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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Oct 02. 2019

엄마의 4시간

1984년생 엄마가 2014년생 아들에게

4년 간 이어오고 있는 문학회 모임이 있단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엄마가 독서 모임에 4년째 나가고 있다? 이건 엄마 인생에서 기적에 가까워. 엄마는 호기심에 추진력이 강해서 이것저것 건드리는 일이 많지만, 인내심과 지구력이 부족하니 뭐 하나 제대로 끝내는 건 없거든. 도서관 평생교육 프로그램 중 끝까지 마치지 못한 과정이 수두룩한 엄마에게 이 모임의 지속성은, 스스로에게도 예상밖인 셈이지.    


문학회 회원은 총 8명인데 꼬박꼬박 모임에 나오는 회원은 5명 정도야. 36살인 엄마가 막내고, 엄마 바로 위로 42살 언니가 하나 있고, 나머지는 모두 50대야. 총무를 맡은 회원 딸이 엄마와 동갑이라 하니,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한단다. 같이 놀아주는 것에 말이야. 사실 엄마는 불량 회원이야. 책도 읽지 않고 참석하거든. 뭐, 40대 언니도 책 읽는 거에 그리 성실하지는 않아. 단호한 독서모임이라면 진작 잘렸을 테지만 다행히 생명은 부지하고 있어. 엄마의 엄마뻘인 나머지 세 분은 매번 ‘독서 노트’까지 챙겨 오셔서는 기억에 남는 문구를 읽어 주시곤 해. 엄마는 그 문장에 무임승차하며 마음을 내어준단다.    


2시간 정도 책 나눔 시간을 가진 후 우린 다같이 밥을 먹으러 . 어쩌면 이게 진짜 목적일지도 모르지. 청국장, 파스타, 동태찌개, 돈까스, 곱창전골, 옹심이 칼국수, 곤드레밥...... 3월 어느 봄날, 42살 언니 소개로 읍내 성당 맞은편에 위치한 예쁜 레스토랑에 갔는데 ‘불량회원 2호’인 그 언니가 그러더구나. 

“저 이 가게 처음 온 날, 차를 마시는데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이런 유럽 감성을 진천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나 뭐라나. 특히나 이 가게 모든 식기들은 주인이 오랫동안 모은 ‘집기’라며 감격스레 설명해주는데 주막, 포차, 방갈로 등 허름할수록 흥분하는 엄마는 도저히 감동 포인트를 못 잡고 음식만 열심히 먹어댔지.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걸 느끼는 타인의 감정은 어제나 흥미로워.     


‘문학회’라고 하면 고상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을 텐데 우리 문학회는 엉성 그 자체야. 

“아니, 그거 있잖아, 그거.” 

“그게 뭔데요?” 

“아니, 왜, 우리 그때 읽은 것 중에 4시간은 일하고 4시간은 뭐하고 하는 거” 

“아~ 그거! 4시간은 뭐하라더라?” 

이런 대화에 이르면 엄마는 이제 휴대폰을 들지. 검색창에 [4시간 일하고 4시간]이라고 대충 검색어를 욱여넣어. 몇 번의 조합 끝에 답을 찾은 엄마가 소리쳐. 

“스콧니어링 444법칙이래요! 생계를 위한 노동 4시간, 지적인 활동 4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 하며 보내는 4시간이면 하루가 완벽해진다!” 

그제야 모두 맞아, 맞아 손뼉을 치며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간단다.     


언제 한 번은 한 회원이 ‘히라버 시간’이라는 책이 좋다고 추천을 하는 거야. 그런데, 엄마가 아무리 검색해도 ‘히라버’ 어쩌구 하는 책은 없는 거지.

“히라버 시간 맞아요?” 

“응, 맞아, 히라버 시간” 

“히라버 시간이라는 건 없는데......” 

알고 보니 ‘희랍어 시간’이었던 거 있지?      


