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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Feb 24. 2020

밤과 잠의 아이, 마꼬

2019. 12. 11(수)

토토는 언제 어디서나 잘 잠드는 사람이었다. 어디서든 잘 자는 것은 유순한 성격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어른들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토토의 성품을 보자면 맞는 말 같기도 했다. 함께 살아보니, 마음이 어렵거나 짜증 나는 일이 생기면 잠이 모든 일의 해결책이 되는 것처럼 조용히 방에 들어가 잠을 자곤 했다. 결혼 전에 데이트를 했을 때 토토의 이런 점 때문에 놀란 적이 있었다. 하루는 봄볕이 따스하던 날 둘이서 한강에 놀러 갔는데, 잔디밭에 눕더니 햇볕을 쬐며 혼자 잠들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사방이 탁 트인 야외에서 이렇게 곤히 잠들 수 있을까 싶었는데, 토토는 그냥 그게 가능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늘을 보고 누워서 깍지 낀 양손을 베고, 다리는 쭉 뻗어 교차한 채 토토는 오랫동안 푹 자고 일어나 볼멘소리를 하던 나에게 미안한 듯 웃었다.



오늘은 병원에서 입체 초음파를 보기로 했다. 이전에 봐왔던 흑백의 초음파 사진과는 다르게 마꼬의 얼굴을 볼륨감 있게 볼 수 있다고 해서 기대감을 가지고 병원에 갔다. 마꼬의 태동은 낮 동안은 잠잠하고, 해 질 무렵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활발하다. 나도 오전 시간보다는 오후부터 일에 집중이 잘되는 편인데, 마꼬도 나를 닮아 올빼미형인 걸까. 토토에게 마꼬가 활발히 움직이는 시간을 얘기했을 때, 나의 밤을 새우며 작업하던 습관을 걱정하던 토토가 마꼬마저도 그럴 수는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동안 토토는 검진 예약일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히 병원에 함께 가주었다. 오전에는 병원에 동행하기 위해서 반차를 냈지만 오후에는 일을 하러 가야 하므로, 진료예약은 늘 오전으로 잡아야 했다. 문제는 아침잠이 많은 마꼬가 초음파를 볼 때마다 잠든 모습만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전문가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니까 마꼬의 얼굴을 꼭 보고 싶다고,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 걸 먹으면 태아가 활발히 움직이기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었지만, 나는 평소에도 초콜릿 우유를 좋아했고, 내가 좋아하는 걸 먹으면 활발히 움직일 때도 있었으니 집 근처 편의점에서 초콜릿 우유도 사 먹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효과와 달리, 초음파 검사실에 들어갔는데 마꼬는 영락없이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배를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 몸을 옆으로 돌려보라고 해서 누운 방향을 바꿔보기도 하고, 밖에 나가서 걷다가 오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지만 마꼬는 여전히 구석에서 웅크리고 잤다. 마치 얼굴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꼭 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말이다.



겨우겨우 얼굴의 반쪽만 나온 사진을 받았다. 그것도 간신히 찍은 거라 그마저도 감지덕지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초음파실 밖에서 몸을 움직이고 왔더니, 자세가 바뀌기는 했던데... 이제는 양손 바닥을 뒤통수에 댄 채, 양 팔꿈치로 얼굴을 가리고 누웠더라. 이 십 대의 토토가 봄볕 아래 한강에서, 종종 집에서 낮잠 잘 때 취하던 자세와 영락없이 똑같아서 웃음이 났다. 받은 사진에는 절반의 얼굴형과 코랑 입술 주변부만 보였다. 얼굴형이 동그란 것이 꼭 찐빵 같았다. 주변에 보여줬더니 얼굴형만큼은 나를 닮은 것 같다고 하더라. 아... 외모는 나를 안 닮아도 괜찮으니 부디 성격만은 토토를 닮아줬으면. 마꼬야, 엄마는 욱하는 성격에 고집불통이라서 곤란해... 제발 아빠를 닮아줄래.



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을 보내면 마꼬도 다른 아이들처럼 얼굴을 잘 보여줄까? 산모의 일상 패턴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 어쩌면 토토처럼 어디서나 잘 잠드는 유순한 성격이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르지... 이목구비가 또렷이 찍힌 사진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초음파를 볼 때마다 늘 잠들어 있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얼굴이야 언젠가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때까지 토토와 나를 조금씩 닮아가며 쑥쑥 자라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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