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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튜디오 포카 Feb 29. 2020

2019년의 마지막 날

2019. 12. 31(화)

친구들과 점심에 약속이 있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지각을 했다. 친구들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을 하고, 택시를 탈까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게 보이더라. 버스 정류장까지 50미터쯤 되는 거리였을까. (나름의) 전속력으로 달렸고, 무사히 버스에 탑승했다. 정말 오랜만의 달리기였다. 무척 짧은 거리였지만 심장이 가쁘게 뛰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내년이면 마음껏 달릴 수 있겠구나. 물론 마꼬와의 만남의 과정은 고되겠지만, 아이를 낳고 몸이 지금보다는 가벼워질 거라고 상상하니 한편으로는 기뻤다. 출산 예정일까지 62일이 남았다. 



저녁에는 토토와 과자를 쌓아놓고 먹으며 신년 계획을 세웠다. 둘이서 신년 계획을 세우는 이 연례행사는 토토의 아이디어로, 연애시절부터 9년째 해오고 있다. 똑같은 노트를 한 권씩 나눠 가지고, 신년의 계획은 두 가지 타입으로 적어 내려간다. 한 페이지에는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 20가지를, 다른 페이지에는 함께 의견을 나누어하고 싶은 일 20가지를 상세히 적어 내려간다. 그리고 그 해 마지막 날에 얼마큼 실천했는지 같이 체크하는 시간을 가진다. 성공한 계획에는 동그라미를, 일정 부분만 실행에 옮긴 일이나 노력했던 일에는 세모를, 시도도 못했던 일이나 이루지 못한 일에는 엑스 표시를 한다. 예를 들어, 나의 2019년 계획 중 하나는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해보기'였는데, 정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으니 동그라미를 표시했고, 토토와 함께 하기로 한 계획 중에서는 '월말마다 찜질방 같이 가기'가 있었는데 한 번도 가지 않았으므로 엑스 표시를 해두는 식이다. 평가를 위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절반 가량만 이루어도 열심히 한 해를 보냈다고 서로를 칭찬을 해준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의외로 참 길어서, 매 해마다 어떤 계획을 세웠었는지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게 된다. 지난 연말에 내가 뭘 원했고, 어떤 것을 해보고 싶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고, 그때와 지금의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2020년의 토토와 함께하기로 한 계획의 1번은 '마꼬와 (건강히) 잘 만나기'다. 예전처럼 지리산 등반이나, 봄에 도다리 쑥국 먹으러 가기 등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계획보다는 마꼬를 위해서 함께 처리해야 할 실무적인 일과 마꼬 케어로 포카에게 소홀해질까 봐, 포카를 배려하기 위한 항목이 늘었다. 토토와 나는 부모가 되는 과정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또 토토와 신년 계획을 세울 때도 들었던 생각인데, 내년에는 올해 가졌던 걱정들을 좀 덜어내고 용감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급해하지 말고, 뭐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새해는 드라마틱하게 새로운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신년도 매일의 나날 중 하루이고, 이 날을 새롭게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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