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런게 있잖아요?
마음껏 해보고 싶은 거.
과유불급의 지혜와 중용의 미덕이 칭송받는 시대
그래도 이것만큼은 눈치 안보고 질릴 때까지 하고 싶다!
과하고 과하도록 쌓아놓고 싶다!
그런 거.
하나쯤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소싯적부터 맘 편히 과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바로 '문구' 이죠.
장난감이나 과자, 만화책은
하나를 추가 확보하려면 치밀한 눈치작전과 계획, 그리고 장렬한 투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노트 한 권, 펜 한 자루, 지우개 하나를 더 사는 것은 어떤가요?
-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려고?
- 공부 한다는 데 어떻게 안사주겠니.
- 너는 참 공부에 관심이 많구나, 어쩜 사달라는 것도 하나 같이 학구적이니?
칭찬일색일 것입니다.
그래요.
'문구'는 '공부'와 직결되어있습니다.
'학문'의 '도구'이니까요.
그래서 수많은 펜과 노트를 구경하고 구입하는 일은 묘한 당당함을 줍니다.
쓸데없는 돈 낭비가 아니잖아요.
이 소비는 언젠가 '학문'을 하기 위한 것이거든요. '언젠가'.
엄마에게 들었던 가장 심한 말도,
- 문방구를 차려라 문방구를 차려!
입니다.
심한 축에도 끼지 않는 말이죠.
처음 매혹 당했던 문구는
분필입니다.
흰색 노란색 핑크색 하늘색 분필.
한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커다란 진초록 칠판에
땅땅, 혹은 삭삭, 혹은 삐익삐익 소리를 내며 판서를 하는 선생님의 뒷모습은
참 흥미로웠습니다.
손가락만한 분필로 써내려가는 글씨들이
선생님마다 다른 것도 신기했죠.
수업이 끝나면 몰래 분필 몇개를 주머니에 넣고 집에 가져갔습니다.
장농 문짝을 열고 문 안쪽에 열심히 땅땅 소리를 내며 판서를 했습니다.
의자를 가져다 놓고 올라가
맨 위부터 맨 아래까지 한가득 분필로 글씨를 쓰고 나면
마음이 충만하고 뿌듯했습니다.
대단한 석학이라도 된 듯 했지요.
무엇을 썼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부엌에서 행주를 가져다 빡빡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불쌍한 장농은 원목의 고색창연함을 잃고
희뿌연 색으로 바래져갔습니다.
퀴퀴한 행주냄새까지 더했죠.
그래도 참 즐거웠다, 장농아.
조금 더 자란 후에 크레욜라에서 나온
색색의 분필 셋트를 발견했습니다.
무려 12가지 색이었으니,
우와... 정말 세상에 그런 아름다운 존재가 있을까요?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처음 발을 내딛는 기분,
다들 아시죠?
아무도 쓰지 않은 날렵한 분필 모서리를 처음으로 칠판에 대고 한 획을 긋는 기분도 아시나요?
짜릿합니다.
그렇게,
1인의 문구광이 탄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