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간호사가 밤새 1시간 간격으로 혈압을 재고 맥박을 모니터링했다.
가슴에 달고 있는 심전도 모니터 전극은 계속 높은 맥박을 표시하고 승압제를 달아도 혈압은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잠은 커녕 제 정신으로 있기도 어려웠다.
어떻게 되는걸까.
정말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걸까.
손도 못쓰고 잘못된다는게 진짜 지금 일어나는 걸까.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이렇게 은우가 떠나버리는 건 아니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 동안의 심리상담, 마음관리, 명상, 힘을 주는 문구,
울지 않겠다는 결심 같은 것들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한 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고 눈물이 터져나왔다.
공황장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다.
베테랑 간호사가 올 때마다 물었다.
"선생님 어떤가요? 그렇게 안좋은 건가요? 이러다가 큰일날 수도 있나요?"
"어머니, 대부분 괜찮은데요, 저희가 기존에 싸이톡산 투약할 때 갑자기 안좋아지는 케이스들이 있어서 민감하게 보고 있는 부분이에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동생과 남편과 이모에게 카톡을 보내자 이모가 전화를 했다.
"은정아.... 아이고 어떡하니....힘들지....."
목소리를 듣자 마자 더욱 감정이 북받쳐 엉엉 울고 말았다.
감정의 무익함이라니....나는 참 오만한 사람이구나.
그동안 병동 복도에서 스쳐지나가던 어두운 그림자가
이번엔 내 코 앞까지 닥친 기분이었다.
"이모...어떡해.....이러다가 진짜 은우 떠나버리면 어떡해 ㅠㅠㅠㅠㅠ"
나를 위로하려던 이모도 같이 울었다.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은우는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났다.
교수님이 회진을 돌더니, 맥박이 높고 혈압은 낮지만 아이가 멀쩡하니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확실히 심장에 무리가 간 것으로 보이니 항암을 하루 쉬자고 하셨다.
하루 쉬고 혈압 맥박 본 후에 다시 재개하든, 스킵하든 결정하자고.
휴,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주치의가 와서 긴급으로 심장 초음파를 찍자고 했다.
심장 초음파는 아이가 울면 정확한 검사가 어려워서 수면제를 먹여 재워서 검사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은우가 밤잠 자고 일어난지 한시간 밖에 안되었는데 다시 수면제를 먹여 재우라고 했다.
"애가 자겠어요? 일어난지 얼마 안되서 절대 안잘거 같은데요...."
"어머니, 그래도 지금 바로 찍어봐야해요. 일단 포크랄 먹여보시죠."
포크랄은 수면제 중 가장 약한 먹는 수면제였다.
포크랄 다음은 미다, 그 다음은 기억이 안난다.
수술이나 외래 MRI 를 찍을 때는 프로포폴을 썼다.
재워서 하는 검사가 많다보니 병원에서는 가능한 약한 포크랄로 재우는 것을 시도했다. 이번에도 포크랄을 먹였다.
심장 초음파 찍는 곳은 어두워서, 혹시 은우가 안자더라도 최대한 울지 않게 하기 위해 물기가 묻으면 반짝 거리는 물놀이 장난감을 챙기고 나의 동반자 탭도 챙겼다.
은우를 아기띠로 안고 주치의와 걸어가면서, 어떻게든 재워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은우는 전혀 잘 생각이 없다가, 어둑한 초음파실에서 자장가를 틀어놓고 아기띠로 흔들흔들 하니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잘 거 같아요!!!!"
천우신조로 잠든 은우의 심장 초음파가 시작되었다.
은우의 심장이 정말 고장이 났는지, 큰 일이 나는건지 적막 속에 내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선생님, 심장 괜찮은데요?"
"!!!!!!"
동반한 주치의에게 심장 초음파 교수가 말했다.
"일단 올라가계시면 정식 판독 올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아직 자는 은우를 다시 들쳐 안고 다시 이식방으로 들어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진이 빠지고 맥이 탁 풀렸다.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병실로 돌아오는데 옆 병실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아마 밤새 의사 간호사가 오가며 하는 소리, 내 울음소리도 다 들은 듯했다.
"저....힘들죠? 힘들어서 어째요....."
"네....ㅠㅠㅠ 싸이톡산 때문에요 ㅠㅠㅠㅠ"
"우리 애도 심장에 물찼었어요...근데 하루 쉬니까 괜찮아 지더라고요."
"그래요? 하루 쉬면요?"
"네...괜찮을거에요..."
"네...그렇구나 방금 심장 초음파 찍고 왔는데 심장은 괜찮대요"
"그럼 됐네요~ 괜찮아요~"
"아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서로의 상황을 잘 모르니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너무나 조심스러운 이 곳에서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주는 엄마들이 있다. 병동에서도 이식방에서도.
다 다른 상황이지만 최소한 내가 경험해본 것에 대해 알려주고, 너무 많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도와주려는 사람들.
너무나 고맙고 그녀을 끌어안고 한없이 울고 싶었다.
그래...괜찮을 거야...! 괜찮은 거야 ㅠㅠㅠㅠ
하루 휴식하는 동안 그 엄마의 말대로 심장은 제 페이스를 되찾았는지 혈압은 조금 올라왔고 맥박은 조금 내려왔다.
은우는 잘 자고 잘 놀았다.
혈압이 이렇게 중요한 지표였다니.
"네, 상태가 괜찮아진 것 같네요. 오늘부터 다시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아침 회진 때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렇게 공포의 싸이톡산 3일이 지나갔고, 4일째부터는 다른 약이 들어갔다.
그 약은 싸이톡산에 비하면 그야말로 껌이었다.
은우는 설사를 좍좍했고 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슉슉 방수패드를 깔고 건티슈로 응가를 닦아내고 피부세정제로 엉덩이를 닦고 비판텐을 바르고 피부보호제로 코팅해주었다.
항암제 투약기간 1주일이 지난 후 2차 이식을 했고
이제는 바닥을 친 면역 수치가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초반에 극도의 긴장상태를 지나니 그 후에는 마음이 편-안했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동안 나는 은우의 알파벳 공부를 도와주고, 놀아주고, 책도 읽고 넷플릭스도 보고 BTS 덕질도 하고 복직하면 입을 옷도 쇼핑했다.
가족들은 모두 나에게 너무너무 고생했고 잘했고 수고했고 대단하다고 했지만 대단할 것도 잘한 것도 없었다.
그냥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이고 버티고 견디고 견딜 뿐이었다. 누구라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 일뿐.
너무나 다행이고 너무나 감사한 것은
시간이 꾸역꾸역 가 주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공정하고 너무나 성실하게.
그 어떤 속임수나 반전없이 약속된 시간은 하루하루 지났고
은우의 수치도 하루하루 올랐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가 일반 병실로 내려왔다가 집으로 왔다.
시간이 간다는 것이 이렇게 감사한 일이었나.
생각해보면 이 사실은 치료기간 내내 나에게 확실하고 든든한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말 바꾸기나 가지치기 없이,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것.
한 달은 30일이라는 것.
열 달은 300일 이라는 것.
열 달이 지나면 치료가 끝난다는 것.
5년이 지나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는 것.
그 날은 멀지만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이다.
정직하게.
정해진 속도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