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살기 싫다.
별점: ★★★★★
헛웃음이 흐흐 나왔던 소설. 선명한 오렌지빛과, 은은한 날카로움 사이에서 내 마음속 무언가가 시원하게 해소되는 책이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그 누구라도 영아와 같은 삶을 살아봤을 거라 생각한다. 치이고, 다치고, 부딪히고, 상처받고. 사람들이 싫었다가, 필요했다가, 혐오했다가, 사랑했다가. 영아는 그런 삶을 꾸역꾸역 살아낸 사람이다. 억지로 버티거나 과장되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그날 그날을 조용히 견디고, 때로는 냉소적으로 넘기고, 어떤 날은 아무 말도 없이 무너진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선택하지 않은 관계'가 있다. 그 안에는 타인과의 거리감, 외로움이라는 감옥 그리고 무엇보다 '말할 수 없었던 과거'가 깊게 배어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모든 걸 쥐어짜듯 울리지 않는다. 담담하게, 심지어 유머를 섞어가며 그려낸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깊게 남는다. 나는 영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씁쓸한 감정이 밀려왔다. 영아는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한 사람이다. 그게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영아가 드러내는 작은 변화들, 문득 찾아오는 분노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는 뜬금없는 따뜻함 같은 것들이 독자인 내게도 감정의 파편처럼 꽂혔다. 그리고 '빵칼'. 그건 일상에 녹아든 폭력의 은유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물건일 수 있지만, 영아에게는 스스로를 지키는 무기이자 상처를 베어내는 도구였다. 읽고 나니 문득 생각났다. 우리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 '빵칼'을 하나쯤은 쥐고 살아간다는걸. 어떤 날은 나를 방어하기 위해 어떤 날은 나조차도 나를 해치기 위해. 이 책은 단순히 먹먹하고 아픈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살아남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유머가 있고, 상처 위에 피어난 조심스럽지만 단단한 따뜻함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이 오히려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살아가는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버티기 위해 하루를 견뎌내는가? 우리 인간의 인생이란 참으로 덧없다. 태어나, 학교를 가고,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다 결국 죽는다. 영아도 마찬가지였다. 영아는 무엇을 보며 하루를 버텼을까? 독자의 입장에서 본 그의 인생은 너무나도 슬프고 고독했다. 가족도, 친구도, 사랑하는 연인도 없이, 남의 비위를 맞추며 하루를 보내는 삶. 영아의 인생은 괴롭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주변에 널리고 널린, 너무나도 흔한 인생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내 속의 답답했던 무언가가 해소되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영아는 더 이상 부끄러움도 규율도 체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의 시선보다는 나의 생각과 나의 가치관을 우선시하는 모습.
나는 영아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만 생각했다. "저렇게 살기 싫다." 한 번 사는 인생, 언제 죽어도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오늘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내일 죽는다면, 정말 아무런 후회 없이 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바라봐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오렌지와 빵칼'은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 마음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