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극 과잉의 세상에 살고 있다.
더 밝고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비싼 것들이
초 단위로 선을 보인다.
특히 음식에 있어서는,
우리 대한민국만큼 다양하고, 동시에 액세스가 쉬운 곳은 전세계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미식의 나라들이 모여있는 유럽만해도,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과 업무 종료 시간은 칼 같고
밤 늦게까지 운영하고 배달도 해주는 동남아 지역의 음식 문화는 편리하고 입맛에도 맞지만
어쩐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급격히 업그레이드된 음식 배달 서비스를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그 전까지도 우리나라는 맛있는 식당들이 밤 늦게까지 불을 환히 밝히고 배고픈 영혼들을 유혹해 온 음식, 정확히는 야식의 나라였지 않은가.
프랑스에서 살던 시절,
내가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바로, 김밥천국이었다.
다양하고 기가 막히게 맛있는 메뉴들로 가득한데
가격까지 저렴해서 마음의 평화까지 선사해주는
그야말로 음식의 천국!
영화관의 팝콘도 진화하고 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고소팝콘과 카라멜 팝콘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바질, 치즈, 초콜렛 등 종류도 많고 심지어 그 위에 뿌리는 소스까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옵션 중에 어른들은 길을 잃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선택지가 많았던 아이들 세대는 그것이 당연하고 따라서 요구사항도 매우 구체적인 것 같다.
이러한 시류를 내세워 나의 식탐을 변호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늘 그렇듯 서론이 길었다.
자,
나의 식탐에 대해 말해보자.
최근에 깨달았다.
나는 배고플 때 먹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맛있는 것이 있을 때 먹고,
기분이 울적할 때 먹고,
나의 수고를 보상해주고 싶을 때 먹는다.
그러니까,
순전히 심리적인 동기로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나는 먹어온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의 과체중 인생이 설명되었다.
몸이 필요로 하는 음식보다 더 많은 양을 먹으니,
남은 영양소가 지방으로 몸에 쌓이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도 다 먹지도 못할 양의 음식을 성대하게 차려놓고 다 남겨서 결국 버리거나, 냉동 음식들을 냉장고에 꽉꽉 채워놓고 잊은 채로 몇 달이 지나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식당에 가서도 늘 많이 시켜서 많이 남기고 나온다.
- 부족한 듯이 먹어라.
- 너무 많은거 아냐? 다 먹을 수 있어?
물론 다 먹을 수 없다.
그치만 내 인생에 부족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음식마저 내 마음대로 충분히 시키지 못한단 말인가.
이런 오기로, 허세로
음식을 주문하고 먹는 것 같다.
20대, 30대때는 내가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 미식가처럼 보여 자부심 같은 것도 가졌었다.
사람들이 맛집을 물어보고, 좋은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할 때는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 무천도사 같은 비쥬얼을 가진 깡마른 부장님이 나의 음식에 대한 애정을 보곤 팩폭을 했다.
- 마음이 허해서 그래.
반 농담인것 같기도 하고, 진심이라면 좀 발끈할만한 말이라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생각할 수록 맞는 말 같다.
마음의 허기가 큰 사람은
먹는 걸로 가슴 속 공간을 채우고 싶어 한다.
코로 맛있는 냄새를 맡고
입 속으로 미각과 식감을 즐기고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와 내장을 가득 채워주는 포만감.
이것만큼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만족감을 선사하는 행위가 있을까?
소확행, 이 아니라 빠확행이라고 불러야 할까?
빠르고 확실한 행복.
배가 고픈 것과는 별개의 행위인 것이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
맵고 짜고 달고 쓰고 신
자극적인 음식을 끊임없이 입에 넣는다.
그 즐거움은 리스크가 없고 함께 할 사람도
의견 중재나 양보도 필요없는
온전한 나만의 것이다.
힘들고 고된, 아주 길고 긴 하루를 보낸 저녁에는
수고한 나에 대한 보상으로
몸에는 안좋다고 사방에서 떠들지만
맛은 끝내주는 음식을 먹곤 한다.
떡볶이, 곱창, 치킨, 라면 같은 것들이다.
물론 함께 마시는 어울리는 술도 준비해야 한다.
- 이런걸 먹으면 기분이 풀리니?
라는 질문도 받았다.
- 당연하지~~!!!!!
운동과 독서와 다른 건설적인 취미로 스트레스를 매니지하는 고차원적인 사람이
나는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없애려고 새로운 스트레스를 장착하는 것은 아무래도 옳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서
내가 필요한 위로와 응원과 보상의 말을
딱 맞는 때에 해줄 사람이 세상에 과연 존재할까?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내 맘을 그렇게까지 알아줄 수있을까.
하긴, 요즘은 AI 들이 여간 요망하지 않아서
가족, 친구보다 나은 위로와 응원의 말을 해준다고는 하더라.
나도 AI 페르소나를 만들면
이 오랜 식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처럼 햇빛이 좋은 날은
테라스에 앉아 화이트 와인을 한잔 해야하는 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