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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Mar 22. 2023

판전 입시기도

봉은사 3000배 수능 기도 (사진출처:불교신문)




 작년 11월, 홈플러스 수능 응원 SNS 글이 화제가 되었다.


‘우리는 당신이 제대로 찍길 바랍니다. 정답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 시스템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출발을 하길 바랍니다. 우린 당신이 제대로 붙길 바랍니다. 대학에 붙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기조대로 세상과 제대로 한판 붙길 바랍니다. 순응이 곧 끝납니다. 이제 세상에 불응할 수 있는 성인이 된 수험생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많은 시험을 치른다. 수능시험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험 중 하나이다. 수험생이 ‘제대로 찍고, 제대로 붙기’를 기원하며 시험당일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수많은 학부모가 전국의 사찰에서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학부모들의 바람은 하나다. 자녀가 좋은 성적을 거둬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 어떤 이들은 이런 부모의 지극한 마음을 어리석음과 이기심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들은 말한다. ‘시험 결과는 평소의 실력대로 나온다. 하루의 기도만으로 실력을 뛰어넘는 점수가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입시기도는 항간에서 말하듯이 기적을 바라는 미신이요, 기복신앙에 불과할까.    


 부처님께서는 인과법을 말씀하셨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행동으로 운명을 개척하고, 삶의 결과는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신통제일 목건련은 과거 생의 악업 때문에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부처님조차 당신의 종족인 사카족이 멸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자업자득이다. 그 누구도 내가 지은 업을 대신 받을 수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부처님을 기적과 구원을 행하는 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음은 중아함경 제17권 『가미니경伽彌尼經』의 이야기다.     


 어느 날 먼동이 틀 무렵, 가미니라는 사람이 부처님께 찾아와 예를 표하고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니 중생이 죽으면 좋은 곳에 이르게 하거나 천상에 나게 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깊은 연못에 아주 무거운 돌을 던져 넣었다고 하자. 여러 사람이 합장하고 빌면서 ‘제발 돌아, 물 위로 떠올라다오.’라고 말하면 돌이 떠오르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게을러 정진하지 않고,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품었는데도 여러 사람이 합장하고서 ‘천상에 태어나라’고 빈다고 해도 죽어서 좋은 곳에 이르거나 천상에 태어날 수 없다. 악한 업을 지으면 악한 과보가 있어 저절로 밑으로 내려가 반드시 악한 곳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지 않고,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삿된 견해를 모두 여의어 바른 견해를 얻었는데도 여러 사람이 합장하고서 ‘지옥에 태어나라’고 빈다고 해도 죽어서 나쁜 곳에 이르거나 지옥에 태어날 수 없다. 착한 업을 지으면 착한 과보가 있어 저절로 위로 올라가 반드시 좋은 곳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가미니여, 그것은 마치 깊은 연못이 있는데, 거기에 어떤 사람이 소유酥油(버터차) 병을 물에 던져 부수면 부서진 병 조각은 밑으로 가라앉고 소유는 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다.”     


메난드로스왕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원정에서 돌아간 이후 그리스인은 인도 서북부 지역에 여러 왕국을 세웠다. 그중 하나인 인도-그리스 왕국의 왕이었던 메난드로스는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왕은 나가세나 스님을 모셔서 여러 가지를 물었다. 메난드로스왕과 나가세나 스님의 대화를 모은 경전이 『밀린다왕문경 Milindapanha』(한역본은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이다. 메난드로스왕은 불교에 대해 잘 모르거나, 불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한 번쯤 의문을 가졌을 만한 사항에 대해 질문하고, 나가세나 스님은 적절한 비유를 들어 왕을 이해시킨다. 왕은 인과법을 말하는 불교에서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의아했나 보다.

“존자 나가세나여, 백 년 동안 악행을 하더라도 죽음에 이르러 한번 부처님을 생각함으로써 천상에 태어날 수 있고, 선한 사람도 한 번의 나쁜 행위로써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고 했는데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아무리 작은 돌이라도 배가 없이 물 위에 뜰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백대의 수레에 실을 만큼 많은 돌이라도 배에 싣는다면 물 위에 뜰 수 있습니다. 선업은 마치 배와 같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에는 나를 구원해 주고 기적을 일으켜줄 신은 없다. 그런데도 전국의 사찰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보살님의 가피를 구하며 기도를 올린다. 인과법과 가피는 모순처럼 여겨진다. 나가세나 스님은 답한다. 아주 작은 돌이라도 물 위에 혼자 뜰 수 없지만 배는 수많은 돌을 싣고 먼바다를 항해할 수 있다. 선업은 배와 같다. 여기 삶이라는 바다가 있다. 액난과 고통이라는 거친 파도가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이 바다를 건너 저 멀리 깨달음의 세계로 가야 한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바다를 건널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릴 때 어디선가 커다란 배가 들어와 문을 활짝 연다. 그 배는 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불보살님의 서원과 공덕으로 만들어진 선업의 배다. 겁먹고 지친 중생들은 크고 튼튼한 배에 올라타 험난한 바다를 무사히 건너간다. 


