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8년만에 졸업을 '거의' 앞둔 소회
나는 대학생이다. 그것도 국립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이름하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2015년 농학과 2학년에 편입해서 다니기 시작했는데 출산과 육아로 오랫동안 쉬었다가 복학해서 2022년 대망의 4학년이 되었다. 올해 일 년만 공부하면 드디어 졸업이다. 별일 없으면 8년만에 졸업한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방통대에 입학했다가 중도 포기하거나 언젠가 복학하겠지라는 생각으로 한 해 두 해 보내고 있는 제적생들이 많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사이버대학이라 동영상 강의만 보면 절로 학위가 나오는 줄 알고 쉽게 들어왔다가 (게다가 학비가 무척 저렴하다) 의외로 해야 할 게 너무 많아 포기하게 된다.
먼저 출석수업이란 게 있다. 방통대 강의는 원칙적으로 동영상 강의이지만 몇몇 과목을 제외하고는 출석수업도 나가야 한다. 즉 대면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직접 가야 한다는 말이다. 1~3학년은 3~4과목, 4학년은 2~3과목이 출석수업인데 과목당 3시간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에 걸쳐 수업을 듣는다. 그나마 서울은 다행인 게 워낙에 재학 인구가 많아서 지역대학이 4군데나 된다. 각 지역대학마다 출석수업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골라들을 수 있다. 직장인의 경우 수업이 야간에 개설된 지역대학에서 수강하면 된다. 평일의 경우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몰아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내가 그랬다. 당시엔 아이가 너무 어려서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맡길 데도 마땅히 없어서 결국 저 멀리 부산에 사는 임신한 시누이를 불러 아이를 보게 하고 출석수업을 들었다. 그때는 코로나 전이어서 출석수업은 무조건 지역대학에 나와서 들어야 했다(코로나가 터진 2020년부터는 줌 수업으로 진행한다). 출석수업에 못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 시험이나 과제물로 대체하는 제도가 있는데 내 기억에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요건에 해당되는 사람만 할 수 있었다. 관련해서 자료를 찾아봤는데도 없어서 내 기억이 맞는지 아닌지 가물가물하다. 코로나 이후로는 그냥 변경 신청만 하면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출석수업을 듣고 나면 시험을 치는데 대개 강사분들이 문제와 답을 알려주시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대신 대체시험을 선택하면 범위도 넓고 시험공부도 따로 해야 해서 장단점이 있다. 어쨌든 이놈의 출석수업은 직장인들에게 방통대 졸업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 같은 제도이다. 내가 들었던 출석수업은 대부분 동영상 강의보다 훨씬 좋아서 개인적으로 출석수업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이틀을 할애하는 게 힘들었다(줌 수업 역시 장시간 듣고 있는게 고역이기는 하다. 강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중간고사는 시험 대신 과제로 대신하는데 양이 만만치 않다. 한 과목당 주어진 문제에 대해 A4 3~5장을 써야 하는데 주어진 형식을 지키면서 내용을 써넣어야 하고, 당연히 표절하면 점수가 없다. 코로나가 터지고 줌으로 출석수업을 하면서 여기서도 또 과제를 주는데 A4 3장가량 써야 해서 총 6과목 수강하면 A4과제만 18~30장이 된다. 이거 때문에 중간고사 기간만 되면 2주가량 꼼짝없이 과제를 하느라 신경이 곤두선다.
2021년부터 형성평가라는 게 생겨서 동영상 강의도 80% 이상 봐야 한다. 그 전에는 동영상 강의를 안 봐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동영상 강의가 별로여서 안 보고 혼자 책 보고 공부해서 기말시험을 치곤 했다. 이제 얄짤없다. 무조건 봐야 한다. 2배속으로 보든, 틀어놓고 딴짓을 하든 상관없으나 보고 학습 종료를 클릭해서 체크를 해야 하니 일이 늘었다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기말고사. 시험 범위는 책 한 권이다. 기출문제와 워크북 문제를 달달 외우면 고득점이 어렵지는 않지만 여기서 벗어난 새로운 문제들이 출제되면 망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교재도 열심히 봐야 한다. 결국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는 뜻이다. 학점에 딱히 관심 없고 졸업만 하겠다면야 상관없지만.
