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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Dec 16. 2022

2022 생물분류기사(식물) 실기

이렇게 공부해서 합격했습니다

실기시험을 치러 갔을 때 12월 30일이 합격자 발표일이라고 칠판에 쓰여있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있었다.

오늘 아침 갑자기 울린 카톡 알림에 뭔가 하고 봤더니

합격자 발표였다.



그리고...

나의 슬픈 예상과 달리

합 격 했 다.



아싸라비아.



점수를 보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너무 고득점이라서.

정말 몰라서 답을 못 쓴 문제도 하나 있었고,

그래도 칸은 채우자 하는 심정으로 쓴 것도 너무 많아서

혹시나 합격하더라도 나는 확실히 턱걸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고득점에 국가시스템을 의심했다.

이거 시험지가 바뀌었나 아니면 그날 시험 친 '나'라는 인간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의심을 했지만

어쨌든 합격이라는 결과는 바뀌지 않겠지.

잽싸게 수첩형 자격증으로 신청하고 결제를 했다.

여전히 얼떨떨하다. 진짜, 과연 내가? 합격을?

합격자 발표 오류라고 하면 크게 비뚤어질지도 모른다.

각오해라.


아부지께 전화했더니 그간 열심히 기도하셨다고 한다.

이제 하느님께 염치없으니 더 이상 부탁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앞으로도 소원 빌게 무궁무진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시라 했다.



필기시험을 치면 바로 예상 점수가 나온다.

합격인 줄 알고 있어서 바로 실기시험 준비를 했다.

10월 3일에 필기시험을 치르고 11월 29일에 실기 시험을 쳤으니 약 두 달가량 공부한 셈이다.


실기시험을 준비할 때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접수다.

시험장이 전국에 몇 군데 없어서 자칫하면 나처럼 눈물을 머금고 멀리 가야 할 수도 있다.


실기시험 접수하는 날 일하고 있어서 12시가 다 되어서 접속했더니 남은 자리는 강릉밖에 없었다.

나는 서울 사는데... 여차하면 부산에 가서 시험을 칠까 생각도 했지만(친정이 부산이라)

강릉밖에 자리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접수.


11월 29일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첫 기차는 5시 11분이었다. 도착은 7시 8분.

강릉역에 내려서 또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하는데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서

5시 기차를 타야 8시 30분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6시 기차를 타면 8시 좀 넘어 역 도착이라 아슬아슬했다.


문제는 우리 동네에서 첫 버스를 타도 5시 11분까지 서울역에 도착을 못 한다는 것.

택시는 아예 옵션에 없었다. 택시를 탈 바에 서울역에서 주구창창 기다리겠다는 각오까지 했다.

이깟 시험 하나에 들어가는 돈이 자꾸만 늘어 가니 택시는 무조건 제외.

전날 강릉에 가서 근처에서 자면 안되냐고? 이것도 돈이 너무 들어가니 패스.

서울역에서 밤을 새려고했는데

증산역 근방에 사는 친구의 배려로 친구네에서 밤을 지새우다가 첫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부산 사는 동생에게 오라고 했다.

아이를 시험장에 데려갈 수도 없고, 강릉갔다 집에 오면 너무 늦어서 혼자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동생을 불렀다.

시험 전날 저녁에 동생이 비행기 타고 왔다.

아이는 이모 왔다고 엄마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다행인가.

잔뜩 들뜬 두 사람을 내버려 두고 나는 친구네로 갔다.

밤새 공부해야지 했는데 책 보다가 잠들었다. 친구가 깨워줘서 겨우 일어났다.

4시 첫 버스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 

기차 안에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내리 잤다.


강릉역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다행히 버스가 바로 와서 타고 강릉 아산병원에서 하차.

시간이 많이 남아서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 먹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시험 수수료에 강릉 왕복 차비에 밥 값에 동생 차비까지 돈 왕창 깨졌다....


그러니 실기시험 접수는 10시에 바로 접속해서 광클하시라.




실기시험 공부로 돌아가자.


필기와 달리 실기용 책이 출판된 게 있어서 그걸로 공부했다.

생물분류기사(식물) 실기 / 이용순 / 이비락 / 2021


실기시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필답이고 하나는 생물 동정이다.

두 가지 다 답을 직접 쓰는 문제다.

초창기에 생물 동정은 진짜 표본을 사용해서 시험 비용도 비싸고(9만 원 정도였다고)

시험장도 전국에 몇 군데 없었다고 한다.

몇 년 전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필답은 5종류의 문제가 나온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나서

화서 / 잎 모양 / 검색표 / 과와 속 특징 / 기타

이렇게 문제가 나오겠구나 추측했다.


생물분류기사 관련해서 다음 또는 네이버 카페가 있는 것 같았는데 나는 너무 늦게 알아서 가입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굳이 가입 안 해도 합격에 지장은 없다고 본다.


화서, 잎 모양(정단, 가장자리, 기부)은 책을 보고 열심히 공부했다.

