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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Mar 15. 2022

아기를 낳으면 진짜 좋아요?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 족 후배들이 회식자리에서 가끔 묻는다.


아기를 낳아야 하는지 고민이다. 

경제적 여유 포함 너무 많은걸 포기해야 할것 같은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등등


- 아기를 낳으면 진짜 좋아요?


이 질문을 받은 나를 포함한 아빠 또는 엄마들은 곤란한 웃음을 짓는다. 


가치가 있다. 너무 좋다. 정말 천사다. 내가 태어나서 한 일중 가장 잘한 일이다. 

혹은

아니, 헬게이트가 열려. 돈도 많이 들고 특히 여자는 완전 늙지. 부부끼리 여행다니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


이렇게 간단하게 둘 중의 하나로 답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쉬울까.

답이 어려운 이유는, 답이 둘 다이기 때문이다. 

천국인 동시에 헬게이트. 

그렇다면 비율의 문제인가.

그 비율이 51:49 인지 60:40 인지.

또 그런 문제도 아닌것 같다.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기를 낳아서 기르며 그 수많은 우여곡절을 지나면서도

정말 아기를 낳길 잘했다. 

이 아이들의 엄마라서 너무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보면 알 수 있을까.


아기를 키우는 기쁨이 대충 어떤 건지. 어렴풋하게라도.

아주 일부분일지라도.


***

꼼지락대고 킥킥대며 밤새 장난을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아이들은 어느새 조용해져

단어 그대로 '새근새근' 고른 숨을 내쉬면서 잠이 든다.

오늘도 폭풍같이 몰아친 나의 하루도 이제 마무리되려는 찰나,

함께 잠에 빠져들뻔 했던 정신을 겨우 붙잡아 일으켜는 건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이다. 


아이들의 내복 윗도리는 바지안에 잘 꼽혀있는지.

배가 나온채 자면 한여름이라도 배탈이 나더라. 배는 항상 따뜻하게.

역시나 시원하게 배를 내놓고 자고 있는 아이들의 옷을 어둠속에서 꾹꾹 재정비해주고.


다음으로는 머리카락을 만져본다. 

머리에서 땀이 나 축축한지, 뽀송한지. 즉, 방이 더운지, 괜찮은지. (난 늘 춥다 ㅠ)


저녁 시간에 조금 코를 훌쩍이던 큰 애의 코언저리에 귀를 대고 

그륵그륵하는 소리가 들리는지 들어본다.

코가 막힐 것 같으면 고개를 높여 잘 수 있도록 베개를 받쳐준다. 

몇 분 안가 곧 다시 탈출하겠지만.


모든 확인을 마치고 아이들 사이의 내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본다. 

오늘도 수고한 하루였다. 

아이들은 오늘도 한 뼘 자랐다. 


눈을 감고 우리 모두를 위한 자장가를 듣다보면 

내 얼굴 위로 발 하나가 턱. 올라온다. 


작은 아이의 발이다. 


아이들의 발은 마들렌처럼 통통하고 크기가 적당해서 그립감이 참 좋다. 

아이의 발을 살짝 쥐면 낮 동안 열심히 뛴 발바닥에서 따끈한 열감이 느껴진다. 

한없이 부드럽고 말랑거렸던 아기발은 이제 많이 걷고 달린 결과 제법 단단해졌다. 

내 손이 쥔 느낌이 양말을 신은 것처럼 답답했는지 이내 아이는 자세를 바꿔 내 손을 뿌리친다. 


이번에는 작은 아이의 손을 잡아 쥔다. 

겨우 내 엄지 손가락을 쥐는게 전부였던 아이의 손은 

이제 나와 깍지를 낄 수도 있을 만큼 컸지만

그래도 아직 작다. 


작고 부드럽고, 열심히 자라고 있는 손이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의 냄새를 맡아본다.

콤콤하고 고소한 아기의 냄새.

그러다 손톱이 조금 날카롭다는 것을 깨닫고 내일은 꼭 손톱을 깎아줘야지, 생각한다. 

내일 아침에도 기억할 거란 보장은 없지만.


아이의 발과 손을 잡고 조물락 거리는 순간이 

나에게는 하루 중 가장 평화롭고 안정되는 순간 중 하나다.

하루의 걱정과 고민, 불만과 화는 그 순간 사라진다. 


작은 아이의 자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자면

큰 아이는 무슨 꿈을 꾸는지 잠꼬대를 중얼거린다. 


축구교실을 다니는 큰 아이는 이제 잠버릇도 다이나믹 해져서 그 발길에 맞으면 진짜로 아프다.

아이의 허벅지와 엉덩이와 어깨와 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해졌다. 

내일 아침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저 도톰한 작은 입술에서 흘러나올까.

더 어렸을 때부터 말이 빠르고 조잘조잘 말하는 걸 좋아하는 큰 아이는 가끔 자면서도 말을 한다.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점심때쯤에는 목이 쉬고, 그와 동시에 뛰어내리고 재주를 넘고 랩을 한다. 

한 사람이 가진 에너지가 이렇게 끝이 없다니. 경이롭다.


큰 아이의 덥수룩한 앞머리를 넘겨 톡 튀어나온 예쁜 이마에 입을 맞춘다. 

낮동안 흘렸다 식었다 한 땀 냄새가 달큰하게 풍겨온다. 