언제나 이런 식이야. "<아랍어 수업> 책 쓴 서강대 무슨 카톨릭 신부 있잖아"처럼 누군가 ‘무슨’을 던지면 그 빈약한 단서를 가지고 각자 손짓 발짓해가며 기억 회로를 헤집는 거야.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

“한강 작가 상 받은 거, 부커부커 상이던가?” 

“부부부... 부 뭐였는데.” 

“한강 아빠가 유명한 조선대 교수래요.” 

“아빠 이름이 한 뭐시기겠지?” 

이런 대화가 이어지니 다들 답답해 죽는 와중에 한 회원이 깔깔대며 넘어가. 

“아니, 우리 오랑우탄 같아. 다들 우가갸, 우가갸 난리네” 

그렇게 모임이 끝나면 대충 기워진 너덜너덜한 기억 보자기 하나씩 들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엄마와 아빠는 2017년 가을, 결혼 생활을 잠깐 쉬기로 하고 ‘휴혼’ 기간에 들어갔단다. 너도 기억나지? 평일 동안 ‘아빠 집’에서 지내다가 주말이 되면 ‘엄마 집’으로 왔잖니. 엄마가 서울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 4년간 결혼생활했던 충북과 안녕, 하던 그때. 충북과 관련된 모든 인연은 거기서 끝이 났어. 가끔 술 한 잔 하던 동네 언니도, 엄마 아지트였던 읍내 카페도, 네 아빠이자 내 남편이었던 한 남자와의 인연도 모두 끝난 것처럼 보였지. 2주일에 한 번 모였던 문학회도 물론. 정말로,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 이 모든 것들 말이야.     


우리는 때로 예기치 못한 여행을 하더라. 평야를 지나 내를 건너고 산을 오르며 앞으로 나아갈 뿐. 마침내 바다도 건너겠지. 다시 땅을 밟는 순간. 내가 넘어졌던 그곳과 나는 다시 만나기도 해.     


1년 3개월 만에 만난 충북은 그대로더구나. 도시는 멈추고 엄마만 시간 여행을 하고 돌아온 느낌이었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은 파리의 밤거리를 홀로 걷다가 홀연히 나타난 푸조에 얼떨결에 몸을 싣는단다. 길이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1920년대의 파리야.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밤 12시만 되면 파리의 밤거리에는 푸조가 나타나고, 길은 매일 밤 1920년대의 파리로 돌아가 헤밍웨이, 달리, 피카소 등 전설적인 예술가들과 시간을 보내.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야. 노을, 길고양이, 버스킹 하는 밴드, 푸드 트럭 뭐 다양하지. 혹시나 찾아가 본, 오래전 들렀던 국밥집과 골목 어귀에서 마주치는 기분도 굉장하고 말이야. 이런 것을 많이 발견할수록 우리 삶은 행복해질 거야. 금요일 오전 10시 도서관, 여전히 자리하던 문학회를 다시 만난 엄마처럼. 엄마는 그저 돌아오기만 하면 되었단다.     


문학회 다음번 책은 <행복의 기원>이야. 그날은 엄마도 오랜만에 입을 뗄 수 있겠다. 대학원 동기가 이 책을 선물해줬는데 단번에 읽었거든. 서은국 교수 저자 강연도 직접 들었고 말이야. Vaillant의 인생성장보고서에 의하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하며 행복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대.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기원>에서 기존 통념을 뒤엎는단다. ‘행복은 모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여야 할 목표가 아니다. 뇌가 행복감을 느끼게 설계된 이유는 생존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행복에 대해 연구한 그는 질문을 던지지.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래.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 바로 이 두 가지. 음식, 그리고 사람. 음식과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대화가 함께 하지. 언제, 어디서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디지털 사회는 오히려 인간을 고립되게 만들고 있어. 직접적으로 마주하지 않아도 네트워크를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인간은 먹고, 마시고, 웃고, 울고, 대화하고, 논쟁하는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실존한단다. 때론 원치 않는 저마다의 여행을 하는 우리를 쉬게 해주는 결국, 타인과의 조우,라는 걸 기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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