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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살다 Jun 08. 2022

베르사유에서 넘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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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짜리 둘째가 베르사유 정원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잘 닦여진 비탈길을 신이나서 뛰어내려 가더니, 그만 가속도가 붙어 고꾸라졌다.

뛰지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귓등으로 듣기로 결심한 모양인지 잘도 달린다 했다.

불안 불안한 마음으로 주시하다 결국 앞으로 고꾸라지는 아이의 실루엣을 희미하게 보고는 이제 내가 전력질주를 했다.

베르사유의 웅장한 규모답게 비탈길도 웅장해서 한참을 달려야 했는데 그 사이 지나가던 이슬람계 관광객 아줌마가 은우를 일으켜주었다.

이미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아이였다.

정원의 바닥은 잘게 부순 자갈같은 돌들이 깔려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피부는 넓게도 까졌다.

차라리 커다란 돌들이 바둑판처럼 있는 바닥이었으면 멍만들고 말았을텐데. 얼마나 쓰라릴까 하는 생각에 너무 속이 상했다.


- 이거 봐라, 엄마가 뛰지 말라고 했지! 소독약도 없는데 어떡할 거야!


울고 불고하는 아이를 세워두고 호통을 치는 나였다.

그런 내 입을 손으로 막는 7살짜리.


- 엄마는 넘어진 것도 아픈데 왜 화를 내? 위로를 해줘야지!


맞는 말이었다.

점점 꼬맹이가 맞는 말을 하는 때가 늘어나고 있다.

분하게도.


핸드백에 있던 밴드로 일단 비상조치를 했다.

그래도 넘어지면서 이마나 코를 땅에 부딪치지 않아서 첫만 다행이라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며 말했다.


- 엄마, 나도 그 생각했어! 우린 텔레파시가 통하나봐.


환하게 웃는 7살 꼬맹이라니.


숙소로 돌아와 비상약 파우치를 뒤져보니 이지덤 씬이 보였다. 할렐루야!


아이를 깨끗이 씻기고 이지덤을 붙여주었더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이지덤을 챙길 때만해도 베르사유 정원에서 생긴 상처에 쓸 줄은 몰랐다.

아이들과 여행을 하니 꿀팁이 늘어간다.


- 미술관 박물관에는 무조건 핸드백에 젤리를 챙겨라.

- 비상약통에는 이지덤을 꼭 넣자. 일타삼피 정도 된다.

- 햇반, 레토르트 카레 짜장은 무조건 많이.

- 아이가 아무리 커도 유모차 완전 필수. 장보고 나서 짐 캐리어로도 완벽하고, 유모차가 있으면 우선 입장시켜주는 곳이 많다!

- 핸드폰 테더링 필수. 어디서든 아이에게 유튜브를 선사하자. 내가 고흐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고 싶다면. 아이는 전혀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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