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당에 다녔습니다.
외할머니가 살고 계시던 2층 집은
지금 떠올려보면 서당 이었던 것 같아요.
하교 후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교자상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저녁 밥을 먹기 전까지 열심히 쓰던 그 곳.
고척동 서당이라고 부를까요?
외할머니가 직접 개발하신 '핸드메이드' 교재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한문과 명언들을 볼펜으로 쓰시면 따라 쓰는 연습교재,
그림을 오려 공책 반 페이지에 붙이시면 그 그림을 설명, 묘사하는 글을 쓰는 교재.
교과 과정과 연계가 되어있다거나, 연령별로 분화된 수업은 당연히 아니었지요.
그야말로 조선시대 유학자의 시대에
온 동네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늘천 따지를 외우던 천자문처럼
고척동 서당에는 나이불문, 학년불문
한 과목당 하나의 커리큘럼만이 존재했습니다.
'이야기 한국사', '한문', '그림보고 글로 쓰기', '산수', '경필 공부'
나는 경필 공부가 제일 좋았습니다.
경필 공부란 글씨를 바르고 아름답게 쓰는 연습입니다.
외할머니를 비롯하여 외삼촌, 엄마, 아빠, 이모 등 주변 어른들은
글씨를 기가 막히게 잘 쓰셨지요.
명필 (名筆) 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획들은 곧고 힘찼으며 글자 하나 하나는 균형미와 세련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네모칸이 쳐진 공책에 (원래는 한문연습 공책)
한글을 또박또박 아름답게 쓰는 일은
명필 가문의 일원으로서 (어느 단체에서든 공인된 적은 없지만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최근 힐링이다 취미생활이다 해서 캘리그래피를 많이 하던데,
써놓은 글씨들을 보면 이리 저리 획을 휙휙 날리며 그림처럼 글씨를 그리기도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필체로 글씨 자체가 그림처럼 느껴지는 캘리그래피도 있지요.
저는 30년 전에 이미 캘리그래피를 하며 즐거워했던 것입니다.
할머니의 서당에서 글씨가 주는 아름다움에 오롯이 집중하면서요.
완전 무결한 글씨를 위해 연필은 주사 바늘보다 뾰족해야 했고, 공책을 덮었다 펴도 묻어나지 않는 HB 심이어야 마땅합니다. 진한 심으로 써 지저분하게 번진 글씨만큼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없지요.
보다 청량한 필기감을 위해 책받침도 필수 입니다.
간혹 그 수명이 다해 이미 그 단단함을 잃고
글씨 자국이 여기 저기 눌려있는 책받침을 사용하게 될 때면
장마철 덜 마른 티셔츠를 입은 것처럼 기분이 눅눅했습니다.
책받침이라면 자고로 가을 아침 공기처럼 상쾌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혹여라도 공책과 책받침 사이에 지우개 가루가 껴서
선이 뭉개지고 종이가 찢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글씨를 쓰기 전 책받침을 청결히 꼼꼼히 털어내고
공책 뒷면에 받친 후 입바람으로 후후 불어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할머니의 서당에는 몽당 연필들이 많았어요.
몽당 연필을 커터칼로 뾰족하게 깎아 쓰곤 했지요.
샤프 펜슬은 초등학생이 써서는 안될 사치품이었어요.
할머니는 샤프나 볼펜을 학생이 쓰면 글씨를 망친다고 하셨습니다. 학생은 연필이 제격인 것이죠.
그러다 3학년 때 박소영인지 김소영인지 이소영인지 어쨌든 짝이 된 소영이의 필통은 저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죠.
필통 끝에서 끝까지 늘씬하게 뻗은 새 연필들.
나무에서 심까지 동그랗고 뾰족하게 정리된 그 형태라니.
소영이네 집에는 연필깎이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자동 연필깎이래요.
- 엄마!!! 나도 연필깎이 사줘!!!!
카파 연필깎이를 들이고 (아시죠? 실버컬러에 약간 기차모양의 국민 연필깎이)
그 후로 저는 새 연필을 사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물론 사치스러운 아이가 되어서는 안되니 할머니 서당에 갈 땐 한 자루씩만 들고 갔지요.
하지만 제 책상서랍, 제 책가방에는 온갖 종류의 키다리 연필들이 가득했습니다.
지우개가 달린 연필, 캐릭터 공주님이 그려진 연필, 미국에서 온 것 같은 샛노란 몸통의 연필, 까만 나무로 만들어진 연필, 연필, 연필! 연필!
연필에서는 좋은 향기도 나잖아요.
연필심의 쌉쌀하고 지성적인 냄새.
(바이레도에서 연필심 향 향수가 나왔다고 하던데요)
나무의 시크하면서도 다정한 냄새.
커다란 필통에 나란히 키 순서대로 채워놓은 연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코를 킁, 대고 향기를 맡으면
어찌나 향학열이 솟아올랐던지!!!
저의 국민학생 시절,
쓰는 것이 많았던 서당 시절,
연필은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짧아지는 학습량의 척도이기도 했습니다.
저의 자랑이자 기쁨이었죠.
아,
갑자기 필통 한가득
연필 한 다스를 잘 깎아 넣어놓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