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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Oct 24. 2023

지방직 공무원 정말 하실겁니까

그 안에서 힘들다면 살 길을 찾길

30대 중반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던 내가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했을 때 나를 말리던 유일한 한 사람이 있었다. 공무원 생활을 2년하고 그만 둔 친구였다. 그녀는 내가 공무원 준비를 한다고 했을 때 정말 심각하게 나를 걱정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카톡을 보내 '정말 할 거냐'고 물어보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때는 공무원이 그냥 일반 회사 사무직과 별 다를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뭐라도 직장을 잡아놔야할 것 같았다. 그 친구는 내가 시험 준비를 계속 하자 '그래, 나는 분명히 말렸다.'라며 결국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


"그 때 나 좀 더 말렸어야지.." 라고 말한 건 내가 공무원에 들어온 지 1년도 채 안되서였다. 뭐든지 겪어봐야 안다고 그 때서야 그녀가 나를 왜 그렇게 말렸는지 완전히 알 수 있었다. 다시 공무원을 준비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일도 생각할 수 있었을텐데 왜 공무원 하나만 바라보고 공부했을까. 그 친구한테 그만두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강력한 지지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이 나이에 어렵게 들어왔는데' 하는 생각에 쉽사리 사표를 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는 생활이 계속 됐다. 



긴긴 고민과 괴로움의 시간을 보내고 결국 나는 사표를 내게 되었다. 근무일을 며칠 남겨두고 나는 사내용 메신저로 그동안 업무차 많이 연락했던 시청 담당자들에게 짧게 인사를 했다. 내가 퇴사하게 되었고, 그동안 감사했다, 그리고 내 업무는 당분간 000가 맡아줄것이다, 라는 짧은 내용. 공무원 특성상 인수인계가 정말 안되기 때문에 처음 이 자리에 왔을 때 시청 담당자들에게 업무 관련해서 많이 물어봤었고, 잘 알려주는 몇몇 직원들이 정말 고마웠다.


나는 행정직이지만 일을 못하겠다고 떠난 복지직 직원의 업무를 맡았었다. 복지직업무를 1년간 하고 익숙해졌을 때쯤 다시 비어있는 농업직의 자리로 옮겨갔다. 농업직의 자리로 발령이 났을 때 과장님은 나를 불러 연신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 때는 농업직이 그렇게 힘든 업무인지 잘 몰랐다.


농민 대상의 정부사업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농민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오는지도 몰랐다. 처음 들어보는 각종 농업, 축산업 용어는 생소했고 민원인들은 끝도 없이 찾아와서 내가 잘 모르는 소리들을 했다. 당연히 인수인계는 없었고, 매일 민원인이 오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물어보는 게 일이었다. 옆에서 내게 일을 알려 줄 사람은 없었다. 공무원은 인수인계가 없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라 일을 전혀 모르는 채로 그 자리에 앉는다. 그럼 그 날부터 그 일은 내 책임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혀놓는다. 그러면 그 시간부터 바로 다가오는 민원인을 응대해야 하고, 내가 알아서 내 살 길을 찾아야 한다.


하루하루 출근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출근하면 매일 똑같이 나보다 더 먼저 와서 항상 내 자리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상한 민원인 아저씨를 보는 것도 싫었고, 술을 마시고 와서 큰소리 치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혼란스러웠다. 쏟아지는 업무와 민원인들을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난생 처음 암에 걸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과장님이 그렇게 사과를 하신거구나 겪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운이 없었다. 행정직이면서도 복지직을 하다가 농업직으로 옮긴 나를 보며 사무실 사람들은 물론 자주 오는 민원인들까지 안타까워했다. 어떻게 그렇게 힘든 자리만 다니냐고. 내가 정말 운이 없었던 걸까. 사표를 낸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운이 없지 않았다면 이 조직에서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기에.



메신저로 시청 담당자들에게 인사를 하니, 진심 어린 답장들을 보내준다. 힘든 자리에서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얼굴도 안 보고 메신저나 전화로만 소통하던 사이인데, 그만둔다고 하니 부서로 찾아와 인사를 하고 선물을 준 직원도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퇴사 소식에 미안해하고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생각해봐야 할 사람들은 나의 상급자들이어야 할 것 같은데,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주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8, 9급의 직원들이었다. 그들도 내가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결정 공감하겠지.


혹시나 나처럼 이 조직 안에서 너무나 힘든 사람이 있다면 휴직이든, 전출이든, 얼른 대안을 찾길 바란다. 무작정 버티지 말고 힘들다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이 모든 것을 아는 상태로 다시 30대 중반의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서 다시 나에게 묻고싶다. '너 정말 공무원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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