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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Oct 11. 2019

엄마의 조각

1984년 생 엄마가 2014년생 아이에게

오늘 아침 7시, 엄마는 울면서 잠에서 깼단다. 엄마는 매일 밤 다양한 꿈을 꾸는데, 아득해진 정신이 돌아올 때쯤 흐느끼고 있는 엄마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어. 오늘처럼 말이야. 음, 별 꿈은 아니었어. 여느 때처럼 엄마와 너는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고, 엄마가 이내 네 어깨를 감싸 안으려 했지. 우리는 꼭 손을 잡거나 엄마가 네 어깨를 감싸 안고 걷잖니. 너무나 당연한 일상적인 모습이었어. 그런데 분명히 엄마 허리춤께 와야 할 네 어깨가 평소보다 너무 높은 거야. 어깨동무를 해야할 정도로. 놀라서 옆을 보니 엄마 눈높이에 네 얼굴이 있었어. 엄마는 정말이지 당황했단다. 언제나 엄마는 너를 내려다보았고, 그곳에 네 맑은 눈동자가 있었으며, 우리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엄마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너를 바라보아야 했으니까.


“너 언제 이렇게 컸어?” 엄마는 네게 물었고 너는 짜증이 섞인 말투로 대꾸했어.

“원래 컸어.”

그곳은 운동장 스탠드였고, 엄마는 스탠드 한 칸을 성큼 올라섰어.

“아니야, 원래 꽃사슴 너 이만했어.”


아래 칸에 있는 널 향해 말하는데 눈앞에 있는 네가 너무 멀게 느껴짐과 동시에 싸한 느낌이 엄마를 덮쳤고, 엄마는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고 만 거야. 되돌릴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시간의 흐름. 꿈속의 너는 불쑥, 성인이 된 거야. 어제까지 너를 품에 안고 뒹굴던 침대 위 모닝 인사도, 복숭아 솜털 같은 부드러운 네 뺨을 엄마 손등으로 부비던 체온도, 네 작은 가슴에 귀를 대고 듣던 네 심장 소리도, 엄마 목에 매달려 웃던 네 얼굴도, 엄마 품에 안겨 마음껏 흩뿌리던 네 울음도, 다시는 붙잡지도, 경험하지 못할 신기루가 된 거야. 잠에서 깨어보니 엄마는 울고 있었고, 갑자기 네가 떠난 엄마 가슴은 여전히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뻥 뚫린 느낌이었지. 이토록 물리적인 느낌이라니 참 지독하더라.


몸서리 칠 정도의 상실감을 느낀 엄마와 다르게 오늘 아침 넌 유달리 상기된 얼굴로 엄마에게 그랬지.

“엄마! 어제 ‘레이디버그’ 꿈꿨어. 대박이지?”

“엄마는 어제 슬픈 꿈을 꿨어.”

“무슨 꿈?”

“꽃사슴이 어른이 된 거야.”

“그게 왜 슬퍼~ 어른이 되면 좋은 거지~ 엄마, 아빠처럼.”

“좋지. 좋은 건 맞는데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 품을 떠나야 하거든.”

엄마는 말하면서 울컥, 또 울고 말았고, 너는 ‘으이그’ 하는 표정으로 한 마디 던지더라.

커서도 엄마, 아빠랑 놀아줄게!”


꿈의 여운을 털어버리고 싶어 엄마 친구들에게 꿈 이야기를 전했는데, 파주에 사는 엄마 친구는 어제 딸아이 소풍 도시락을 싸다가 펑펑 울었다네. 엄마가 어릴 때엔 도시락을 싸다녔어. 당시에는 일본 제품인 ‘코끼리표' 보온도시락이 제일이었는데 점심때까지 밥과 국이 뜨끈하게 유지되었거든. 학기에 한번 싸는 소풍 도시락도 엄마는 전날부터 긴장되는데, 엄마의 엄마들은 어떻게 매일 아침 두세 명의 도시락을 싸셨을까? 다행히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비로소 급식이란 것이 시행됐고, 그 시대 엄마들에게는 혁명이었지. 그런데  ‘파주 이모’는 급식이 맛없어서 못 먹겠다고 한 덕에 고등학생 때까지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었대.


