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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Feb 28. 2020

12월, 연희동 사진관

2019. 12. 20(금)

결혼기념일에는 사진관에 간다. 우리는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우리의 모습을 기록하기로 했다. 이 날 찍는 사진은 단 한 번의 촬영으로 단 한 장의 사진만 남은 흑백 폴라로이드. 필름이 단종되어 가는 추세라 언제까지 같은 컨디션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올해도 흑백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사진관에 문의해보는 일로 우리는 결혼기념일을 맞이하곤 한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이듬해에 포카를 알게 되었다. 보호소의 지독한 추위를 피해 방 한편을 내어준 임시 보호자와 평생 가족을 찾던 아기 강아지가 가족이 되기까지는 약 20여 일의 고민이 시간이 걸렸다. 가족이 되기 위한 보호소 서류에 사인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 찾아왔다. 우리는 첫 결혼기념일을 기록하기 위해 아기 포카와 사진관에 갔고, 두 번의 가족사진을 찍었다. 포카랑 셋이서 한 번, 우리 부부 둘이서 한 번. 포카를 잠시 실내 기둥에 묶어두고, 우리 둘이 손을 잡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 포카는 분리불안으로 사진관이 떠나가라 울었다. 그런데 포카와 찍은 사진을 받아보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흑백 사진인 데다 둘 다 어두운 톤의 옷을 입고 간 터라 검은 털을 가진 포카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포카의 반짝이는 두 눈망울로 귀여운 포카의 모습을 겨우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하필 낯선 공간에 긴장할 강아지를 달랜다고 챙겨갔던 볶은 검은콩(당시 포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었다)도 떨어트려서 사진의 좌측 하단 끄트머리에는 검은콩 한 알도 보였다. 사진을 받아보고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우리 부부는 이 날의 해프닝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날 이후로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는 두 가지의 원칙을 세웠고, 지금까지 쭉 지켜오고 있다. 하나는 포카를 위해서 밝은 톤의 옷을 입을 것, 다른 하나는 사진은 꼭 결혼기념일 당일에 찍을 것. 토토는 두 번째 원칙을 지키기 위해 결혼기념일마다 착실히 휴가를 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사진관에 다녀왔다. 사진관 사장님은 우리 세 가족을 기억하시고는, "강아지가 많이 의젓해졌네요!"라고 하셨다. "그러게요. 벌써 다섯 번째니까요. 앞으로 스무 번은 더 같이 찍고 싶어요."라고 말하려다가 어쩐지 울컥하는 마음에 그냥 "고맙습니다"하고 웃고 말았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이별의 'ㅇ'자만 상상해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내년에는 마꼬도 있을 테니, 넷이서 사진을 찍게 되겠지. 임신 소식을 들은 사장님은 만삭 사진은 따로 찍지 않은 우리를 위해 자연스럽게 배 부위에 손을 올려놓으라는 팁을 주셨다.



여느 해보다도 사진 속 표정이 밝다. 이제는 포카도 일 년에 하루뿐인 사진관 방문을 낯설어하지 않는다. 셋의 표정이 밝은 이유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진 않았지만, 마꼬가 주는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80여 일의 기간 동안, 누군가 곧 곁에 올 거라고 짐작하고, 내년의 약속을 미리 하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묘하게 설렜다. 내년 결혼기념일에 찍을 사진은 더 풍성한 느낌이 들 것 같다. 포카를 위해 밝은 톤의 옷을 입어야 하는 가족이 하나 더 늘어날 테니, 사진관에 가기 위해 채비하는 시간도 더 늘어나겠지. 넷이서 한 장, 단 둘이서 한 장. 우리는 내년 겨울에도 연희동 사진관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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