머리카락 사이에 속삭인다. 


- 사랑해. 엄마 보물.


잠결에 소리를 들었는지 내 겨드랑이로 파고 들어오는 큰 아이다.

나를 꼭 껴안고 내 팔에 있는 점을 찾아 만지작 만지작 거리더니 곧 다시 잠에 빠져든다. 


왼팔로 큰 아이를 안고 오른팔로는 작은 아이와 손을 잡고

그 온기와 부피감이 주는 편안함을 만끽하며 나도 잠이 든다. 


- 사랑한다. 고마워.



***

아침이다. 

다시 시작이다. 


큰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간밤의 꿈을 얘기하느라 횡설 수설이다. 

재밌는 꿈이었는지 말하는 표정이 아침햇살처럼 빛난다.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묻는다.


- 엄마. 오늘 학교가는 날이야?

- 아니.


아이는 벌떡 일어나 침대 위에서 정체불명의 춤을 춘다.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은 아이다. 

한참을 찌르고 흔들고 난 후 거실로 뛰어나가 요구르트를 달라고 요구한다. 


작은 아이가 이 난리통에 아직도 자고 있나 살펴보니

엎드린 상태로 눈을 반짝 뜨고 있다. 

형의 모닝댄스를 처음부터 지켜본 모양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니 초승달 모양으로 눈웃음을 웃는다. 


- 은우 잘 잤어?

- 응. 엄마두 잘 자셔?

- 응. 이뻐라 우리 아가.

- 엄마. 우이 나가다. (우리 나가자)


작은 아이도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간다. 

어제 가지고 놀다 잠든 플레이도를 계속 할 모양이다. 



***

큰 아이는 이제 낮잠을 자지 않지만

작은 아이는 2시~3시경 낮잠을 재운다. 

1시간 반을 넘겨 자는 것 같으면, 

혹은 낮잠 시간이 좀 늦어졌다면 아이가 자는 방의 문을 일부러 열어놓는다. 

집안의 소음이 들리게 해서 자연스럽게 잠이 깨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나도 인지하지 못한 나의 버킷 리스트였다. 

내가 기억하는 제일 어린 시절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 것 같다. 

그 때 집에서 먼 학교로 통학하면서 학원도 여러개를 다니느라 힘들었는데

틈틈이 스케줄 사이에 쪽잠을 자곤 했었다. 

낮잠이라면 낮잠인데,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기분이란.


마음이 쌔하고 싸하고 시리면서 슬픈 것 같은 것의 총합이랄까.


집 밖의 소리는 너무 크게 들리는데

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없는 쓸쓸한 경험.

그런 낮에는 햇살 눈부신 날씨조차 못마땅하고 원망스럽다. 

차라리 비오고 흐린 날이라면 기분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잠에서 깬 상태의 멘탈이라 더 극단적으로 느껴졌을 것을 감안하더라도

참,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다. 

내가 아는 한 엄마는 항상 바빴으니 더 어렸을 때 낮잠을 꼬박꼬박 자던 때에도

잠이 깼을 때 엄마가 있던 적은 아마 손에 꼽았으리라.


그래서 은우가 낮잠에서 깰 때 

집안의 소리 - 티비 소리, 주방에서 달각거리는 소리, 형아의 말소리 - 와 

방안으로 스며드는 은은한 거실의 불빛이 있고, 

침대에서 조금 뒹굴거리다,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깬 다음 

열린 문으로 걸어나와 나를 보고 웃어주는 엄마와, 할머니와, 형아와, 아빠를 보는 

은우의 그 시점을 생각하면 내 마음도 너무나 따뜻해진다. 


이심전심인지, 은우는 낮잠자고 나와 나를 발견하면 방긋 웃는다. 

은우도 좋은 걸까. 그 때의 기분이.

그리고 눈도 다 못뜬 채로 총총 거리며 내게 걸어와 안긴다. 

머리는 세상 까치집을 하고. 눈은 퉁퉁 부은 채로.


- 은우 잘 잤어어?

- 웅. 잘 자셔.

- 이뻐라, 어째 이렇게 이쁜 아가가 있을까? 이 예쁜 아가가 누구야?

- 은우야.


아이의 사랑스러운 볼에 뽀뽀를 퍼붓는다. 

아이의 몸은 아직 침대의 온기를 간직하여 따뜻하다. 

꼭 안고 그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자면, 아이도 내 어깨에 고개를 파 묻는다. 


그리곤 귀청이 떠나갈 듯이 자기를 불러대는 형아와 놀기위해 곧 내 품을 떠난다. 



***


세상에 많은 기쁨이 있지만 

아기의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 중 몇가지를 기록해 보았다. 


물론 아기를 키우며 더 많은 수의, 더 큰 크기의 기쁨이 존재하고

그보다 더 많은, 더 큰 슬픔도 존재한다. 

육아의 고단함과 어려움을 설토하는 글들을 참 많이 본다. 

나도 그런 글을 꽤 썼었다. 어딘가 쏟아놓고 싶으니까.


그런데 

육아의 기쁨을 적은 글은 꽤 귀한 것 같아

나를 위해, 당신을 위해, 아기들을 위해 적어 보았다. 


그리고 답해본다.


네, 아기를 낳으면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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