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은우 11시에 PET-CT 찍으니까요, 5시에 깨워주세요. 우유도 5시에 마지막으로 먹여주세요."
은우의 치료기간 중 뭐가 가장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검사를 위해 6시간 동안 금식과 금침을 하게 해야 했던 것이라고 단연코 말할 수 있다.
차라리 굶기는 건 쉬웠다.
졸려하는 아이를 잠들지 않게 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힘들었다.
잠 못자게 하는 고문이 정말 괴롭다더니, 20개월 아기가 참다 참다 고개를 푹 꺾고 잠이 드는 순간 다시 발바닥을 간지럽혀 깨워야 하다니.
재우느라 고생은 해봤지만 안 재우느라 하는 고생도 만만치가 않았다.
금침의 이유는 수면제 중 가장 약한 수면제만 써서 재우기 위해서였다.
수면제도 내성이 생기고, 또 앞으로도 검사를 많이 해야 하니 최대한 먹는 포크랄로 재워서 검사를 하는 것이 지침이었다.
좀 큰 아이들은 수면제 필요없이 잘 할 수 있는 검사들을 은우는 모두 자면서 해야했다. MRI, PET-CT, 심장초음파, 심전도 검사, 복부초음파, 안과검사, 청력검사...
이틀 연속으로 수면제를 먹는 것은 안되고, 또 검사마다 가능한 시간이 달라서 검사만을 위해 입원일정이 길어지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이틀에 한 번씩 금식 금침을 하느라 은우도 지치고, 나도 죽을 맛이었다.
그 중에서도 빡셈의 끝판왕은 PET-CT 였는데, 포도당 성분의 주사약을 넣고 포크랄을 먹인 후 20분 안에 검사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그 후에는 주사약이 인체에 흡수되어 검사가 불가하다고 함) 만약 은우가 포크랄을 먹고 잠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정확한 검사가 안되어 재검사를 해야 했다.
이 검사들은 항암 시작 전, 3차, 5차, 1차 고용량, 2차 고용량 전에 입원해서 진행했다. 검사 시간은 천차 만별이었는데 9시 11시 검사가 제일 많았던 기억이 난다.
보통 6시간 전부터 금식 금침은 시작된다.
나는 3시 또는 5시가 되기 10분 전 알람을 맞춰놓고 마지막 우유를 먹인다.
모두 자고 있는 시간이라 부시럭 대는 소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젖병 240mm 에 우유를 한가득 채워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은우에게 물린다.
은우는 고맙게도 자는 중에도 꿀떡 꿀떡 잘도 먹어 주었다.
깨워야 하는 시간이 되면 여지없이 담당 간호사가 와서
"어머니, 은우 깨워주세요~" 한다.
"네네...기저귀만 갈고 깨울게요"
다만 몇 분이라도 더 자게 하려고 살살 빵빵해진 기저귀를 갈고 조용히 아기띠로 안는다. 기계에 연결된 파워 코드를 뽑고 폴대와 유모차를 양손으로 하나씩 밀면서 복도로 나간다. 폴대에는 여분 마스크, 은우 신발, 물티슈, 핸드폰, 태블릿, 은우 담요와 가디건 등을 챙겨놓았다.
갑자기 환해진 불빛에 은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은우야~ 우리 어야 가자~~~"
엘리베이터 오는 소리가 띵! 하고 나자 은우는 드디어 잠에서 확 깼다. 지하 1층 편의점에서 내가 먹을 커피우유와 삼각김밥을 하나 사서 1층으로 올라간다. 사람들로 북적대던 병원 1층 로비의 새벽 3시반은 어둡고, 아무도 없다.
"캄캄!"
은우가 나를 보며 심각하게 말한다.
"응 은우야 캄캄!하네~ 아무도 없네~~"
은우는 고맙게도 걷기 전에 소뇌쪽을 수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걸었다.
소뇌가 균형감각을 관장하는 곳이라, 그 부분을 수술하면 아무래도 걸음이 느리거나 불안정하다고 하는데, 다행히 은우는 항암 시작 후 두 달만에 걸음을 뗏다.
새벽녘 텅 빈 병원 로비는 은우의 걸음마 연습 장소였다.
주렁 주렁 달린 라인들이 꼬이거나 당겨지지 않도록 은우의 페이스에 맞춰 일정 간격을 유지하느라 나도 함께 긴장하며 걸었다.
병원 통로를 질주하는 중
본관 로비를 여기저기 걷던 은우는 이제 별관을 지나 암병원으로 이어져있는 길고 긴 램프 통로로 걸음을 옮기곤 했다. 램프 통로는 통창으로 되어있어서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자동차나 앰뷸런스 등이 가끔 보이곤 했다.
