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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Apr 13. 2022

일상이라는 특권

"이제 관을 빼죠"


치료가 끝나고 두 달 정도 되었을까, 교수님 진료에서 중심정맥관 제거 결정이 났다.

은우의 정맥관이 많이 빠져나와있어 생활하다가 응급 상황이 벌어질 risk 가

앞으로 채혈이나, 필요할지 모를 추가 약물 투여 시의 불편함보다 크다고 판단하신 결과였을 것이다.


"여보!!!! 이제 관 뺀대!!!!!"


누구보다 정맥관을 빨리 제거하고 싶어했던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달하니

남편은 한차례 환호성을 지르더니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언제 뺀대? 어떻게 한대?"

"응, 이것도 수술이라 제거 수술을 해야 하고, 다음주 화요일에 가장 빠른 시간에 수술시간 신청해주셨어.

아기들은 보통 아침 일찍 첫 타임에 해주신대~"

"아 그래, 뭐 입원을 미리 해야 하는건가?"

"아니아니, 통원 수술실 이라는 곳이 있어서 거기서 바로 마취하고 수술하고, 마취에서 깨면 퇴원이래."

"아~~~ 그렇구나~ 얼마나 걸린대 시간은?"

"수술은 15분이면 끝나는데, 전신마취를 하다보니까 깨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한 4시간 정도 예상한대"

"아~~~!!! 진짜 너무너무 잘됐다~!!!!!"

"그러게....!!!! 자기가 데리구 와서 수술하고 할 수 있지?"

"어~ 그럼 내가 할께~!"


출근해야 하는 날이어서, 남편이 데리고 와 수술을 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오전 일찍 수술이 잡혀 은우는 남편과 가서 중심정맥관을 제거하고 너무나 가벼운 몸으로 집으로 왔다. 정맥관이 길게 나와있던 삽입 부위는 실밥도 없이 수술용 본드로 너무나 간단하게 붙여져 있었다. 다시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3~4일 지나면 샤워도 가능하다고 했다. 놀라웠다. 생각해보면 뇌수술을 하고 나왔을때도 수술 부위가 그대로 노출되있고, 염증이나 피도 없이 깔끔한 상태여서 놀랐었다. 머리카락도 다 밀줄 알았는데 수술부위만 타원형으로 잘라져있어서 새삼 수술솜씨가 대단하다고 느꼈었다. 중심 정맥관 제거 수술 역시 너무 심플하고 깨끗하게 마무리 되었다. 우리나라 의학기술이 정말 놀라웠다. 남편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도, 마취에서 깨어난 후에도 칭얼거리거나 무서워 하지 않고 태연하게 걸어나와 빵을 사달라고 했다고 한다.


"빰!!!" "아빠, 빰!!!"


그리고 나서 그토록 기다리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형과 함께 하는 욕조에서의 물놀이, 거품 목욕, 그리고 바다.

중심 정맥관이 있을 때는 늘 필름에 방수 테이프로 무장을 하고 혹시라도 감염될까봐 쫒기는 마음으로 샤워를 했었다. 욕조 통목욕이나 바닷가에 놀러가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처음으로 두 아들을 함께 욕조에서 씻기는 날, 남편은 너무나 감개무량해 했고, 나는 빨개벗고 비누방울을 부는 욕조 속 보물 두 마리를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진료 때는, 교수님이 이제 먹는 것도 너무 많이 조심하지 말라고 하셨다.

수치가 많이 올라왔으니, 이제 일상생활에서 먹는 우유도 생우유, 물도 정수기 물, 조금씩 특별관리의 경계를 완화하라는 지시였다. 얼마나 반가운 말씀인지!!!!


"은우야 이거 먹어봐, 포도! 포도야~!"

"은우야~ 오렌지 쥬스 줄까? 아이스크림도 먹어볼까?"

"이건 케익이야~ 조금 먹어봐~"


물론 처음에는 설사를 좀 했다.

설사를 하면, 다시 먹던 물과 음식으로 돌아가고, 또 괜찮아 지면 그동안 금지되었던 음식을 시도해보았다.

은우는 처음 먹어보는 과일, 채소, 쥬스, 빵, 아이스크림들의 향연에 신이 났다.

리조트나 호텔을 놀러가도 이제는 은우의 물, 컵, 숟가락, 먹을 것을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갓 짠 주스,  갓 나온 크림빵, 신선한 과일 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일상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절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일상은 특권이고,

매일의 성취였고,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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