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기억들로 살아가는 인간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베끼는 존재였다. 엄마의 웃는 얼굴을 베꼈고, 아빠의 걸음걸이를 따라 했다. 유치원에서는 친구의 그림을 흉내 냈고, 학교에서는 교과서의 문장을 필사했다. ‘나’라고 불리는 이 껍데기는 사실 수없이 베끼고 따라 하고 흡수한 것들의 총합이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렇게 베끼다 보면 어쩐지 '나만의 것'이 생긴다는 점이다. 처음엔 서툴고 어색하게 따라 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나만의 색을 띠기 시작한다. 단순한 모방에 불과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희미하게라도 ‘내 것’이 된다. 마치 오래 쓰다 보면 손때가 배어 자신의 것이 되어버리는 물건처럼.
이름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작은 차이들이 모여 결국엔 ‘나’라는 모양을 만들어낸다. 창작이란 결국 완전히 무(無)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빛을 받아 나만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믿는다.
처음부터 빛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남의 궤적 좇고, 남이 남긴 자취를 따라 걷는다. 그러다 어느 날, 조심스레 내딛은 한 걸음이 나만의 자국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안심하고 따라 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베껴 쓰고, 사랑하는 뮤지션의 곡을 흥얼거리고, 어떤 날은 선망하는 사람의 말투를 흉내 낸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건 그렇게 시작되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런 ‘따라 하기’에 관대하지 않다. 누군가는 "왜 너만의 것을 만들지 못하냐"고 비웃고, 누군가는 "그건 네 것이 아니야"라고 손가락질한다. 물론 안다. 무분별한 표절과 진심 어린 모방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그 경계는 종이 한 장처럼 얇고도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건 마음 깊은 곳에 ‘존중’을 품는 일이다. 저작권이란 결국, 누군가의 결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 그가 만들어낸 빛의 결을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것. 그 사람만의 어색함과 아픔, 고유함을 가볍게 빼앗지 않는 것. 그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따라 하기 또한 아름다운 시작이 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내 글쓰기도 그랬다. 처음엔 누군가의 문장을 똑같이 옮겨 적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리듬과 문장 구조, 숨 쉬는 타이밍까지 따라 했다. 어떤 날은 그것이 너무 부끄러워 노트 한 권을 찢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흉내들이 결국 나를 키워주었다. 조금은 덜컥거리는 나만의 문장, 조금은 어설픈 리듬을 갖게 해 주었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한다. "진짜 나다운 글"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아마 세상에 완전히 순수한 것은 없다. 우리는 타인의 세계를 흡수하고, 조각조각 흉내 내며, 그러면서 ‘나’를 만들어간다. 다시 말해, ‘나’라는 것도 결국 수많은 ‘너’들의 합일지도 모른다.
따라 했던 경험은 우리에게 깊은 겸손을 가르친다. 나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흔적을 딛고 여기까지 왔는가. 누구나 처음엔 서툴렀고, 누구나 남의 것으로부터 배웠다. 그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모방한다는 건 그만큼 간절했다는 의미이니까.
저작권이라는 개념도 결국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너의 발자국을 본다. 너의 그림자를 기억한다. 그 존중의 선언이 없다면, 창작은 무너지고 세상은 점점 더 건조해질 것이다.
나는 다시 노트를 꺼낸다. 누군가의 좋은 문장을 따라 쓰고, 좋은 그림을 흉내 낸다. 그러면서 언젠가 나만의 작은 결을 발견할 날을 기다린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흔적을 따라 걷고 있는가? 그 따라 걷는 발자국 끝에는, 과연 어떤 당신만의 길이 펼쳐져 있을까? 모든 건 베끼기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부끄러워 말자. 그 시작을 품은 우리야말로, 진짜 창조를 꿈꿀 수 있는 존재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