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살짝 열어둔 창문 틈으로 들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누웠다.
팔다리가 멋대로 있게 놓아두고
몸으로 그저 소파의 푹신함을 느끼는 채로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로지 빗소리에 집중한 상태였다.
평화로운 시간, 한 시간 정도 이렇게 누워있어도 된다는 안도감에
행복마저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시간은 나에게 사치였다는 것,
그리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런 순간을 너무나 갈망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순간을 갈망했던 때는 아이가 어렸을 때였다.
한 순간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아이를 남편이나 부모님께 잠깐 맡겨두고 좀 쉬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겨우 얻은 한정된 시간에는 멍 때릴 여유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나를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고군분투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조금 크고 스스로 등하교를 할 수 있게 된 순간에도 이런 시간을 여유롭게 갖긴 힘들었다.
무엇보다 아침 7시는 아이가 등교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고, 8시 좀 넘어 배웅하고 나면
서둘러 집 치우고 나만의 일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오프라인 수업이 병행되었다. 그래서 매 순간 새롭게 발생하는 상황에 대처해야 했다. 변화되는 상황은 아이의 등하교의 문제이기도 했고, 남편의 재택근무 때문이기도 했고, 나의 온라인 수업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듯 매일 다른 상황에 그저 멍하니 있는 시간은 사치였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남으면 빠진 것은 없는지, 미리 대비할 것은 없는지 확인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아니 어쩌면 얼마 전부터 달라진 거 같다.
작년 이맘때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팬데믹 사태에 대한 적응'을 해버린 결과일 것이다.
격주로 학교를 가기에, 매주 달라지는 아이의 기상시간과 등교시간에도 이제야 적응이 되어버렸고,
남편의 회사도 큰 상황이 아니면 재택근무를 하지 않고
나 역시 오늘 있을 일들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생긴 여유였다.
상쾌한 빗소리,
아무것도 없는 하얀 천장,
그리고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행복감.
덕분에 그간 이 작은 순간마저 갖지 못할 만큼 바빴던 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살짝 대견하기도 했다.
잘 견뎌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오래 있진 못했다.
여유를 즐긴 지 얼마 안 되어서
일어나 요가 매트를 마루에 폈다.
아마, 그간 여유를 즐기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인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