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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May 16. 2022

벌써 일년

치료 종결 검사 part 1

구글 포토에서 매일 아침 띄워주는 '일 년 전 오늘'.


일 년 전 오늘 나와 은우는 2차 이식을 힘겹게 마치고 퇴원하여 집에 와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3주만에 만난 큰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었다. 큰 아이는 모르는 새 너무 커 있었고 그 동안 다잡았던 마음이 한 켠 부터 스르르 녹아버리는 듯 했다.


- 엄마 왜 울어?

- 응 호은이 보니까 너무 너무 좋아서.

- 좋은데 왜 우는거야?

- 너무 너무 좋으면 눈물이 나더라. 웃으면서 우는거야.


그리고 일 년 전 내일, 바닥난 면역력을 다시금 일으키기 위해 수치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가는 일정이 있었다.

내일 오후에는 심리 상담이 예약되어 있었고,

그러다 금요일엔, 은우 오른팔에 수포가 와르르 올라와 대상포진이 의심되어 입원을 했었다. 10일간.


모든게 다 끝났다고 생각해 막판 오열까지 마쳤는데

다시 입원가방을 꾸려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야말로,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민망하고 머쓱하고, 화가 나고 좌절스럽고, 지치고 미안하고, 우울하고 비통한, 하여튼 모든 부정적이고 힘빠지는 형용사는 다 모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마음이었었다.


- 아니야. 호캉스라고 생각하기로 했잖아.

   호텔 바캉스가 아니라 호스피틀 바캉스긴 하지만.


큰 걱정은, 혹시라도 은우가 입원실에 들어가는 순간 경기를 일으키며 난동을 피우진 않을까 였다.  무균실에서 2주반을 있으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 기억이 살아나 환자복 입기를 거부하지는 않을까.  트라우마가 생긴 건 아닐까.


1인 격리실에 들어가 10분 후 나는 또 한 번 깨달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을.

엄마의 걱정은 늘 과하다는 것을.


정작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나라는 것.

경기를 일으키며 난동을 피우는 건 내 기분이었다는 것.

마지막이라고 피날레를 외치고 혼자 울다 웃다한 건 엄마의 드라마였다는 것.


은우는 환자복을 입고 침대위에 앉는 것이 루틴인 것 처럼 편안했다.


- 맞아. 나만 잘하면 된다.


은우에게 병원 생활이 너무 어둡게 남지 않은 것같아 참 감사하고 또 다행이란 안도감이 들었었다.



그랬었다.


나의 일 년 전 요즘은 그랬었다.


2차 이식일로부터 일 년이 지난 시점에 종결 검사(일명 일 년 검사)라는 것을 한다고 했다.  물론 그 사이에 3개월마다 MRI 를 찍어 재발여부를 검사했고 한 달에 한 번 피검사를 하고 면역력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일 년이 흘러, 항암치료가 은우의 몸에 끼친 영향이 없는지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검사를 하게 되었다.


1차 이식 후에도 했던 검사 항목 들이었는데,

은우가 어리다보니 금방 마칠 수 있는 검사도 모두 수면제를 먹여 재운 후에 해야했었다.

예를 들면, 안과, 청력검사, 심장 초음파 등이었는데,

안과 검사는 글을 모르니 눈꺼풀을 까뒤집고 후레쉬를 비춰서 안구의 구조를 확인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산동제를 넣고 30분간 동공이 확장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산동제를 넣을 때 울지 않는 것도(울면 흘러나와서 다시 넣어야 함), 눈에 후레쉬를 가깝게 비출때 가만히 있는 것도, 아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청력검사는 아이가 들렸다는 표현을 할 줄 모르니, 자고 있는 아이에게 헤드폰을 씌우고 머리에 전극을 연결해서 신경의 반응 여부를 확인했다.

심장 초음파는 아기가 조금이라도 울면 심장의 박동 패턴에 영향을 주어 검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편안히 누워있어야 하는데 캄캄한 검사실에 가슴팍을 차가운 젤을 묻혀 문질문질하는데 가만히 있기에는 역시 은우는 너무 어렸다.


수면 검사를 하기위해 먹는 수면제는 최소 6시간 금식, 금침해야 했다. 재우지 않고 먹이지 않는 고문은 엄마의 몫이었다. 그렇게 큰 일 들이다 보니 당연히 입원을 할 거라 생각했고, 최소 2박 3일은 걸릴 것이라 예상했다.


- 그래, 마지막으로 입원해서 해치우자. 화이팅하자.


몇 달 전부터 자가발전하여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각오를 새롭게 해오던 어느 날, 교수님의 진료 방이었다.


- 이제 일 년 검사를 할 겁니다. 여기서 다 잡을 수는 없으니 나가서 예약하고 가세요.

(옆에 앉은 전문 간호사에게) 얘 다 외래로 하면 되지?

- 네.


!!!!!!!!!!!!

그렇다.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일 년동안 은우가 자랐다는 것이다.


이제는 말을 다 알아듣고, 말도 꽤 하고,

잘 설명해주면 어두운 곳에서도 몇 분간은 가만히 있을 수 있다. 굳이 입원까지는 필요없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 우와, 입원 안해도 된대 은우야!!!!!


너무 기뻤다.

수원-강남까지의 길을 몇 번을 오가든, 환자복을 입히지 않아도 되는게 나는 너무 기뻤다.


그 기쁨도 잠시.

검사 항목은 정말 길었다.


- 심전도 검사

- 채혈 (9통)

- 채뇨 (2통)

- 발달 검사

- 심장 초음파

- 머리 MRI

- 척추 MRI

- 흉부 CT

- 피부과

- 치과

- 안과

- 이비인후과


고속도로를 몇 번이나 타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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