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비밀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중 한 사람이 죽는 것이다.
별점 ★★★★★+★
"내 어머니는 항상 말하곤 했다. 두 사람이 비밀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중 한 사람이 죽는 것이라고."
책을 끝낸 뒤에도 여운처럼 머릿속을 맴돌던 문장이다. 누군가의 말 이지만, 동시에 이 소설 전체를 꿰뚫는 일종의 선언처럼 느껴졌다. 복선인 척, 아니면 진짜 복선이었던 작가의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누가 진짜고, 누가 거짓인지, 누가 희생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단언할 수 없는 서사 속에서 나는 숨조차 조심스러웠다.
프리다 맥파든은 이 소설을 단순한 심리스릴러 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살벌한 전개, 숨겨진 과거의 단서들, 인물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세밀한 묘사. 나는 책장을 넘기며 자꾸만 손끝이 싸늘해지는 걸 느꼈다. 내 방에 있는데도 저택 안 어딘가, 그 음침하고 고립된 공간 속에 내가 있는 것 같은 착각. 의심이 증오로, 연민이 두려움으로 변해가는 그 순간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감각.
무엇보다 이 소설은 ‘진실’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보여준다.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모두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어떤 진실은 밝혀지기보다는 묻혀야 하고, 어떤 기억은 꺼내기보다는 봉인돼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트리샤가 끝내 지켜낸 그 말 한 마디가,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마지막 자물쇠이자 열쇠였다.
작가의 경력이 화려해 호기심과 함께 시작하게 된 책이 이렇게나 흥미진진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책 자체는 짧은 편이다. 마음만 먹으면 한 자리에서 금방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현실의 주인공은 트리샤와 이선, 과거의 주인공은 에이드리안 박사, 루스 그리고 EJ라는 이름 모를 남성이다.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며 인물과 인물 사이의 연관성, 복선 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는 단지 누가 범인인가를 가리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기억과 진실, 선택과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EJ라는 이름 모를 인물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그는 단순히 ‘헤일(에이드리안) 박사을 협박한 환자’라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과거에 상처 입고, 그 상처를 끝내 제어하지 못한 자의 파편처럼 등장하며, 진실이라는 것이 때로는 사람을 파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닥터 헤일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독자인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누구의 시선을 따라가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진실은 단 하나일 텐데, 각자의 입에서는 너무도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무서운 건 단순히 살인이나 음모 때문이 아니다. 바로 그 믿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자신조차 속이며 살아가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트리샤와 이선, 둘 중 누구를 믿어야 할지조차 명확하지 않던 순간들, 그리고 끝내 드러난 충격적인 진실까지. 독자는 인물들의 내면을 헤집고 들어간 그 끝에서 결국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내 어머니는 항상 말하곤 했다. 두 사람이 비밀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중 한 사람이 죽는 것이라고.
그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끝까지 감추어야 했던 것, 말할 수 없었던 이유, 그리고 선택한 방식. 그녀의 선택은 누군가를 살리고 또 누군가를 죽이는 힘을 가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침묵은 가장 큰 고백이 되었고, 가장 큰 복수이자 구원이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이 이야기는 끝났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말을 아끼고, 누군가 의심을 품고, 에이드리안 박사의 목소리가 음성 녹음기 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 진실은 밝혀졌지만, 여전히 꺼림칙한 여백을 남기는 이야기. 그리고 그 여백이야말로 이 소설을 진짜 심리스릴러로 만들어준 정수였다.
결국, 이 소설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믿고 있는가? 그리고 그 믿음은 정말 진실에 근거한 것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