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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Dec 03. 2021

돌고 도는 에뚜왈 (etoile)

샹젤리제 대탈출

아뜰리에 수업 장소가 매주 바뀐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기도 했지만, 

파리에서 운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는 긴장되는 일이기도 했다. 

루브르나 오르세처럼 가본 적이 있는 미술관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듣도 보도 못한 곳이면 찾아가는 것도, 주차도, 모든게 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구글맵의 도움을 받아 떠듬떠듬 잘도 찾아가곤 했었는데, 타지에서 사고나지 않는게 최우선 순위었기 때문에 수업 시작 시간에 한참 뒤에나 도착한 적도 꽤 많았었다. 


그 중 가장 큰 지각은 약 1시간 반 지난 후인 8시 경 도착했을 때 였는데, 

바로 에뚜왈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돌고 돌고 또 돌았던 날이었다. 

파리 샤를드골 광장 (개선문 광장)



샹젤리제 거리 끝에 개선문이 있고, 반대쪽 끝에는 루브르와 튈를리 정원이 있는 건 너무나 익숙한 구도인데,

문제는 샹젤리제쪽 외에도 12개(? 정확치 않다) 의 다른 길로 이어져있다는 것이었다. 

항공샷을 보면 별과 같다고 해서 에뚜왈이라 불리는 샤를드골 광장.


광장인데도 차가 다니고, 

차가 다니는데 신호등이 없고, 

무엇보다 환장하는 것은...

차선이 없다는 것이다!


파리에서 운전할 때는 하나만 기억하라고 했다. 

'오른쪽이 먼저다. 오른쪽만 조심해라'


오른쪽에서 들어오는 차는 깜박이를 켜지 않더라도 무조건 양보해줘야 하는 암묵적 룰이 있다고 했다. 

나도 왼쪽으로 끼어들기 할 때는 자신있게 들어가도 된다고. 

그리고 선배들이 알려주지 않은 변수, 오토바이.

오토바이는 어디서든 사이를 비집고 등장하게 마련이었다. 


하나의 룰과 하나의 변수를 가지고 

차선도 신호등도 없는 광장을 돌고 돌고 돌다가

네비가 말하는 '7번째 출구' 혹은 '10번째 출구' 로 나가기란

얼마나 막막하고 어려운 일인지!

그야말로 아비규환, 엉망진창, 오리무중, 혼돈의 장소였다. 


놀라운 것은, 그 혼란스런 와중에도 빵빵 경적소리는 거의 안나고, 사고도 못봤다. 

뭔가 물 흐르듯이 다들 잘도 요리조리 지나가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흐름을 타지 못하고 붙박힌 자동차 모양 조각상 처럼 한치앞을 나가지 못했다.  

내가 안 움직이니, 뒤의 차는 자연히 옆으로 비켜 지나갔다. 

어느 입구인가의 신호가 바뀌어 유입 차랑이 적어질 때까지 (입구가 12개가 넘으니 아주 많이 적어지진 않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진입한 샹젤리제! 그 익숙한 거리를 지날 때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내가 해냈다!


신호등아 고맙다. 가야할 때를 알려줘서.

차선아 고맙다. 가야할 곳을 알려줘서.


개선문 광장의 교통체증 - 각 출구로 나가려는 차와 그 옆 입구로 들어온 차가 엉켜있다.


에뚜왈을 지나 약속된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는 빠르면 30분, 늦으면 1시간 반이 늦어있을 때도 있었다. 

내 눈에 안보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1시간 반 늦은 날은 에뚜왈에서도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났었겠지.


파리에서는 신기했던 점이, 접촉사고가 났을 때 경찰과 보험사를 현장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전용 용지에 서로의 인적사항을 쓰고, 어떤 모양으로 부딪혔는지 그림을 그리게 되어있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고, 서로 동의하고 나서 일단 갈 길을 간 다음 나중에 그 용지를 기반으로 협의가 진행된단다.

어떤 방식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파리에 있는 동안은 전화기를 붙잡고 비상등을 켠 채

차도에 하릴없이 서있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긴, 파리에서 경찰과 보험사를 오라고 하면 반나절 후에야 나타날 것 같다. ㅎㅎㅎ


엄청난 전투를 치르고 난 초보 병사처럼 에뚜왈을 뚫고 기진맥진 도착한 나는 

또 미술관에 들어가 흥분되고 신나는 기분이 되어 그림을 그린 후,

이제는 조금 한적해진 밤 거리를 여유롭게 운전하여 집으로 귀가하곤 했다. 

그림 그리는 날은 정말이지 겨우 씻고 기절했던 것 같다. 

밥먹을 시간이 없어 저녁도 굶은 채로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은 너무 너무 허기졌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주말이나 스케치북을 들고 들어가 쓱쓱 그려도 뭐라 하지 않을 파리 미술관이었는데

그림 그리는 그 하루만 그런 경험을 했던게 아깝기도 하다.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그 땐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밥도 두둑히 먹고

하루종일 미술관 층층이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이것 저것 그려봐야지.


에뚜왈은 절대 경유하지 않는 길에 있는 미술관으로만 골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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