"음붕? 음붕 아찌?"
"붕붕 어딨지? 붕붕 없네?"
램프 통로는 살짝 오르막이라 은우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 이 시점에서 유모차를 태우고 바깥이 보이도록 세워둔 후, 유모차 뒤에서 얼른 삼각김밥과 커피우유를 먹었다. 새벽부터 배가 고픈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검사 시간이 다가올 수록 은우는 허기와 졸림에 난동을 피울 것이었고 그에 대응할 만한 스테미나가 필요했다.
몇 킬로는 될 것 같은 긴 통로를 두 세번 왕복했는데도 시간은 아직도 5시 반이었다. 로비와 통로 바닥을 청소하는 차들이 나타나고 바쁘게 오간다. 천정에는 약 운반 레일이 있어서 지하 약제부에서 병원의 각 부서에 처방약들을 보낸다.
은우가 창밖의 자동차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천정 레일로 오가는 철제 서류가방 모양의 약 박스 들이었다.
다양한 볼거리에도 불구하고, 6시간을 재우지도 않고 먹이지도 않고 아이와 둘이 보내는 것은 고난이도의 극기훈련이었다. 그나마 6시 반이 넘어가면 출근하는 사람들이 로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로비의 빵집도 오픈 준비를 하느라 하나 둘 불을 켜고 그 구경을 하느라 은우는 정신이 없었다.
작은 아기가 환자복을 입고 로비에서 출근하는 자신들을 맞아주면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인사를 해주었다.
"어머나~ 귀여워라~~ 안녕?"
"아가야 안녕~?"
"아가 왜 나와있어? 추워요~ 얼른 올라가요~~~"
말은 하지 않아도 따듯한 웃음이 감도는 눈매로 은우를 봐주던 수많은 사람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런 순간들에서 휴식과 위로를 얻었던 것 같다.
7시가 넘어가면 이제 로비가 제법 북적거리기 시작해서 얼른 병동으로 올라왔다. 은우는 올라오기 싫어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많은 곳은 피해야 하는 것이 규정이었고, 주치의 선생님의 회진도 있는데다 폴대에 달린 기계의 배터리도 소진될 타이밍이었다.
8시 20분.
은우의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이제 울지도 않고, 더 이상 장난감이나 유투브에도 관심이 없다. 너무너무너무너무 졸리고, 밥도 싫고 다 싫고, 그냥 한 잠 푹 자는 것만이 지상최대의 소원인 상태.
나도 알지....그 기분.
그치만....안 돼 ㅠㅠ
"으악! 안돼 안돼~!! 은우야! 은우야~!!!! 자면 안돼~~~!"
나는 은우의 발바닥을 손톱으로 간지럽히고, 그래도 안깨면 살짝 손톱으로 눌렀다.
"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끄아아아아아아아앙~!!!!!!!"
은우는 이성을 잃고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안....미안~~~ 근데 자면 안돼 ㅠㅠㅠㅠㅠㅠ"
한 번 잠깐 울고 나더니 또 내려앉는 눈꺼풀.
또 은우의 발바닥을 긁는 나의 손톱
"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이 괴로운 과정을 4~5번 반복하자 은우는 이제는 더 이상 못참겠다는 듯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서럽고 원통한 듯, 온몸을 좌우로 흔들며 울부짖었고 은우를 아기띠로 몇시간 째 안고 있는 내 골반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서..선생님! 어떡해요~~~ 은우 너무 힘들어해요!!"
시간은 8시 40분.
아직 20분이나 남았지만 간호사 선생님들은 용단을 내렸다.
"포크랄 먹일께요 어머니!"
할렐루야!!!!!!!!
은우야!!!!!!!!!!!
자자!!!!!!!!!!!
난리를 치는 아이를 잘 잡고 포크랄을 먹인 후 드디어 은우의 머리를 가슴에 기대게 했다.
토닥토닥....토닥토닥......
쉬~~~~~쉬~~~~~~~~
자장자장 우리은우 잘도잔다 우리은우...
은우는 1분만에 곯아 떨어졌고 검사한다고 이리 눕히고 저리 눕혀도 깨지 않았다.
그나마 이것이 가장 최근의, 가장 숙련된 솜씨로 금식 금침을 했던 기억이다.
그 전에는 정말이지...말도 못할 정도로 힘들고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아직도 검사시간이 4시간이나 남은 새벽녘
정처없이 걷던 병원 로비와 통로가 생생히 떠오른다.
청소차들의 위잉 소리와
약 운반 레일의 덜컹 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 들리던 은우의 통통 거리는 발 소리.
그 길고 긴 새벽 산책.
하...너무 힘들었어 ㅠㅠ
드디어 잠든 은우와 초음파실 앞에서 떡실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