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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an 28. 2022

대방광불수소연의초 목판

 

판전 내부, 출처: 문화유산채널(상세주소는 출처1)


판전에 보관중인 경판,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판전에 보관된 경판, 출처: 위키피디아

 




 쓰윽 풀칠하는 소리, 탁탁 망치로 칼 두드리는 소리, 톡톡 끌로 파내는 소리만 가득하다.  각수刻手(나무 등에 조각하는 사람)의 손길이 닿자 매끈한 나무판에 글자가 떠올랐다. 입을 굳게 다문 각수의 눈은 빛나고 손놀림은 재다.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는 대역사에 참여한 각수들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오직 마음과 손끝에 집중하여 글자를 새겼다. 1855년 가을에 시작한 판각板刻(나무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일)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 되었다. 시린 겨울은 어느새 뜨거운 여름이 되었다. 이제 불같은 여름의 더위는 사위어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바람에서 가을 내음이 난다. 절 한편에선 경판經板(나무나 금속에 불경을 새긴 판)을 보관할 판전을 짓고 있다. 

 남호 영기南湖永奇(1820~1872)스님은 바쁜 일정을 잠시 제쳐두고 간경소에 앉았다. 각수들의 작업 모습을 보니 1852년 보개산 지장암에서 『불설아미타경요해佛說阿彌陀經要解』(이하 『아미타경』)를 사경하던 생각이 났다. 중국의 성상省常(959-1020)대사는 자신의 피로 『화엄경華嚴經』「정행품淨行品」을 썼다고 한다. 목욕재개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향을 사르고, 예불을 드린 후 한 글자 쓸 때마다 세 번 절하고, 세 번 부처님 곁을 돌고, 세 번 부처님을 불렀다 한다. 영기스님도 대사를 본받아 『아미타경』을 사경했다. 피를 내어 먹물에 타서 글자를 쓰되, 한 글자 쓸 때마다 세 번 절하고, 세 번 돌고, 세 번 염했다. 1854년 망월사에서 화엄설법을 하다가 화엄경 판각을 결심하고 보개산 석대암에 들어가 일념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원력이 닿았는지 봉은사 판각 불사를 맡게 되었다. 

 『화엄경』은 동진東晉시대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359~429)가 번역한 60권본과 당나라의 실차난타實叉難陀(652-710)가 번역한 80권본이 있다. 청량 징관淸凉澄觀(738~839)스님은 776년부터 791까지 중국 오대산 대화엄사大華嚴寺(현재 현통사)에 주석하며 『화엄경』을 연구‧강의하고 주석서를 지었다. 80권본『화엄경』을 주석註釋한 소疏와 이를 더욱 상세하게 부연한 연의초演義鈔를 합쳐 『대방광불화엄경수소연의초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木版』(이하 『화엄경소초』)라 한다. 봉은사에서 판각하는 경전이 바로 징관스님이 지은 『화엄경소초』이다. 『화엄경소초』는 기적적으로 나타났다. 

 숙종 7년(1681년) 6월 5일 큰 태풍이 불었다. 서울 근교 산의 아름드리 나무가 뽑혔고, 함경도와 경상도에서는 폭우가 내려 많은 사람들이 물에 떠내려갔다. 전라도 바닷가에서는 어민 71명이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荏子島에는 중국 상선이 파도에 떠밀려왔다. 배는 각종 물건과 7천권이 넘는 분량의 가흥대장경嘉興大藏經(명나라 때 만들어진 대장경)을 싣고 일본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나주 관아에서 중국 상인과 배에 실려 있던 물품을 조정으로 보냈다. 특히 불경이 많았는데 인근 해안에서 건진 책까지 약 1천여 권이나 되었다. 남은 책의 일부는 먼 바다로 떠내려가거나 바다 속에 가라앉았고, 일부는 민간에서 건져 사찰에 보관하거나 몰래 유통되었다. 당시 영광 불갑사佛岬寺에 있었던 백암 성총栢庵性聰(1631∼1700)스님은 이 소식을 듣고 재빨리 달려가 남아있던 책을 모았다. 표류선과 해변에서 직접 건져내고, 인근 지역을 수소문해서 책을 모았다. 4년에 걸쳐 힘들게 모은  불경 중에 『화엄경소초』가 있었다. 『화엄경소초』는 당시 조선에는 없는 경전이었다. 

