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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Feb 25. 2020

주윤발은 아니고요,

2019. 12. 18(수)

마꼬는 시부모님의 첫 번째 손주가 될 예정이다. 어머님은 오랫동안 우리 부부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기를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토토가 임신 소식을 시가에 알렸을 때, 어머님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2014년도에 했던 우리의 결혼식도 시가에서는 처음 있던 일이었기에, 시가 어르신들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대하는 바가 크셨다. 그런데 개혼에 이어 아이까지 처음으로 가지게 되다니, 다시 마음에 부담이 생기더라. 시부모님은 임신 소식을 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꼬의 이름으로 지을 돌림자가 정해져 있다며,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지으려고 준비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토토는 본래 부모님이 지어주셨던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기에 부모님의 작명 센스를 믿을 수 없다며, 우리 아이의 이름은 우리가 직접 짓기를 원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 특히 토토는 시부모님이 이름을 지어오시지 않도록 지금까지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마꼬의 성별을 알기도 전에 이름을 먼저 지어놨다. 토토는 몇 해 전, 문소리 배우님을 일로 오랫동안 뵈었던 적이 있었다. 함께 일하던 기간 동안 배우님의 성함이 '문 씨 집안과 이 씨 집안의 작은 아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후로 언젠가 우리도 아이를 낳는다면 배우님의 성함처럼 예쁜 뜻을 담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고 했다. 또, 한국에서 아이는 태어나서 부계 쪽의 성을 따르게 되는데, 이점을 전복시키기 어렵다면 여러 페미니스트들처럼 모계의 성을 이름에 넣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주 씨 집안의 토토와 윤 씨 집안의 나. '주윤'의 뒤에 어떤 단어를 넣어야 이름 석자를 완성할 수 있을까... 막상 고민을 해보자니 어려웠다. 



'주윤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름을 윤발이라고 지을 판이었다. 하지만 당장 급하게 결정 내려야 할 일은 아니었기에 주윤발에 대한 고민은 점점 잊혀갔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길에서 토토의 팀장님과 밤 풍경을 보다가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윤슬.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말이라고 했다. 토토는 그 단어가 품은 이미지와 뜻이 너무 아름다워서 아이의 이름은 꼭 이걸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중성적인 느낌이 든다는 점에서 나도 마음에 들었다.



토토는 마꼬가 태어나자마자 동사무소에 가서 우리가 지은 이름대로 출생 신고를 하고, 이름을 호적에 올려버릴 거라고 했다. (알아보니 요즘은 출생 신고가 가능한 병원이 있었다. 마꼬가 태어날 병원에서도 출생신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부모님들이 이런 점을 서운해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평생 불릴 이름에 '돈'자 돌림자를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토토가 시가 어르신들의 기대를 한목에 받는 장남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토토는 오늘도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 기차 안에서 마꼬를 만났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우리가 지어놓은 마꼬의 이름, 주 00과 윤 00의 슬기로운 아이가 달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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