의 돌봄 욕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나보다 약한 것을 돌보거나 지키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찬이 가지고 있던 깊은 우애적 사랑은 경선산성을 이끌 게 했던 큰 원동력이었다. 그의 애정 덕분에 정여준이 끝까지 자기의 도리를 다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윤서리와 정여준의 서로를 향한 짝사랑은 완전한 사랑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위한 희생과 다정함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욕정을 표하거나 언질을 주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는 누구나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과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그 처럼 100년을 견딜 수 있는가?(원래 살 수 있는가?라고 쓰려했으나 그 100년은 결코 사는 것이 아니었기에.) 쉬운 결정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서리가 정여준의 마지막 유언 "무사해서 다행이에요."를 듣기 위해 시간을 10번도 넘게 돌렸던 그때 나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오열했다. 마지막 "왜겠어요."라는 대사조차 완벽했다.


이 소설에서 정말 많은 반전을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래도 내게 가장 반전이었던 부분은 윤서리가 서형우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전달하는 장면에서 신가영이 사실은 윤서리라고 밝힌 장면이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싱크홀의 실체와 윤서리가 어떤 방법을 써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의 능력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불편하게 하거나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대목은 크게 없었다. 다만 초반에 "파쇄자", "정지자", "복원자"라는 단어들이 조금 어색하게 들렸던 것은 사실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익숙해졌으나 처음엔 꽤나 오그라들었다. 그리고 후속작이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물론 열린 결말도 매우 훌륭하지만 중심인물을 교체하여 다른 이야기도 보고 싶기 때문에 이건 그저 독자로서의 바람이다. 산성에 있는 각 능력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또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가 매우 알고 싶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초능력에 대한 이야기라 내 경험과 크게 빗대어 볼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줄거리보다는 숨겨진 내용들에서 나의 경험을 비교할 수 있었다. 윤서리와 정여준이 했던 희생은 우리가 봤을 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랑을 하면 그 순간 그저 상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기에 그들의 마음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6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남편에게 나와 함께 캐나다를 떠나 한국에 가자고 말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좋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언어도 모르는 타지에 어떻게 망설임도 없이 갈 수 있었을까 싶다. 나 역시 지금 캐나다에 다시 돌아온 이유는 그저 이것이 남편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큰 일들은 생각보다 작은 일로 시작된다. 그들도 그렇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 하다 보니 저 지경에 이른 것뿐이다.


결론적으로 이 이야기는 스릴러의 모습을 띈 로맨스 소설이 아닐까 싶다. 다시 처음부터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감동을 느끼고 싶다. 숨겨져 있던 모든 이야기를 안 후에 초반 4장 정도를 다시 읽으면 감회가 완전히 새로울 듯하다. 다른 소설책들을 더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그 이후로는 1년 간 소설만 죽어라 읽었다.)


책을 마무리한 후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는데, 윤서리 그리고 처음으로 시간을 멈췄던 정여준은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윤서리는 언제까지 비원의 우두머리로서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 서형우가 죽었으니 국가적인 차원에서 초능력자들을 다루려 할 텐데 과연 어떤 갈등이 생길까? 윤서리의 계획은 과연 뭘까? 윤서리와 정여준은 계속해서 대립된 상태를 유지할까 아니면 결국엔 서로가 만나 같은 일을 반복할까? 내가 싱크홀에 빠졌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정도로 절박한가? 그 모든 것을 보고 난 후 나는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우두머리일까 아니면 한낱 졸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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