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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Mar 27. 2023

2020년, 코로나19, 판전

(사진출처: 경향신문)



 1999년 겨울이 기억난다. 그 해의 키워드는 밀레니엄, Y2K, 노스트라다무스 등이었다. 전 세계가 세기말적 분위기에 취해있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침울했던 우리나라도 이 해만큼은 살짝 들떠있는 기운이 퍼져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필자는 지구 멸망에 버금가는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기분으로 겨울을 지냈다. 드디어 기다리던 2000년 1월 1일이 되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가 끓여준 떡국을 먹고, TV 리모컨을 누르며 재미있는 채널을 찾다가 가족들의 지청구를 듣고, 귤과 군고구마를 신나게 먹어대면서 올해는 꼭 살을 빼리라 새해 각오를 다지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한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도 기대했던(?) 별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00년은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한 해였다. 


 먼 훗날 2020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코로나19로 일상을 뺏겨버린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1년간 계속된 답답하고 암울한 코로나 시국에 필자는 판전에 글을 기고하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했다. 


 1681년 태풍에 휩쓸려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서 표류한 중국 상선에서 흘러나온 경전들을 보았다. 그 소식을 듣고 영광 불갑사에서 달려와 4년간 동분서주하며 경전을 모은 백암 성총栢庵性聰 스님을 만났다. 1855년 판각불사를 맡은 남호 영기南湖永奇 스님이 언문(한글)으로 모연문을 쓰고, 왕실과 고위 신료에게 시주를 권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계절이 지나는 동안 각수刻手(나무 등에 조각하는 사람)들이 정성스레 새긴 『화엄경소초』 경판經板(나무나 금속에 불경을 새긴 판)이 차곡차곡 쌓이는 광경을 보았다. 1856년 과천에 머물며 봉은사에 오가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판전 현판을 쓰는 모습을 보았고, 1857년 신중도 점안식을 보았다. 1886년 경선 응석慶船應釋 스님이 비로자나불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았다. 1939년 봉은사를 집어삼킨 대화재에서 유일하게 불길을 피한 판전을 보았다. 판전 경판으로 찍어낸 경전으로 공부하는 스님들과 화엄 설법을 듣는 대중을 보았다. 2012년 판전 보수를 위해 부처님께 불사의 시작을 알리는 고불의식을 보았다. 2018년 ‘전국 사찰 목판 일제조사’를 하기 위해 3,000개가 넘는 경판을 하나씩 꺼내어 확인하는 작업을 보았다.  


(사진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눈치챘겠지만 필자의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상 위에서 이루어졌다. 책, 논문, 인터넷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옛사람들이 들려주는 진귀한 이야기를 드느라 여행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여행을 할수록 불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책장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불교 개론서를 꺼내 밑줄 쳐가며 정독했다. 경전을 꾸준히 읽기로 결심하고 『밀린다왕문경』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TV를 거의 보지 않던 내가 꼬박꼬박 챙겨보는 불교방송 프로그램도 생겼고, 기존에 정기구독 하던『불광』 외 『불교문화』라는 잡지를 추가로 구독하게 되었다.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을 읽은 후 좌복을 사서 참선을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할 때는 5살 딸아이의 손을 잡고 봉은사 유아법회에 참석했다. 남편이 갖다 준 작은 불상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두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이야기해 주었다. 사경과 참선으로 태교를 하다가 출산, 육아를 하며 멀어졌던 불법이 판전을 계기로 가까워졌다. 믿음과 신행활동이 다시 내 일상으로 들어왔다.    


 코로나 시대를 살며 사람들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일상의 뜻을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로 풀이한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운동하고 잠자리에 드는 평범한 일들이 여전히 반복되지만 그 일상에서 교류가 빠져버렸다. 너와 나 사이에는 2m의 틈이 생겼고, 우리는 해체되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라는 울타리 없이는 집을 나설 수 없다. 관계가 사라진 새로운 일상에서 이제 나 자신과 잘 지내는 법이 중요해졌다. 시대가 변하고 일상이 바뀌어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기 때문이다.