  성총스님은 수집한 책을 가지고 낙안(현재 전남 순천) 징광사澄光寺로 갔다. 『화엄경소초』는 1689년 판각을 시작해 1690년 완성했지만 그때까지 구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빠진 부분은 다른 경전을 참고하여 1700년 범어사에서 판각되어 징광사로 옮겨졌다. 하지만 1770년 화재로 경판이 모두 불에 타버렸다. 설파 상언雪坡尙彦(1707∼1791)스님의 주도로 덕유산(현재 경남 함양) 영각사靈覺寺에서 1774년 판각을 시작해 1775년 완성했다. 『화엄경소초』를 요청하는 전국의 사찰에 인출印出(인쇄) 하다 보니 글자가 닳고, 사찰이 영남이 있어 북쪽지역 사찰의 왕래가 힘들어 1855년 봉은사에서 3차로 판각하게 되었다. 

 경판 제작에는 많은 비용과 정성, 시간이 들어간다. 영기스님은 한문보다 언문이 친숙한 일반 대중을 위해 언문 모연문 「광대모연가廣大募緣歌」와 「장안걸식가(長安乞食歌」를 지어 사부대중의 동참을 유도하였다. 뜻을 모은 당대의 고승들과 함께 각계를 누비며 왕실과 중신들의 시주를 받았다. 각수로는 한양(서울)과 영남 출신의 장인뿐만 아니라 스님들도 판각에 참여하였다. 오랜 준비 끝에 1855년 가을 판각 불사가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무탈하게 진행되어 영기스님은 부처님의 가피를 받고 있음을 날로 실감하고 있었다. 

 1856년 9월 드디어『화엄경소초』 3,190판을 판전에 봉안하고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가 쓴 현판을 걸었다. 이로써 대불사를 원만히 회향하었다.

 1984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하여 발간한 『전국사찰소장목판집』에 의하면 판전의 경판은 15종 3,438판이다. 2002~2019년 문화재청과 (재)불교문화재연구소는 ‘불교문화재 일제조사’를 실시했다.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전국 사찰 목판 일제조사’에 의하면 2018년 현재 판전에 봉안된 경판은 13종 3,503판이다. 따로 분류된 것을 합치다보니 2종이 줄어 13종이 되었고, 경판을 새로 발견하여 판수가 늘어났다. 『화엄경소초』외 『천노금강경』 22판, 『불셜아미타경』 8판, 『유마힐소설경』 132판, 『불설고왕관세음경』 1판, 『불설천지팔양신주경』 36판, 『계초심학인문』 10판, 『육조대사법보단경』 19판, 『승가일용식시묵언작법』 3판, 『불설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28판, 『금강경탑다라니』 1판, 『한산시』 52판, 『석가여래유적도‧목환자경』 1판이 봉안되어있다. 이 중『불셜아미타경』은 한글로 되어있으며 맨 끝에 ‘을묘츄봉은간’ 이라고 새겨져있다. 각 경판이 제작된 시기와 장소가 다양하여 여러 경로를 통해 봉은사로 모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이 흐르다보면 경판이 훼손되거나 유실된다. 2018년 조사를 통해 58판이 후대에 보수하여 만든 보각판補刻板임이 밝혀졌다. 기록이 없어 언제 보각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19세기에 제작된 판과 여러모로 달라서 근대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화엄경소초』 경판은 1992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되었다. 