이 파주이모가 어제, 10살 딸아이 소풍 도시락을 준비하다가, 반찬 세 개씩 만드느라 정신없는 엄마한테 빨리 도시락 싸라고 짜증 내는 교복입은 자신과, 급하게 감자 볶아서 도시락에 챙겨 넣던 친정엄마 모습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그냥 쏟아지더래. 자식을 키우는 일은 행운이야. 20년 전의 부모 앞으로 나를 데려다 놓으니까. 우리들 부모가 참고 인내하던 시간을 상기하며 우리 역시 자식을 길러내는 거겠지. 그때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했지, 하는 경외와 감사를 느끼며.


꽃사슴아, 엄마가 결혼하던 날, 엄마의 아빠가 우셨대. 서울에서 식을 치르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우시더라고, 엄마 사촌언니가 전해주더라. 독특한 개인을 범주화시키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래도 엄마의 아빠, 그러니까 네 외할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야. 무뚝뚝하고 고지식하고 표현 안 하고, 대화보다는 “마! 치아라!” 한 마디로 끝내버리는. 네 외삼촌이 16살 때 일이야. 외삼촌은 인문계보다는 실업계를 가서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지. 15년 전의 외할아버지는 지금보다 훨씬 무서운 호랑이 할아버지였단다. 아빠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네 외삼촌을 보고 엄마는 외할아버지에게 말했어.


“아빠, 얘 공고 가고 싶대요.”

“뭐? 공고? 씰데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공고가 뭐 어때서요? 관심 있는 기술 배우는 것도 좋죠.”

“마! 치아라!”


네 외삼촌은 원치도 않는 인문계를 갔단다. 대학은 디자인과를 나왔는데, 돌고 돌아 지금은 결국 전기 기술자로 일하고 있어. 엄마가 ‘허락’이 아닌 ‘통보’ 형 인생을 살게 된 것도 어쩌면 외할아버지 영향이 있지 않을까?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설득이 쉽지 않은 아버지와 대화하느니 일단 저질러놓고 보는 거지. 그렇게 24세의 독립도, 26세의 서울 상경도, 30세의 결혼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단다. 엄마는 외할아버지 가슴에 몇 개의 구멍을 뚫으며 살아왔던 거야. 큰딸과의 헤어짐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아빠니까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실은 아빠니까 안 괜찮은 건데.  


새끼를 품 안에서 떠나보낸다는 건, 내 새끼 크기보다 훨씬 큰 구멍을 가슴에 내는 일이라는 걸 꿈을 통해 엄마는 깨달았어. 왜 부모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는지,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딸에게 왜 그 아비는 전화해서 늘 하는 말이 운전 조심해라인지, 엄마는 어렴풋이 알게 된 거야. 결국 부모에게 남는 것은 '품 안'의 자식이 주었던 추억과 사랑이고, 그 사소하고 작은 조각들로 이후의 시간을 살아낸다는 것을.


네가 엄마 품을 떠나는 때는 언젠가 올 테고, 세상의 모든 부모가 선물 받았을 신기루 같은 아름다운 조각들이 엄마에게도 남겠지. 너와 껴안고 뽀뽀하고 살을 부비는 짧은 시간이 우리의 유산이 되리라는 걸 엄마는 알아야 해. 남은 조각의 수가 많다는 것은, 허투루 흘려보냈을 일상을 붙잡아 모았다는 뜻일 테고, 그 조각이 많을수록 오래도록 정서적인 연결이 된 채 우리는 살아갈 거야. 가슴 안 자녀의 빈자리를 만지며 슬며시 웃을 수 있는 것도, 내 나이 때의 부모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도, 남겨진 조각 덕분이겠지. 그리하여, 멀리 떠나가는 널 보며 되돌릴 수도, 돌이킬 수도 없다는 애절함에 울고 만 꿈속의 엄마 대신, 품 안의 시간이 길지 않기에 그 시간이 아름답다는 걸 깨달은, 꿈에서 깬 엄마가 존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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