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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Feb 15. 2022

다시, 준비, 시작

41살, 적정 속도를 찾다

 저녁 설거지와 뒷정리를 마치고 나면 대략 7~8시.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꺼풀이 내려와서 서있기 조차 힘들어지는 때가 종종 생겼다. 체력이 떨어진 것이다. 바닥난 체력을 밀치고 짜증이 솟구친다. 쓸데없이 예민해져서 언성이 높이고 뒤돌아 후회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낮에 피로가 심한 일을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대개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글 작업을 하거나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한다.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골골대고 있으니 한심하고 비참하다.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41살의 나는 박카스가 아니라 운동화를 집어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말로만 운동하자를 벗어난 건 올해(2022년) 설 이후부터다. 진작에 핸드폰에 설치해두었지만 관상용으로 전락했던 달리기 앱을 드디어 사용하게 되었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앱의 안내에 따라 30여분 동안 걷고 달리기를 반복하면 된다. 운동 횟수가 늘어날수록 1분 달리기는 1분 30분, 2분으로 늘어났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트레이너의 목소리는 낭랑하고 가볍고 밝았지만 그걸 들으며 뛰는 나는 반대였다. 내 숨소리가 너무 크고 거칠어서 옆 사람들이 흠칫 놀라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요 며칠간 달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인터넷으로 후기를 검색해보았다. 나처럼 초반부터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겨우 1분 30분 초 달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하루는 평소보다 더 천천히 뛰었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 허탈했다. 그 전에도 나는 그렇게 빨리 달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기록을 보니 시속 8.16km 속도였다. 내가 유난히 힘들어했던 때는 시속 8.88km로 달렸을 때였다. 겨우 0.71km 차이다. 한 시간을 달린다고 치면 700m밖에 차이가 안 난다. 700m, 짧으면 짧고 길면 긴 거리다. 700미터 앞서도록 달리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이 너무 가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700미터 늦도록 달리면 조금 헥헥거릴 정도이다. 700미터를 포기하면 훨씬 더 수월하게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700미터를 포기하기로 했다. 무리하게 억지로 버티거나, 거창하게 시작했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건 이제 그만. 지금의 내게는 시속 8.16km가 딱이다. 지금 당장은. 나중에 달리기가 몸에 배고 체력이 향상되면 더 빨라지겠지만 지금은 말이다. 


 

 공자는 40세를 불혹이라고 했다. 미혹되지 않는 나이. 공자 선생이 살았던 기원전 500년대와 2022년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40대는 경제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안정되는 시기라고 여겨진다. 내 현실은 달랐다. 40대에 들어선 나는 뭐하나 이룬 게 없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괴로워했다(그 괴로움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꾸준히 일한 직종도 없고 직장도 없었다. 모아놓은 돈도 거의 없다. 30대 중반부터는 육아에 매여서 뭘 하려고 해도 제약이 따른다.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 잉여인간, 미혹의 바다를 헤매고 있는 불쌍한 중생이 바로 나였다.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어서 불만족에 불평에 남 탓에 빠져서 시간을 보냈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랬었다. 



 아이가 크면서 내 시간이 많아졌다. 생태와 도시농업 자격증을 따서 강사로 일하며 돈을 벌고, 기회가 닿아 사보에 글을 연재하면서 활기가 생겼다. 일본판 <파견의 품격>에는 일을 하는 건 살아가는 것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나는 일보다 돈에서 살아가는 힘을 발견했다. 일 하는 건 싫지만 돈 버는 건 좋다. 금융소득도 없고 부동산 소득도 없으니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라는 20대에 끝냈어야 할 진로탐색 및 고민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20년째 하고 있는 진로탐색. 나의 고질적인 문제는 관심사가 너무 많고, 뭐 하나 몰입해서 꾸준히 하지 못했다는 것. 작년에도 많은 일을 벌여놓고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전문이라 하기에는 부끄러운, 아마추어 수준에서 맴돌고 있었다. 41살의 나는 이제 쳐낼 건 쳐내고, 마무리할 건 마무리하고, 참을 건 참고, 지를 건 지르고, 해야 할 건 해야 하는 그런 단순하고 사소한 일들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개인적이고 시시한 기록은 일기로만 남겨야 하는 건 아닐까, 누구나 볼 수 있는 플랫폼에 여봐라 쓰는 건 쪽팔리는 게 아닐까 고민도 했지만 그냥 쓴다(사실 내 글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별 영향은 없을 것 같다는 현실적 판단이 컸다). 

 


 다른 사람들이 시속 100km로 가든, 시속 10km로 가든, 시속 1km로 가든 곁눈질하지 말아야지. 말로는 눈치 안 본다고, 비교 안 한다고 했으나 나는 지독하게 곁눈질을 해대는 소심한 사람이다. 경주마는 눈가리개를 쓰고 달린다고 한다. 나도 나만의 눈가리개를 하고 내가 갈 길만 봐야겠다. 



 노란색 커다란 원을 상상한다. 여기는 41살 보호구역. 제한속도는 8km. 


 자, 준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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