신륵사 극락전 벽화 中 '반화용선' (사진출처: 현대불교)



 국어사전에서는 가피를 ‘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줌’이라고 풀이한다.  불보살님이 가피를 내려준다 하더라도 중생이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조건이 무르익지 않으면 가피를 받을 수 없다. 가피도 인과법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업의 결과도 조건이 무르익어야 나타난다. 과보는 당장 나타날 수도 있고 과거, 현재, 미래 삼세에 걸쳐서 나타날 수도 있다. 가피 역시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중생의 깜냥으로는 알 수가 없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 중생들은 가피를 구하며 기도를 올린다. 문제는 기도가 현재의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란 무엇일까?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의 저자이자 김천 수도암의 수좌인 원제스님은 ‘붓다 빅 퀘스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바른 기도란 원력의 다짐이며, 증명법사는 부처님입니다. 기도는 욕망의 거래가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시는 분이 부처님이라는 생각은 기도가 아니죠. 조건을 걸지 않고 단지 자신의 역할을 드러내는 다짐의 실천은 언젠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방향으로 삶을 바꿉니다. 그렇게 부처님 가르침을 내 삶으로 증명하는 게 바로 기도입니다.”

 부산가톨릭대학 신학대학 학장 홍경완 신부도 기복신앙을 묻는 신도에게 이렇게 답했다. 

‘기복신앙의 배후에는 ‘나를 위한 하느님’이라는 사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곧 내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봉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됩니다.’


 불보살님과 기도를 내 소원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복신앙이 될 것이다. 진정한 기도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불보살님의 공덕이 함께 하기를 발원하고 회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녀의 합격을 바라는 입시기도는 진정한 의미의 기도가 아닐까? 그것은 결국 기도를 올리는 사람의 자세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입시기도는 타인의 행복을 구하는 가장 이타적인 기도이기도 하다. 가족은 나보다는 멀고 남보다는 가까운, 나와 남 사이의 타인들의 집합이다. 사랑과 피로 맺어진 끈끈한 관계이지만 결국은 남이어서 삶의 일부분을 공유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자녀가 원하는 삶을 살아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어난다. 어른들은 알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인생의 성공은 대학의 순위대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부모는 자녀가 순탄한 삶을 살아가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진정한 입시기도는 내 자녀만 잘 됐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기도가 내 자녀는 물론이요 남의 자녀도 행복해지고, 기도하는 자신도 행복해져 결국 모든 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보살의 기도로 변할 때 비로소 시작한다.

 

  가피를 입은 많은 불자들이 신행 경험담이나 수기를 통해서 말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라며 기도를 하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흐르며 참회를 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감사 기도를 올리며 모든 이들의 행복을 발원하게 된다고 말이다. 소원성취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월정사 교무국장 자현스님은 ‘기도의 완성은 가피가 아니라 인생의 행복에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산사 불화기행] <9> 영축산 흥국사 백의관음보살도 中  선재동자 (사진출처: 불교신문)




 봉은사 판전에는 『화엄경華嚴經』을 해설한 『화엄경소초』목판이 모셔져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의 주인공은 선재동자다. 문수보살을 뵙고 발심한 선재동자는 선지식을 만나기 위해 구법여행을 떠난다. 선재동자처럼 수험생들도 이제 자신의 삶을 찾아 여행을 떠날 것이다. 

 

 판전 입시기도는 수험생들의 구법여행을 응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리이다. 수험생들이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는 동안, 기도를 올리는 이들은 불도佛道 입학시험을 치르는지도 모르겠다. 내 가족만을 위하는 좁은 기도가 모든 중생을 위한 보살의 기도로 변했다면 ‘제대로 찍은’ 것이고, 참회하고 수행하고 믿음이 깊어졌다면 ‘제대로 붙은’ 것이다. 합격이다. 판전 입시기도를 올리는 모든 이들이 불보살님의 가피라는 배에 올라타기를 기원한다. 구법여행을 끝낸 선재동자가 행복에 이르렀듯이 가피의 배는 행복에 다다를 것이다. 



(2020년 11월,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사보 '판전' 게재)




사진출처

1. 불교신문, '봉은사 300배 수능기도' 2015년 10월 26일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4286

2. 위키피디아, 'Menander I'

https://en.wikipedia.org/wiki/Menander_I

3. 현대불교, '벽화 속 반야용선 타고 극락세계로' 2021년 12월 11일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3388

4. 불교신문, '[한국 산사 불화기행] <9> 영축산 흥국사 백의관음보살도' 2020년 5월 21일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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