3월에 개강해서 6월에 시험 치면 1학기 끝, 9월에 개강해서 12월에 시험을 치면 2학기 끝. 학기당 3달 정도 되니 세 달 동안 정신없이 강의 듣고 과제하고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직장인들에게는 만만치 않는 양이다. 장학금 욕심이 있으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나는 공짜로 공부하겠다는 일념 하에 꽤나 열심히 했고 덕분에 대부분의 학기를 공짜로 다니고 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장학금은 나를 공부하게 한다.
농학과는 실습이 필수가 아닌 학과여서 그나마 쉬운 편이고 유아교육과 같은 일부 학과는 실습도 해야 하고 학점이나 이수 요건이 까다로워서 꽤 어렵다고 알고 있다.
농학과 공부를 하면서 후회한 적은 없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였지만 관련된 일을 하지 않다 보니 공부에 투입되는 시간들이 좀 아깝기는 했다. 농학과 공부 말고도 할 일이 산더미니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농사를 짓던가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하겠지만 굳이 지금 할 필요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졸업이니 이제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지만 그 전에는 갈등이 많았다. 종자기능사와 도시농업 관리사 자격증을 따는데 농학과 공부가 큰 도움이 되었으니 잘했다 싶기도 하고 방통대에 대한 생각은 왔다 갔다 한다.
방통대 다니면서 제일 이득(?)이었던 점은 오히려 다른데 있었다. 논문을 공짜로 실컷 볼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자료를 많이 봐야 하는데 방통대 재학생은 중앙도서관 사이트로 들어가서 자료 검색을 하면 그 많은 자료를 다 공짜로 볼 수 있다. kiss, riss, 학위논문 등등 말이다. 개인 자격으로 자료를 보려면 제약도 많고 유료로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농학과를 졸업하고 내년에 또 방통대 다른 학과에 입학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그만큼 나는 자료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궁금한 것도 많고 논문 보는 것도 재미있다.
누가 취미를 물어보면 나는 늘 공부 또는 배우는 게 취미라고 한다. 실용성과 상관없이 배우는 것 자체가 좋다. 생각해 보니 꾸준히 한 건 없고 이거 잠깐 저거 잠깐 배우다 만 게 대부분이지만 그 과정이 다 즐거움이었다. 지금도 미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은데 다행히 돈이 없어서 일단 보류 중이다. 이제 취미 생활은 그만하고 생업에 몰두해야 하는데 말이다.
시간 여유가 많은 이라면 방통대 공부가 별 부담이 안 되겠지만 프리랜서 강사로 틈틈이 일하면서 육아와 가사도 전담하는 내게는 부담이 컸다. 강사로서의 전문성을 더 키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애를 돌보는데 더 신경 쓰지도 못하는데 방통대 공부는 꾸역꾸역 하고 있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고 나이가 들면서 체력도 떨어지다 보니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자주 들었다. 그렇게 몇 년 지내다 보니 강사로서 경력도 늘었고, 애는 자랐고, 방통대는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강의 스킬은 부족하고, 아이한테 매여있고, 방통대 3년간 뭘 배웠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 시기가 훗날 자양분이 될 거라 덮어놓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인 평균수명 80세. 앞으로 살아갈 날이 40년이다. 나는 남은 40년을 공부하면서 살아갈 계획이다. 잘하드 못하든 나는 공부가 좋다.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목표도 있다. 무진장 비싼 학비 때문에 고민이지만 어떻게든 답을 찾겠지 하면서 (아직은 돈 나올 구멍을 못 찾았다) 가슴속에 목표 하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로또가 됐으면 좋겠다! 정말! 2등이라도!).
40대, 한창 배울 나이 아닌가. 그러니 공부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