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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Oct 17. 2023

정신을 차려보니 민원대에 앉아있었다.

하필이면 공무원

공무원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공무원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했던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난 민원대에 앉아 끝없이 다가오는 사람들의 문제를 받아주고 있었다. 귀가 어두운 어르신에게는 목소리를 잔뜩 높여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뭔가에 화가 나서 소리치는 사람에게는 애써 차분한 척 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아동학대가 일어나지는 않는지 어떤 가정집에 들어가 눈치를 살펴야 했고, 어느 날은 좁고 험한 산길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 멧돼지가 얼마나 피해를 입히고 갔는지 조사해야했다.


매일매일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는지, 나는 어떻게 이 곳에 흘러들어왔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왜 하필이면 공무원이었을까. 



내가 대학생일 때 부모님은 나의 전공과는 관계없이 공무원이 되라고 하셨다. 먼저 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된 한 살 많은 나의 언니는 우리 삼남매의 모범이자 자랑거리였다. 나의 졸업이 다가오면서 언니처럼 공무원을 하라는 부모님의 압박은 점점 더 심해졌다. 하지만 공무원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는 당연히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 당시엔 듣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졸업 후 나는 전공을 살려 방송국에 취업했다. 방송에 나갈 영상을 편집하고 자막을 만드는 일을 했다. 회사에 취업을 해서인지 부모님은 나에게 더 이상 공무원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도 내 일이 싫지 않았다. 야근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일이 안 맞아서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며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고 아이를 몇 년 키우고 나니, 내 나이가 30대 중반이 되어 있었다. 정신없는 육아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쯤 이 나이에 직업이 없다는 게 덜컥 겁이 났다. 마흔이 되기 전에는 어디에라도 들어가 앉아야할 것 같아 조급해졌다. 하지만 그 당시엔 경력도 이미 단절되어 다시 하던 일로 취업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결혼 후 지방으로 내려온 터라 일자리도 많이 없었다. 그러다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공무원이나 할까'


내 무의식에 공무원을 하라는 부모님의 얘기가 너무 많이 주입되어 그런걸까. 내 남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하는 데는 며칠이 걸리지도 않았다. 당시 생각하기엔 30대 중반의 경력이 단절된 여자가 딱히 다른 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지금 생각하면 30대 중반에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은 무궁무진하다.) 부모님께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하니 부모님은 자식 중 두명이나 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던 언니는 잘 생각했다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책값을 마구 대주었다. 그렇게 나는 앞날을 모른 채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 나는 매일 아침 내가 오늘은 무슨 일을 겪을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오늘 어떤 사람이 올 지, 또 어떤 이상한 업무가 떨어질 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면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편인데 공무원 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일반 사무직 느낌의 업무와는 또 다른 무언가였다. 인수인계 없는 업무 배정과 예고없는 발령, 새로 생겨나는 업무들과 이로 인한 일 몰아주기. 거기에다 민원인이 폭언을 하고 기물을 파손해도 일상이라는 듯 넘어가는, 대낮에도 술에 취한 사람이 들어와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들이 너무 태연하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이 세계엔 딱히 설명이란 것이 없었다.


왜 하필이면 공무원이었을까. 공무원시험 합격이 유일한 목표였던 시기를 지나 공무원 퇴사가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잘못된 걸 알았는데 계속 갈 순 없었다. 나는 나를 구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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