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달래로
여름에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으로 이사를 왔다. 결혼하면서 살게 된 강서구에서는 약 7년 동안 세 번의 이사를 했다. 공항동, 마곡동을 거쳐 지금은 화곡동에 임시 안착. 전세기간이 끝나는 2년 뒤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화곡8동 주민이다.
가을에 웹서핑을 하다가(아마도 무슨 자료를 찾는 도중이었는데) 문헌학자 김시덕의 대서울 시리즈를 알게 되었고 3권의 책 중 <서울선언>과 <갈등도시>를 읽었다. 누가 봐도 중요하다고 꼽을 수 있는 유적지와 랜드마크가 중심이 되는 여느 서울 여행기와 달라서 색달랐다. 더해서 서울의 근현대사에 대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어 지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유익한 독서였다. 책을 읽고 결심했다. 나도 내가 사는 곳의 소소하고 변변찮은 현재를 기록으로 남겨보리라. 2년 중 반년이 지나갔으니 기한은 약 1년 반. 1년 반 동안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부지런히 걷고 찍으며 화곡동을 돌아보려 한다.
최근에 봉제산 등산을 시작했다. 집 근처라 오고 가기가 편하다. 봉제산 정상에는 봉수비가 있다. 백제시대부터 봉화를 올리던 곳이라는데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구청에 물어보면 알려나. 코로나19로 바쁠 텐데 이걸 또 전화해서 물어보려니 민폐 같아서 일단 찾을 수 있는데 까지 찾아보기로 했다.
백제시대부터 봉화를 올렸다는데 조선시대에도 봉수대로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논문도 찾아보고 문화재청의 보고서도 보았지만 봉제산 봉수대에 대해서는 찾을 수 없었다. 찾다 보니 시간만 가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타임이 오려던 때에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대구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박영익 선생님이 쓴 <불길순례>라는 책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은 퇴직하셔서 '운봉관방유적연구소'의 소장이 되어계셨다. 어쨌든 그분의 책에 실마리가 있을 것 같아 책을 보려는데 마침 예스 24 오목교 중고서점에 책이 있어서 사러 가기로 했다. 편도 약 3.3km. 배송비도 아끼고, 차비도 아낄 겸 운동 삼아 걸어가기로 했다. 걷는 거 좋아한다.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중고서점에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찾아서 후루룩 넘겨보았다. 예상과 달리 내가 원했던 정보는 없었다. 조선시대 봉수망은 5개인데 3개는 북쪽에서 한양으로, 2개는 남쪽으로 한양으로 향한다. 부산에서 충주를 거쳐 한양으로 오는 제2거와 전라도에서 홍천을 거쳐 한양으로 오는 제5거는 남한에 있으니 현재 유일하게 답사가 가능한데 <불길순례>에서는 제2거만 다루고 있었다. 제2거만 다루기에도 내용이 너무 많아 제5거는 다음을 기약하신다고... 정작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개화산 봉수대가 들어가는 제5거 였는데 말이다. 그래도 책을 샀다. 봉수 관련해서 일반인이 보기에 가장 쉽고 자세한 책은 아마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구할 수 있을 때 얼른 구해야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서 집으로 향했다. 저자에게 제5거를 다룬 두 번째 책을 문의하고 싶었는데 연락처를 알 수 없어서 포기했다. 지금도 열심히 답사를 다니고 계실 듯. 봉수대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나서 다시 포스팅할 계획이다. 봉제산 봉수대에 알고 계신 분은 연락 주세요~
집으로 오는 길에 아주 독특한 걸 발견했다.
가로수가 털실 옷을 입고 있었다. 대개 짚을 두르는데 말이다. 곰달래로 일부 구간의 나무가 털실 옷을 입고 있었다. 누가, 왜 했는지는 마지막 사진에 힌트가 있는 듯 하나 정확히는 모르겠다.
마디마디신경외과의원(강서구 곰달래로 167)에서 화곡부성약국(강서구 곰달래로 223)까지 약 600m 도로 양 옆의 가로수만 털실 옷을 입고 있다. 이런 건 처음 봐서 무척 신기했다. 언제 설치했는지 언제 제거할지 모르겠지만 이번 겨울 오고 가는 주민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자그마한 설치미술이 아닐까 한다. 봄에 수거한 짚은 태워도 환경오염 성분이 나오지 않는데 털실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냥 묻으면 썩는데 얼마나 걸리려나. 몇가지 의문이 떠오르기는 한다.
화곡동은 화곡본동, 화곡 1동~8동까지 있는 꽤 큰 동이다(5,7동은 없다). 화곡동 전역을 누비려면 다리가 좀 아플 것이다. 지난주에는 봉제산에서 하산해서 집으로 오다가 길을 잃어서 골목길을 등산하기도 했다. 봉제산과 까치산 사이 구간은 경사가 심해서 큰맘 먹고 올라야 한다. 산 넘고 물 건너는 마음으로 화곡동을 답사하리라.
다음 글에서는 화곡동의 역사에 대해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