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그림책, <아이스크림 먹을래>
원래 3차 밑그림을 그려야 하지만 2번이나 스케치 작업을 하다 보니 지겹기도 하고, 빨리 색을 입혀보고 싶어서 채색작업으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2번째 스케치에 바로 색을 칠하는 게 아니라 또 소소하게 스케치 수정을 해야한다. 선생님께서는 수정하면 수정할수록 좋은 그림이 나온다고 하지만 그림에 소질이 없는 생초보자에게는 막일처럼 고역으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손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해야 한다. 공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하셨는데 알지도, 좋아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저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될 때까지.
여행은 출발 전 짐 쌀 때가 가장 설레듯이, 그림은 재료를 주문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걸 알았다.
채색은 색연필로 하기로 했다. 물감이나 파스텔 같은 그림 도구를 잘 다루지 못하는 초보자는 색연필을 쓰라는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집에 있는 수성 색연필은 아이가 많이 써서 거의 몽당연필처럼 되어 버렸다. 얼씨구나 새로 사기로 했다. 되도록 색이 많으면서 저렴한 걸로 골랐다. 검색하다 보니 유성 색연필이라는 게 있고 발색력이 좋다고 해서 호기심에 주문했다. 유성과 별도로 그냥(수성도 유성도 아닌) 색연필도 하나 더 주문했다. 220g 8절(270*390mm) 켄트지 100 매도 주문 완료.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처음 알게 된 라이트 박스도 주문. 채색하다가 실패하면 지울 수도 없고, 어떻게 매번 밑그림을 그리냐며 징징거리는 내게 선생님께서는 라이트 박스라는 신문물을 알려주셨다. 라이트박스(드로잉 패드)는 빛에 비치는 그림을 대고 그릴 수 있는 도구이다. 8절지에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A3 사이즈가 사용하기 편리하지만 가격이 조금 비싸서 A4 사이즈로 구매했다. 여러 제품이 있는데 가장 저렴한 걸로 샀다. 전문가도 아닌데 굳이 좋은 걸 살 필요가 없다 싶었다. 색연필, 종이, 라이트박스를 사느라 나름 거금을 들였다.
아래 그림은 샘플 채색을 한 그림이다. 아이가 쓰던 색연필로 색칠을 해보았다. 스케치 작업을 할 때는 내가 그림에 조금 소질이 있지 않나 하는 약간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색칠을 하고서야 알았다. 역시 나는 똥손이라는 것을. 초등학생 색칠공부보다 못한 그림에 의욕이 완전히 떨어져서 3차 밑그림 작업도 안 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같이 그림 그리는 선생님들께서 예쁘다고 격려를 해주셔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칭찬은 고래만 춤추는 게 하는 게 아니다. 다시 마음을 잡고 재료를 주문하니 의욕이 조금 솟아났다. 우울할 때는 쇼핑이 약이다.
라이트박스에 대고 밑그림을 그리고, 세세한 건 다시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한 다음에 드디어 색칠.
유성이라고 딱히 다른 건 못 느꼈다. 가리지 않고 섞어서 채색했다.
선생님께서 샘플 채색 그림을 보고 아래 나무들이 어색하다고 하셨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해서 아예 빼버렸다. 빨강 계열을 좋아해서 산뜻한 붉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걸 표현했는데 다 칠하고 나니 태극문양처럼 보였다. 정치적 성향이 아닌 애국심의 발현이라고 하자.
채색도 밑그림과 같이 여차하면 다시 그려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번이 끝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충 칠할 수는 없다. 자꾸 그려야 실력이 느니까. 별것 없어 보이는 저 그림 한 장 그린다고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다.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면 갑자기 허탈감이 밀려온다. 여긴 어디고, 난 뭘 하고 있는 건가. 온갖 해야 할 일과 쓰다 만 글 조각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난 왜 이 귀한 시간에 색연필을 휘두르고 있는가. 그럴 땐 재빨리 아이 생각을 해야 한다. 딸아이는 자기 책이 언제 나오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보고 그림을 보여달라고 한다. 자기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신나는지 질리지도 않고 계속해서 확인한다. 그림 그리는 게 힘들어서 이번만 하고 때려치워야지 하다가 기대에 찬 아이의 반응을 보면 이걸 매년 작업해서 시리즈로 만들어야겠다는 장밋빛 미래가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그래서 엄마는 오늘도 설거지, 빨래, 청소는 다 미뤄놓고 색연필을 쥐고 책상에 앉았다. 똥손이면 어떠랴. 사랑의 힘으로 부족한 실력을 메꿔야지. 1장 색칠했으니 이제 15장 하고 1/2장 남았다. 7월 둘째 주까지 완성하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