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기분이 좋다 안좋다 했다.
사람이 다 그렇지, 라고 하기엔 내가 유추할 수 없는 수백만가지 일들이 엄마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했다.
나는 어렸을 때 그래서 그녀의 기분을 살피며 숨막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미간이 주름이 있고 입가가 축 늘어진 표정이면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되었고, 조금 큰 다음에는 엄마가 좋아할만한 말들을 골라하게 되었다.
이 말 저 말을 하며 표정이 바뀌는지 시시각각 살피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그 일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나의 감정 노동이었다.
엄마가 활짝 웃거나, 혹여라도 빵 터지는 날에는 나의 마음도 햇볕에 잘 말려진 빨래들처럼 보송보송하고 따뜻해졌다.
그 표정을 보기 위해 나는 유머감각을 연마하고 엄마가 좋아할만한 행동들을 연구했다. 귀가 후 쓰러져 잠드는 엄마의 화장을 클렌징 티슈로 지워주고 따끈한 수건으로 살살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주었다. 스타킹을 벗기고 발가락 사이사이도 수건을 닦아주었다. 엄마는 우리 딸은 어쩜 이렇게 이쁠까 너무 고마워 하며 싱긋 웃으며 곯아떨어졌고, 그래서 나는 뿌듯했지만 그 다음날 아침 엄마는 또 출근하고 없었다.
그런 엄마가 가장 자신만만한 환한 미소를 지을 때는 지갑에 30만원이 있을 때였다.
- 엄마 지갑 열어봐.
- 왜?
- 글쎄 열어봐~
장지갑이 터질것처럼 빵빵했다.
만원 짜리 지폐가 빼곡히 들어있었다.
- 오~ 무슨 돈이 이렇게 많아?
- 헤헤~ 지갑이 꽉 차 있으면 사람이 자신감이 생겨.
기름도 만땅! 으로 넣었다구~
그 말을 할 때 엄마의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 빛났다.
휘발유가 가득한 그랜져를 몰고 지갑에는 30만원이나 넣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퍽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 우리 딸 용돈 좀 줄까?
나는 그런 엄마를 더 업 시켜주기 위해 응! 응!!! 우와~~ 감사합니다~ 엄마 최고 사랑해요~ 등의 리액션을 쏟아부었다. 엄마는 어깨를 으쓱 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엄마의 지갑은 다이어트를 했고
그러면 엄마의 입가는 하강했다. 이제 자신감이 떨어져가는 것이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 했고
다시 엄마가 지갑에 30만원을 채울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가 웃는게 좋았고 그 순간의 평화와 온기가 고팠다.
그 순간은 너무 찰나여서 더욱 애가 탔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날들은 장마철 저녁무렵처럼 적적하고 축축하고 휑했다. 집은 어두웠고 엄마는 가끔 더 어두운 얼굴로 왔다가 사라졌다.
30만원 말고 엄마를 웃게 하는게 뭔지 나는 몰랐다.
엄마를 화나게 하는 것 슬프게 하는 것이 뭔지도 알 수가 없었다 .
왜 화가 났는지, 왜 늘 슬픈 얼굴인지 묻기에는
그 진짜 이유를 알기가 이상하게 겁이 났다.
건드리면 안되는 벌집처럼 거대한 무언가가 쏟아져나와 적적한 우리집을 박살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내 맘속에 넘실거렸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알았다면 나는 내 시간을 좀 더 나를 위해 쓸 수 있었을까. 내가 좋아하는 건 뭔지 생각도 해보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크면 뭐가 되고 싶은지 고민도 하고 말이다.
그 어떤 것도 엄마 얼굴을 살피는 일보다는 덜 조마조마 했을 것 같다.
30만원으로 살 수 있었던 엄마의 행복, 나의 평화.
나는 가끔 나의 아이가
- 엄마, 기분이 안좋아?
- 엄마, 왜 무섭게 말해요?
라고 물어오면 모든 아이는 엄마의 표정을 살피는구나 싶어 철렁하다가도, 그것에 대해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 응 엄마가 기분이 좀 안좋아. 조금만 있으면 좋아질 거야.
- 미안해, 무서웠어? 네가 잘못한거 없어. 미안.
엄마에게 30만원이 주는 자신감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꽉 찬 냉장고와, 탱탱볼 같은 아이들이 주는 자신감이 있다.
사람마다 나를 든든하게 하는, 그래서 주기적으로 채워줘야 하는 허기가 있는 것 같다.
엄마가 지금은 새로운 것들로 당신의 허기를 채우고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신나게 웃고 행복해하는 순간들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