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린 대화

마음상담

by 나로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상담실의 차분한 공기.

통창으로 보이는 키 큰 나무.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 회사 사람들.


"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마지막 상담 때 고민 있으셨다고 하셨었는데.."


"어.........근데요 상담사님, 저희 둘째가 암에 걸렸어요.."

".....네?"



상담사는 깜짝 놀랐고

크게 뜬 두 눈에는 순식간에 물기가 비쳤다.


"네...뇌종양이래요.. 전혀 증상이 없었는데......흑....갑자기 ..흐윽..."



그 때는 항암치료 1차를 마친 후 쯤이었다.

처음의 충격도, 부지불식간에 지나간 수술과 중환자실도, 혼란스러웠던 전원도 모두 정리가 된 때였고, 이제 치료를 일정대로 잘 받으면 되는 시기였다.

아마도 그래서 회사 상담실을 찾을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전에도 회사에서의 고민, 남편과의 갈등, 가족 관계 등으로 가끔 상담실을 찾아 속내를 털어놓고 도움을 받아왔었다. 마음도 건강 검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치료기간 동안 잘 지내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그 어떤 때보다 절실하다 싶어 담담하게 차분하게 나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고 올 생각이었는데...


시작하기도 전에 댐이 터지듯이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정리가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펑펑 속절없이 우는 내 모습을 보고,

상담사도 말문이 막힌 듯 애처로운 눈빛만 보내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렇게 울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울 곳이 없었다.

가족과 사이가 안좋거나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한 번 울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였고,

운다고 해결되는 건 하나도 없었고,

또 울고 나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다시 할일을 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건 아마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페달을 힘껏 구르지 않으면 금방 가라앉을 것 같은 오리배를 탄 것처럼 위태롭게, 각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가 누구를 위로하고 배려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스스로를 위로하고 배려하고 다독이며 하루하루 살아낼 수 밖에 없었다.

매순간 할 일이 있었고 혹시라도 짬이 나면 와인을 한 잔 하며 수고했어, 고생했어, 말해주었다.

바쁘게 살아도 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준비된 공간과 사람을 만나니켜이 쌓여있던 아픔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래, 이 사람에게 내 모든 걸 말하자.

내 모든 슬픔, 좌절, 충격과 공포... 그리고 불안과 분노...


나는 은우를 데리고 병원에 있는 기간을 빼고는

최대한 상담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차장 차안에서 영상통화로도 상담을 했다.

50분간의 상담시간이 나에겐 생명줄과도 같았다.

건강한 정신으로 나와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상담은 공기처럼 필수적이었다.


마음 속의 풍랑을 한 방에 잠재우는 해결책을 얻는 적도 있었지만 그냥 내가 느끼는 감정, 어떤 생각으로 한 주를 살았는지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치유가 되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안좋아지면 어떡하지.

부작용이 심해서 평생 장애가 있으면 어떡하지.

치료가 끝나도 재발하면 어떡하지.

첫째 아이도 아프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힐 때였다.

특히 불면증으로 새벽에 잠이 깰 때면

아주 오랫동안 그 고통스러운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이 이야기를 하며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울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 걱정

혹시라도 입밖에 내놓으면 그렇게 될까봐

말로도 옮기지 못하는 나의 큰 두려움..


"자...눈을 감고 저랑 같이 호흡해볼께요 은정님"

".......네..."

"깊게 들이마시고....천천히 내쉬세요. 공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느껴보세요.

두 손으로 나를 안고 천천히 토닥토닥 하면서 제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세요..



내 안에 이런 두려움들이 가득하구나...

그럴수 있지....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그 생각만 하면 나는 미칠 것 같지만,

그것들도 다 생각일 뿐인 걸.


내가 두려워 하는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나는 또 다시 무너지겠지만

난 다시 그 아이를 안고, 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겠지...



내 안에 아이와 어른이 있어.

아이가 두려움에 울고 무서워할 때,

어른이 '이래서는 안돼! 강해져야지! 뭐하는거야!' 라고 밀치고 혼낸다면

아이는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 할 수밖에 없는거야

어른이 아이를 안아주고 위로하고 화해해줘

'이렇게 힘들구나, 이렇게 무섭구나,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라고 말해주자.


내가 내 두려움을 제일 잘 알고 있잖아.

나를 알아주고, 안아주고, 도닥여주자.

내가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구나....무서워하고 있구나....

그럴수 있지. 그럴수도 있는거야. 그럴만도 하지.


내가 무서워하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난 많이 울겠지만

다시 일어나서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가겠지."




당연하고 특별할 것 없는 말이었지만

그 때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말이었다.

창의적이고 놀라운 말일 필요는 없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말을 듣는 것이 온전한 치유이다.


나에겐 그 날 상담사의 말이 골목식당 백종원의 솔루션이었고


그 후엔 새벽에 잠이 깨어도

더 이상 그 무서운 생각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전 16화6시간의 새벽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