검색표와 과/속의 특징은 아예 포기했다. 너무 방대해서 외울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내가 아는 문제가 나오면 땡큐겠다 싶었는데(콩과나 장미과 나와라 기도를 했건만)

검색표는 고사리삼과 문제가 나와서 포기, 하지만 빈칸은 다 채웠다.

이 중에 하나라도 맞으면 좋겠다 하는 심정으로. 아직까지 정답을 모른다....


과/속 특징은 문제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것 역시 포기.


그리고 기타 문제는 주요 식물원의 약자(이니셜?)였다. 이것 역시 대충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썼다.

일본 식물원이면 J가 들어가겠지, 국립자생식물원이면 K가 들어가겠지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행히 화서 문제 빼고 모두 보기가 있어서 골라 쓸 수 있었다.

그러니 모르더라도 보기에 있는 거 아무거라도 써넣으시라. 운 좋으면 맞을 테고 말이다. 나처럼.


그리고 대망의 생물 동정.


그간 책을 열심히 봤지만 시험장의 사진을 보니 그간 내가 공부한 건 뭐였나 싶었다.

멘붕 온다. 나만 그런게 아니더라. 시험 치고온 사람들 낯빛이 급격이 어두워진데다

다들 한숨 푹푹 내쉬거나 혀를 차는걸 보니 말이다.


책만 공부하면 낭패를 본다.


나는 책 속의 사진을 보고 나면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사이트에 들어가서 다시 사진을 다 찾아보고,

그래도 애매하다 싶으면 구글 검색하거나 모야모에서 다시 검색했다.

그렇게 여러 각도에서 식물을 봐야지 눈에 들어온다.


특히 헷갈렸던 건 미나리과(산형과) 식물들과 양치식물.

여러 사진들을 보고 각 식물의 특징을 메모해서 외웠다.

과가 달라도 색깔이 같거나 모양이 비슷하면 그것만 모아서 공부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흰색 꽃이 열리는 식물만 모아서 본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꽃뿐만 아니라 잎과 열매 사진도 봐야 함은 물론이다.

 

시험장의 사진은 꽃이나 열매를 클로즈업한 것이라 전체적인 모습만 알고 있으면 답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니 시간을 들여 많은 사진을 보고 특징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했는데도 시험장에서 사진을 보니 당황스러웠다.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다 하는 것도 하나 있어서 그건 아예 답을 못 썼다.

제한 시간은 식물 하나당 1분 30초.

30문제 중 보자마자 이건 뭐다 하는 게 반 정도였고, 이건 대충 뭐 아니면 뭐겠다 싶은 게 반 정도였다.

필답 치고 나서 생물 동정까지 기다린 시간이 너무 길어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후다닥 써 내려갔다.

내 시험 지론은 보자마자 답 모르면 더 고민해도 모를 확률이 높다는 것.

이것 아니면 저것이겠다 하면 좀 더 고민해도 되지만 봐도 모르겠는데 하면 포기해야한다.

1분 30초 꽉 차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게 아니다. 시간만 잡아먹는거지.


생물 동정이 끝나면 마지막 5문제가 기다린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몇 급이 나는 문제였는데 이건 쉽다. 매번 나오는 문제니 이건 꼭 외우자.

나는 혹시나 해서 생태계 교란 식물까지 외웠가긴 했다.



그렇게 시험을 끝내고 바로 시험장을 나왔는데 서울가는 기차를 2분 차이로 놓쳤다.

그래서 강릉역 근처 옹심이 맛집에서 옹심이 한그릇 사먹고 12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강릉콩빵도 한 개 사들고 왔다.



시험을 못쳤다는 생각에 내년을 기약해야하나 했는데 붙어서 너무 좋다.


내가 친 시험장은 생물동정을 할 때 옆 방에 한 명씩 들어가서 시험을 치는 시스템이라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렸다.

앞 사람이 식물 보는데 하나당 1분 30초를 다 쓰면서 보면 뒷 사람은 계속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텀을 둔다고 최대 3명까지만 들어갔더니 대기 시간이 무한정 길어졌다.  

30여명 되는 수험자는 제비뽑기를 해서 순서를 정했는데 나는 10번었다.

내 순서가 오기까지 거의 50분 기다렸다...

뒷 번호인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잔뜩 나왔다. 그 분들 시험 언제 끝났나 모르겠다.

12시 전에는 끝난다고 했는데 10번인 내가 10시 40분 즈음에 옆방으로 갔으니 말이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몇 년 전 수원에서 종자기능사 실기 시험을 칠때

씨앗보고 이름 쓰는 문제는 3명인가 5명이 같이 들어가서(마치 팀 처럼)

줄줄이 테이블을 지나가면서 보고 답을 다.  그렇게 해도 불편 또는 부정은 없었다.


후기를 보니 각 시험장마다 시험 치르는 방법이 다른 것 같은데

효율적인 방법으로 통일 했으면 좋겠다.

시험 치는 시간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긴 게 말이 되냐고.


이번에 식물 시험에 합격해서 내년에 생물분류기사(동물) 시험을 칠려고 한다.

그 때는 무조건 10시에 접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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