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나의 에너지 아끼기
공무원으로 민원대에서 근무하던 초기에 스스로 발견한 나의 특징은 내가 쓸데없이 웃는다는 것이었다. 민원인이 찾아와서 어떤 일을 신청하거나 문의할 때 나는 내가 대화 끝에 항상 '흐흐'하며 웃는다는 것을 알았다. 쏟아지는 업무와 민원인에 너무 힘든데도 누군가 뭘 물어보면 끝에 '흐흐'하고 실없는 웃음을 덧붙여 대답했다.
내가 누구에게든 그렇게 대화 끝에 의미없이 웃는다는 것을 알고나서 나는 다른 직원들이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민원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일을 처리해주고, "다 되셨어요." 같은 간단한 인사말로 민원인과의 업무를 마무리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눈을 마주치며 일부러 미소를 지어보인다거나 의미없이 웃지 않았다.
물론 천성이 밝아서 항상 밝은 표정으로 민원인을 응대하는 직원도 있었지만, 나는 천성이 밝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근데 나는 어둠의 천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민원인들과 대화할 때 항상 '일부러' 친절하려고 했다. 나의 친절은 본래의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느낌이었다.
점점 사람들이 오는 게 싫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왜 내 감정이나 상태와 상관없이 굳이 친절하려고 했던걸까. 아무도 나에게 그 정도의 친절과 웃음을 요구하진 않았다. 내 스스로 '나는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힘들 때도, 일하기 싫을 때도 나는 시키지도 않은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을 대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저 잠깐 업무 때문에 들른 민원인들에게도 말이다.
매일같이 기가 빨려 퇴근을 하던 어느 날 나는 나의 에너지를 좀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쓸데없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로 집에 들어와 아이들에게는 친절하지 못한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정말 친절하게 대할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나는 나에게 친절해야 했고, 내 에너지를 아껴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에게 써야했다. 다시 보지도 않을 민원인에게 억지로 웃음지을 게 아니라 내 앞의 아이, 가족을 따뜻하게 웃으며 바라봐야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나는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졌다. 업무를 처리하러 온 사람들에게는 업무를 잘 처리해주면 된다. 불친절할 필요도 없고, 억지로 친절할 필요는 더욱 없다. 그렇게 감정을 쓰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일을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안될 때는 옆자리 직원의 태도를 참고했다.
그렇게 감정에너지를 조금 덜 쓰니 사람들을 대하기가 훨씬 편하고 오히려 더 여유로워졌다. 예전에는 내가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도 무례하게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두배로 화가 나 혼자 화를 삭이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나도 감정을 빼고 업무로만 사람들을 대하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해줬는데 너는 왜그래, 라고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나중에는 나를 무례하게 대하는 민원인이 있으면 나도 어느 정도 선을 지켜가며 말투를 급 냉정모드로 바꾸는 기술도 생겼다.
나처럼 직장에서 말끝마다 의미없는 웃음을 기본모드로 장착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또는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기본모드를 좀 바꿔보길 바란다. 훨씬 가볍고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