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로 Oct 19. 2023

가까운 사람들은 날 지지해 줄 거라는 착각

퇴사하기 힘들다, 특히 공무원

퇴사를 생각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결정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친구는 내가 1년째 같은 고민을 한다며 1년 전 주고받았던 카톡 대화를 캡처해서 나에게 보내줬다. 카톡을 받고 보니 진짜 그랬다. 나는 1년 넘게 퇴사를 고민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고민만 한 채로 1년을 보냈다니, 그렇다면 충분히 고민은 많이 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동안 퇴사에 관한 많은 글과 영상들을 보았다. 남들은 어떻게 퇴사했는지, 퇴사 후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멘토라고 불리는 유명한 사람들이 퇴사에 관해 조언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준비하고 퇴사해라, 직장에 다니며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수익이 내 월급보다 많아졌을 때 회사를 나와라'라고 했다. 그들의 말에 따라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기는 했으나 수익을 내는 단계까지는 아니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나는 이런 상황에서 퇴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또 계속 다닐 수도 없었다. 이대로 계속 산다면 언젠가 몸과 마음 중 어딘가에 심하게 병이 들 거 같았다.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이 정도 버텼으면 많이 했어. 이제 그만둬도 괜찮아'라고 확실하게 말해주길 바랬다. 그리고 그게 내 가까운 가족이길 바랬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도 있는 엄마였고, 생계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의 직장은 정년이 보장되는 숨막히게 안정적인 곳이었다. 현실적으로 나의 가족들도 쉽게 날 지지하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다.


내가 퇴사 얘기를 꺼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남편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평소에도 걱정이 많으신 부모님은 나 때문에 또 하나의 큰 걱정을 안게 되었다. 한동안 그들의 표정과 반응을 곱씹으며 나의 선택을 다시 돌아보았다.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고, 나 자신을 질책하는 기간이 얼마간 이어졌고 더 깊은 괴로움으로 빠져들어 병원까지 찾게 되었다.


약을 먹고 버티면서 나에게 물었다. 길을 걸으면서, 공원에서 뛰면서 틈나는 모든 시간에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남들에게는 물어보고 눈치를 보면서 나 자신에게는 한번도 묻지 않았었다. 한동안 입을 꾹 닫고 대답이 없던 내 안의 나는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나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왜 나를 돌보지 않냐고. 그 대답의 소리가 점점 커졌고, 나는 확실히 마음을 결정할 수 있었다.


왜 그동안 스스로에게는 묻지 않았을까. 나는 그저 움츠러든 채로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나에게 묻고 스스로 결정한 이후로 나는 가족들의 반응이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들의 걱정은 걱정이고,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한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돕는 것은 나뿐이었다. 내가 나를 지지하면, 가족들도 결국에는 나를 지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나를 괴롭게 하는 문제가 있다면 답은 나에게만 물을 것. 대답이 없어도 계속 물을 것. 스스로 대답을 얻고 나면, 내 인생을 다른 누군가의 기대대로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을 차려보니 민원대에 앉아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