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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Jan 21. 2023

엄마는 정말 커피를 좋아했을까

엄마는 자칭 타칭 커피 애호가였다.

엄마=커피 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가족 친구 직장 사이에서 커피를 아주아주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할 정도였다.


엄마는 집보다 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엄마 차에는 항상 커피가 있었다.


마실 커피

아까 마신 커피

어제 마신 커피


콩다방 별다방 등 해외 커피 프랜차이즈의 공습이 작되었던 시기에 나는 대학생이었고, 

커피의 팬인 엄마를 위해 틈만 나면 그 유명한 커피들을 사다주고 싶었다.


- 엄마 요거 스타벅스 커피 사왔어~

- 이거 새로 나온 메뉴래~ 맛있지?

- 커피빈 커피도 맛있다더라~


엄마 차에 타며 내미는 커피에 엄마는


- 어머나~~! 맛있는 커피네~


하고는 어제 마신 커피가 바닥에 아직 깔려있는 빈 종이컵에 새로 나온 향긋한 커피를 붓는 것이었다.


- 엥? 왜 섞어~~~

- 아유~ 너무 뜨거워서 이걸 어떻게 먹니?


그랬다.

엄마는 너무 뜨겁다는 이유로 갓 내린 커피의 한 모금을 쿨하게 버릴 수 있는 여자였다.

첫 모금이 얼마나 맛있는 건데...


그때도, 지금도

엄마가 정말로 커피를 좋아했던 건지는 의문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여자라는 이미지를 좋아한 건지도.


어려서부터 엄마 차를 타고 이동을 많이 했던 나는

커피라는 건 사람이라면 반드시 즐겨야 하고 좋아해야 하는 것.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건 거의 반사회적인 행동이라 생각할만큼 나 또한 커피의 열렬한 광신도가 되었다.


아침 출근길 차가운 바람을 맞고 걸어오다

건물 유리문 안으로 들어오면 나를 반기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커피의 향기가 나의 하루를 열어주었고,

신혼집에 가장 신중하게 고민하여 들였던 것도 커피머신이었다.


캡슐 머신들이 등장하면서, 또 어떤 브랜드가 진리인가를 열심히 고민한 것이다. (결국 지금은 머신 두개, 그라인더1개, 드리퍼 셋트까지 있지만...)


우리 집에는 엄마가 커피를 내리고 간 흔적들이 난무했다.

그 당시에는 커피 머신이 흔치 않은 때라, 엄마는 코스트코에서 원두를 사다 갈아서 드립을 해서 마시곤 했는데, 커피 한잔을 내리고 나면 깔때기 모양의 드리퍼와 종이필터, 그 안의 남은 원두 찌꺼기들을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다. (그래서 내가 캡슐을 좋아하는 것이다!!)


엄마는 뒷처리까지 하기에는 너무나 바쁜 워킹맘이었기에

거실에, 부엌에, 책상에, 그야말로 여기저기

커피를 내린 흔적이 즐비했었다.


엄마는 늘 그렇게 내린 커피를 마셨기에

메뉴가 20종은 넘어가는 카페를 가면 너무나 당황스러워했다.


최근에 와서야,

- 나는 바닐라 라떼 마실께. 그게 맛있더라?


하며 새로운 커피를 시도하는 듯 보였다.


요즘같이 커피에 진심인 사람이 많아져

원두의 특성, 추출방식의 다양성 등

정보와 상품, 마케팅이 넘쳐나는 시대에

엄마의 커피사랑을 생각해보면


커피는 엄마가 자신을 디자인할 때 쓰였던

대표적인 이미지였던 것 같다.

실제로 정말 커피를 좋아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그랜저를 몰고 차에는 커피향을 가득 채운 채

박사학위 논문을 쓰러 도서관으로 향하는 자신의 모습이

여간 뿌듯하고 자랑스럽지 않았을까.


자신을 고상하고 우아한 여인으로 만들어주는

커피 한 잔.

그것은 daily luxury item 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게 있다.

내게 정말 어울리고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와 연관된 단어로 떠올려졌으면 하는 것.


- 진주 목걸이

- 오렌지색 조명

- 와인

- 향수

- 숲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


- 늘어진 늦잠

- 라면과 알타리무

- 만화책

- 치맥

- 사우나


같은 것들이지만

연관 검색으로 뜨지는 않았으면 하는 것이랄까.


엄마의 셀프 디자인 아이템들은 끝이 없었고,

또 그 디자인된 엄마와 민낯의 엄마간 간극을 발견하는 틈틈이야말로 너무나 흥미진진한 일이었으니

앞으로도 몇편을 이 주제로 써나가보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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