 판전은 1856년 건립되었다. 그 당시 세계 곳곳은 혼란스러웠다. 중국에서는 태평천국의 난(1850~1864)과 제2차 아편전쟁(1856~1860)이 일어났고,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1615~1867)가 점차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노예제에 대한 입장 차이로 남부와 북부로 갈라져 유혈충돌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유럽에서는 크림전쟁(1853~1856)이 끝나 후속조치가 이뤄지고 있었다. 조선은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삼정의 문란이 심해지며 나라가 쇠퇴하고 있었다. 1812년 홍경래의 난에 이어 1862년에는 제주를 비롯한 전국 71곳에서 민란이 일어났다(임술민란). 이런 어수선한 시대에도 일상은 계속되었다. 봉은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각수들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을 먹고 난 후 경전을 판각하고 일을 마치면 밥을 먹고 잠을 자러 갔다. 소임을 맡은 스님도 새벽에 일어나 예불에 참석하고 밥을 먹고 맡은 일을 한 후 날이 저물면 잠을 자러 갔다. 불사에 시주한 높으신 왕족과 미천한 백성들도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일상이 모여서 경판이 되었고 판전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계기’ 또는 ‘계시’를 기다린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면 충격적인 일을 겪은 주인공이 순식간에 각성覺醒해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쾌감을 느끼고 열광한다.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않은 평범한 자신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각성해서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사는 그날을 올 거라 믿으며 일상을 흘러 보낸다. 코로나19는 어쩔 수 없이 집안에 머물게 된 사람들에게 일상에 각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10분만 더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길어지고, 육식을 조금 줄이면 환경도 살리고 내 몸도 건강해지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가족들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면 사이가 돈독해진다. 누구나 다 아는 이런 시시한 행동이 쌓여서 천지개벽을 일으킨다. 한 번의 계기로 내 행동과 내 삶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지만 로또 한 장으로 인생 역전을 도모하는 일처럼 쉽지 않다. 적금 들듯이 매일매일 조금씩 변화를 적립해 가는 사소함과 꾸준함은 확실하고 큰 변화를 가져온다.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 구절처럼 보통의 일상은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여기 그리고 나. 일상에 끌려가지 않고 일상을 끌어가는 나는 어디에 있을까. 일상 속에 나는 정말 존재했을까.   


(사진출처: Narayana Health)


 필자 역시 새로운 생활을 결심했지만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며칠간 고민한 끝에 구매한 비싼 좌복은 어느새 아이가 낮잠을 즐기는 쿠션으로 변해버렸고, 야심 차게 시작한 참선은 하루 이틀 건너뛰었더니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되었다. 경전은 책상 위에서 자꾸 밀려나더니 구석으로 들어가 버렸고, 법문을 들으려고 켠 유튜브로 이날치밴드 노래만 듣다가 시간을 보내버렸다. 나도 모르게 오래된 습관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얼마 전 유아법회에 참석하면서 판전에도 들렀다.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의 판전은 수능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판전에 앉아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부대중의 일상을 찾아보았다. 반들반들한 마룻바닥, 깨끗하게 청소된 내부, 조금씩 비뚤어진 채 쌓여있는 좌복, 복원불사를 했지만 흐릿해진 신중도, 1856년보다 색이 바랜 단청, 옛날에는 없었을 시계와 에어컨, 부처님께 공양 올린 크고 반듯한 과일, 언제나 새것 같은 초. 어느 것 하나 사부대중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사소하고 꾸준한 손길 덕분에 판전은 매일 같은 모습이다. 켜켜이 쌓인 일상들이 세월이 되어 판전에 스며들어 있었다. 판전에서 일상다반사를 보았다.   


 이제 판전에서는 경전을 인출(인쇄) 하지 않는다. 경전을 인출하느라 드나들던 스님 대신 기도를 올리는 불자들의 발걸음에 마룻바닥은 조금씩 닳아가고 있다. 판전도 바뀐 소임에 적응한 모습이다. 나중에 또 소임이 바뀔지도 모르겠으나 그때도 판전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법보신문)



 코로나19는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라고 한다. 코로나19가 언제 없어질지, 과연 없어지기나 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사찰의 일상도 바뀌었다. 대면 법회 대신 온라인 법회가 열리고, 각종 강의나 기도는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다. SNS를 이용해 수행을 인증하고 격려하는 방법도 반응이 좋았다. 함께하면 힘나는 신행활동은 혼자서도 거뜬한 신행활동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계속 불자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은 결국 혼자 가는 길이다. 함께 갈 수는 있어도 대신 갈 수는 없는 길이다. 혼자 가는 길이 외롭거나 불안할 때는 봉은사에 들러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봉은사에서 부처님을 만났고 어렵고 힘들 때 위안을 받았다. 그 자취들은 여전히 봉은사에 남아있다. 판전에도 꼭 한번 들러보길 바란다. 판전이 품고 있는 옛사람들의 원력과 많은 사람들의 굳건한 일상이 느껴져 더 이상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2020년 필자의 키워드는 코로나19, 판전, 신행활동이었다. 다시 좌복을 정리하고, 경전을 읽고, 법문을 들으며 일상을 살아야겠다. 2021년에는 마스크 없이 판전에 앉아 불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 다른 일상의 공집합을 찾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2020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사보 '판전' 게재)






사진출처

1. 경향신문, '[오래전 이날] 세기말 한국 덮친 Y2K 공포' 2019년 1월 14일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901040028001#c2b

2 국립중앙박물관, '서울강남 봉은사 화엄경판전'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81057

3. Narayana Health

https://www.narayanahealth.org/blog/why-do-people-get-sick-with-changing-seasons/

4. 법보신문, '봉은사, 지혜증장 발원 판전 100일 기도 입재, 2016년 2월 26일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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