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일요일 밤에

by 나로살다

해가 바뀌고 더이상 마흔 하나는 아니지만

오랜 만에 브런치를 열고 싶은 마음에

글쓰기 버튼을 클릭한다.


내 글을 내가 눈팅만 해오던 몇 개월

나에게 글의 신이. 아니 쓰고 싶은 느낌이 찾아 오길

기다렸던 건지.

이제는 쓰고 싶은게 없어진 건지.

그만큼 별 일이 없다는 건지

아니면 쓸 수조차 없을만큼 별 일이 많다는 건지.


월요일 새벽같이 출근해야 해서

모든 가족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쩐지 잠이 밀려들 듯 기분좋은 느낌에

이건 뭘까, 달아나려는 의식을 잡고 살펴보니

제법 묵직한 큰 아이의 팔이 내 가슴팍위에 올려져있다.

아이의 팔은 나를 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기에

완벽한 무게와 부피를 가졌다.


열심히 쌕쌕 숨을 쉬는 소리와

내 몸에 딱 붙어있는 아이의 따뜻한 몸이

더 이상 깨어있기 힘들 정도로 잠을 부른다.


평화로운 온기가

아이와 나 사이에서

폴폴 피어오르고 있다.


남편의 고른 숨소리도 들린다.

코고는 소리라고 하기엔 데시벨이 부족한,

규칙적인 창 밖 바람 소리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수면에 도움이 될 정도의 안정적인 사운드다.

한 때 너무 큰 코골이와 무호흡증으로 고생했는데,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편안하게 잠든다.


따로 또 같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두 사람의 크고 작은 숨소리를 감상하다가

막내 꼬마의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여본다.


잘 들리지 않네.

얼마전 아빠와 미용실을 다녀오더니

뽀글 뽀글 파마를 하고 온

둘째 아이의 솜사탕 같은 뒷통수를 바라본다.


움직임이 없으니 잘 자는 것인데

숨소리가 왜 안들리지.


극성스럽고 집착하는 엄마는

굳이 큰 아이의 팔을 내려놓고

둘째의 숨소리를 들으러 몸을 숙여본다.


역시 열심히 숨을 쉬며 자고 있다.


쌕쌕.


둘째는 이불을 덮기보다는

그 위에 엎드려 끌어안고 자는 걸 좋아한다.

말려 올라간 내복 팔을 풀어 내려주고

무릎까지 말려 올라간 내복 바지도 발목까지 내려준다.


둘째는 첫째처럼 나에게 안기지 않아서

마음껏 아이를 안고 만지고 하려면

잠들었을 때를 노려야 한다.


잠들기 전, 아직도 놀던 에너지가 남아

더워 더워,를 외치는 두 아들을 위해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었다.


이제는 고르게 달콤한 숨을 쉬며 잠이 들었으니

그들의 심장도, 조금은 천천히 피를 돌게 하고 있겠지.


아이들이 종아리를 만져보니

차갑다.


창문을 닫아야겠다.


내일 아침은 이 온전한 이불 속에서

혼자 나가야 한다.


생각만해도 서운하고 아쉬운 일이다.



이 다정하고 사랑스런 숨소리 삼중주 속에서

영원히, 영원히

머물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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