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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Feb 29. 2020

볶음밥은 언제나 일 등

2019. 12.  23(월)


창원과 부산에 다녀왔다. 출산하기 전에 친구 H를 만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H와 나는 대학 첫 학기에 처음 만났고, 토토는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H는 사교성과 재치를 모두 갖춘, 모두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에너지가 넘치고, 뭐든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푸릇푸릇했던 시절을, 토토와 나는 H를 사이에 두고 보냈다. 그러던 이 십 대의 말, 우리 둘은 H와 합석한 자리에서 만났다. 간혹 일터에서 사회생활의 쓴맛을 보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철 지난 객기를 부리기도 하는, 이제야 철없는 티를 겨우 지우던, 어른이 되고 싶으면서도 서른을 맞닥뜨리기엔 두려웠던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가까워졌다. 그때는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인연이 되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나 일 때문에 경남에서 지내는 H는 창원과 부산의 곳곳을 꿰뚫고 있었다. 우리는 H를 따라 걷고, 걷고, 먹고, 걷고를 반복했다. H의 연인, D 씨는 고맙게도 그런 나를 걱정하며 연신 "언니, 괜찮아요?"하고 물어봐주었다. 이때가 아니면 마음껏 다니지 못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고, 예쁜 것들을 구경하는 시간을 보냈다. 임신 주수가 꽤 지났으므로 만삭 여행이나 다름없었는데,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해외 휴양지로 떠나는 것도 좋았겠지만, 앞으로 마꼬가 태어나면 가지기 어려울 친구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선택한 여행이었다. 뭐가 먹고 싶냐고 묻는 H의 질문에 메인 요리는 뭐든 상관이 없지만(아! 돼지고기만 빼고...) 볶음밥을 먹을 수 있는 메뉴라면 좋겠다고 말했고, 친구들이 여러 음식점을 돌며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곁에서 온갖 종류의 볶음밥을 맛볼 수 있었다. 



마꼬는 볶음밥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애가 참 소박하달까. 볶음밥을 먹고 나면 뱃속에서 뛰듯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부산의 깡통 시장에서 걸었던 떡볶이 골목에서는 몇 번이고 떡볶이를 사 먹었다. 물이 아닌 무로 맛을 낸 이가네 떡볶이를 먹을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일 년 전부터 먹어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부산에 올 일이 없어서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 동짓날에는 팥죽이 먹고 싶었는데, 마침 떡볶이 골목 옆에서 단팥죽을 팔길래 넷이서 간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새알이 퐁당퐁당 들어간 팥죽과 식혜를 사 먹었다. 시장 골목 가득한 사람들이 동짓날이라고 옹기종기 모여서 등을 굽힌 채 팥죽을 떠먹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우리는 늘 만나면 술만 마셨었는데, 팥죽과 식혜를 먹고 있자니 기분이 새로웠다. 마꼬가 태어나 자라면, H를 소개해주고 싶다. 그럼 H는 그때도 마꼬가 뭐를 좋아하는지, 뭘 먹고 싶은지 물어봐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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