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 달 살기 프로젝트(12)
일본에 있으니 이웃집 토토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오프닝이나 엔딩 주제곡은 곧잘 부르면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잘 몰랐다. 머리를 두 갈래로 묶은 아이가 메이. 메이의 언니가 사츠키, 이들의 아빠가 타츠오라고 한다. 토토로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셋이 뜨거운 탕에 모여 앉아 목욕을 하는 장면이다. 작은 욕실의자에 앉아 몸에 거품칠을 한다.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무서웠던 아이는 후딱 거품을 씻어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에 쏙 들어간다. 아빠가 아이들과 장난칠 때마다 욕조에서 물이 풍덩풍덩 빠져나온다. 나에게 욕조에서 즐기는 목욕의 이미지는 딱 이렇게 굳혔다.
고모가 할머니에게 목욕하자고 한다. 오늘 나가서 시내를 많이 걸었으니, 뜨끈한 물에 몸을 좀 풀자고 했다. 나도 덩달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본에서 풍덩풍덩 목욕을 즐길 시간이 와버렸다.
한국 우리 집엔 욕조가 없다. 목욕을 못한다. 욕조목욕에 대한 로망이 꽤 큰데도 목욕을 제대로 즐긴 적이 별로 없다. 찜질방에나 가야 뜨끈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나는 물을 좋아해서 물속에 들어가 있는 순간을 진심으로 즐긴다. 물이 주는 압력에 몸과 마음이 안락해지고, 몸이 부유하는 느낌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깊은 물 밑의 어두컴컴한 미지의 세계가 무섭지만 짜릿하다. 내 꿈은 언젠가 아가미가 생겨 바다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일단 작은 욕실의 반을 차지하는 욕조에서 물 만난 고기가 돼야지.
할머니가 제일 먼저 씻었다. 다음으로 고모가 씻었다. 다음으로 다른 고모가 씻었다. 그리고 내 차례다! 녹차입욕가루를 넣어서 물이 초록색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다. 발가락을 쏙 넣어보니 온도가 따듯하니 딱 알맞다. 욕조 앞에서 빠르게 몸을 닦고 탕으로 들어갔다. 내 몸의 부피만큼 물이 쑥 올라온다. 욕조 끄트머리에서 찰랑거리며 물이 빠져나가다 말다 한다. 내 다음으로 씻을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느긋하다. 욕조에 몸을 구겨 넣고 물이주는 압력과 부유감을 최대한 느껴본다. 고개를 숙여 찰랑이는 물에 얼굴을 담그고 팔을 둥둥 띄운다. 물이 초록빛이라 바다에 살고 있는 미역이 된 것 같다. 기분이 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