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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Dec 15. 2021

마담madame이라 행복해요

여자에게 잘해주는 파리

아, 제목이 이렇다고 한국 사회에서 내가 성차별을 당했다거나, 여자라는게 불만이었다는 건 아니다. 

지극히, 여자라면 응당 배려해주는 곳도 있구나. 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 뿐. 

차암 좋은 경험이었다.


본사 출장자들과 거래선 미팅을 갔을 때 였다. 

아주 까다롭고 협의가 잘 되지 않는, 업계 1위의 거래선이었고, 

하필 복잡한 이슈들이 힘든 미팅이 될 터였다. 

로비에서 대기하다 우리 일행을 데리러 온 거래선 측 컨택과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동했는데,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그 거래선은 업계 특성 상 모델처럼 키가 크고 정장을 잘 차려입은 직원들이 많았는데, 

당시의 나는 어떻게 설명을 잘 해서 우리의 입장을 납득시킬지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한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모세의 기적처럼, 홍해처럼 많은 내 앞의 인파가 양옆으로 갈라지면서 

멋진 파리지앵들이 나를 바라보며 먼저 타라는 손짓을 했다!


와우. 이게 프랑스인가.


한국에서는 회사 엘리베이터든 백화점 엘리베이터든 몸싸움 비슷하게 탑승하고 

특히 회사에서는 윗분들 편하시게 안내하고 문 닫히지 않게 잡는 경험만 있었지

낯선 이들로부터 먼저 타라는 배려를 받은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지나갈 때도, 내가 문을 먼저 열면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은 

나에게 먼저 지나가라며 옆으로 비켜서거나, 문을 이어서 잡아 주었다. 

회사 식당에서는 내가 문을 열면 그 사이로 먼저 샥 빠져나가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허 참, 많이 다르구나.



아주 아주 우연한 좋은 기회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에 갔을 때였다. 

같이 간 사람들에게 웨이터가 커다란 메뉴판을 하나씩 건넸고, 메뉴 이름들이 띄엄띄엄 써있었다. 

메뉴는 영어로 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석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뭔가를 곁들이고 뭔가에 살짝 구우면서 뭔가로 양념한 뭔가.

이건 도대체 뭘까. 최소한 생선인가 고기인가.

골똘히 메뉴를 해석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남자 일행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남자 메뉴에는 가격이 적혀 있고 여자 메뉴에는 가격이 없는거."


미슐랭 2스타 Laserre 레스토랑


진짜 그랬다!!!!


그 분의 메뉴에는 메뉴마다 가격이 적혀있었고 맨 위에 있는 메뉴가 (내가 주문하려고 한) 제일 비쌌다!

여자들이 가격 생각 안하고 정말 먹고 싶은 걸로 주문하라는 배려인건지,

같이 간 남자들은 긴장하겠지만 말이다...ㅎㅎㅎ

암튼, 나는 결국 가격을 보았기에 3번째 있는 메뉴를 주문하고 말았다. 

확실히 가격 없는 메뉴가 자유롭구나...

너무나 신선한 문화였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여자 화장실에서도 흔히들

"오우~ 오늘 셔츠 이쁜걸!"

"와~ 너 헤어 스타일 멋지다~"

이런 칭찬이 오가곤 했는데, 

한국에서라면 성희롱이니, 불쾌감을 준다느니 이슈가 될 수 있는 말들도

파리에서는 순수한 칭찬으로 받아들여졌으니 

문화란 참 미묘하면서도 강력한 것이 아닌가.


아주 예전 티비 광고에서 고현정 배우가 가전 광고를 하며

"여자라서 행복해요" 

라고 해 수많은 행복해야 할 여자들의 공분을 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파리에서는

여자라서, 마담이라서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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