 『화엄경소초』는 조선 후기 불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화엄경소』는 이미 그 전부터 널리 퍼져있었지만 소疏를 부연한 초鈔가 없어 화엄의 자세한 뜻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엄경소초』는 화엄경 연구의 표준이 되었다. 징광사에서 간행한 이후 대강백들이 주석한 사기私記가 쏟아졌고 대규모의 화엄법회가 여러 차례 열렸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이를 ‘화엄 르네상스’라 표현하였다. 영각사판까지 한국전쟁 때 소실되면서 봉은사판만 남았다. 해방 후 남한의 전통 강원講院(사찰에 설치된 교육기관)에서 대교과大敎科의 교과서로 쓰인『화엄경소초』는 봉은사판이다. 봉은사판 『화엄경소초』는 전부 온전히 남아있다는 점에서도 희유하지만 이전의 판과 다른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징광사판과 영각사판을 대조하여 521개로 정리한 「영징이본대교靈澄二本對校」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영기 스님이 판각 불사에 기울인 크나큰 정성을 알 수 있다. 

 『화엄경소초』는 『화엄경』 번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백용성白龍城(1864~1940)스님과 이운허李耘虛(1892~1980)스님이 한글 번역을 할 때 이를 대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화엄경소초』 역시 한글 번역이 되었다.  수진스님이 번역한 『청량국사화엄경소초』와 반산스님이 번역한 『화엄경청량소』가 그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태풍 때문에 나타난 경전. 성총스님의 헌신으로 모아져 3차례나 판각되고 조선에 화엄 열풍을 일으킨 경전. 1939년 봉은사 대화재에서도 불타지 않고 남아 현재까지 전해지는 경전. 『화엄경소초』는 영험 그 자체다.  

 판전은 예로부터 기도 영험이 크다고 알려진 전각이다. 이는 판전이 가피의 증거이기에 가능하리라. 판전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자. 수많은 인연과 원력이 응집된 경판들이, 화엄의 교주이신 비로자나 부처님이, 39위의 화엄성중이 그대의 기도에 귀 기울인다. 기도하는 그대를 수호守護한다. 가피는 절로 오지 않는다. 믿음이라는 뗏목에 올라 원력과 실천의 노를 저어야 부처님의 세계에 닿을 수 있다. 가슴속에 간절한 소망을 지닌 이여, 오직 정진하고 정진하여 그 절실함으로 가피를 얻으리라.


(2020년 6월,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사보 '판전' 게재)




참고자료

1. 이종수, 「조선후기 가흥대장경의 복각」, 『서지학연구』제56집, 한국서지학회, 2013 

2. 강현찬,  「조선후기 『화엄경소초』의 판각와 「영징이본대교」본의 의의」, 『한국사상사학』53권, 한국사상사학회, 2016 

3. 이종수, 「숙종7년 중국선박의 표착과 백암성총의 불서간행」, 『불교학연구』제21호, 불교학연구회, 2008 

4. 최형우, 「남호 영기의 가사 창작과 모연의도의 문학적 형상화」, 『어문론총』제65호, 한구문학언어학회, 2015

5. 김종진, 「1850년대 불서간행운동과 불교가사, 남호영기를 중심으로」, 『한민족문화연구』제14집, 한민족문화학회, 2004

6. 김종진, 「 「광대모연가」의 창작배경과 문학적 특성」, 『한국시가연구』제16집, 한국시가학회, 2004

7. 신규탁, 「한국불교에서 『화엄경』의 위상과 한글 번역, 백용성과 이운허의 번역 중 「이세간품」을 중심으로」, 『대각사상』제18집, 대각사상연구원, 2012 

8. BBS, 수진스님, '화엄경소초' 조계종에 기증...10년여 만에 한글 완역, 2020년 4월 29일

http://news.bbsi.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4990

 9. 금강신문, 반산 스님, <화엄경청량소> 한글번역본 발간, 2018년 11월 15일

http://www.ggb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280




출처 

1.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brd/board/242/L/CATEGORY/337/menu/246?brdType=R&thisPage=31&bbIdx=9098&searchField=&search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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