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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Apr 11. 2023

초등 1학년 엄마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신청하고

아이가 초딩이 된 지 벌써 한 달.

초딩이 되기를 아기다리 고기다리 했던 아이는 선생님도, 친구들도, 공부도, 도서관도, 급식도, 방과 후 수업도 다 좋다며 아침마다 룰루랄라 즐겁게 등교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자기 빼고 다 남자아이들이어서 1년간 힘들었는데

학교에 오니 여자친구가 많아서 너무 좋단다.

벌써 절친도 생겼다.

인싸는 역시 인싸. 학교 접수에 성공.


40분간 앉아 있을 수 있을까 했는데 무리 없이 수업을 받고 있었고,

화장실은 잘 찾아갈 수 있을까 했는데 중간놀이 시간에(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1학년의 경우 2,3교시 사이에 중간놀이 시간 20분이 있다) 화장실에서 똥도 쌌다 하고(집에 와서 꼭 보고한다),

수업이 다 끝난 후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다 오기도 했다('흔한 남매'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 책에 열광하고있다).


집에 오면 자꾸 간식을 찾길래 점심을 조금밖에 안 먹었냐고 했더니

밥 먹는 속도가 느려서 시간 안에 밥을 다 못 먹는다고 했다.

집에서 간식 먹으면 되니까 급식은 빨리 먹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평생 밥을 빨리 먹은, 그래서 자주 체하는, 그런데도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충고랄까. 


아이는 학교에 완벽 적응하였다.

아이는 그렇고 나는 어떤가?


바쁘다. 


어린이집에서는 4시에 하원을 했기 때문에 9-16시까지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볼일도 보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런 생활은 안녕. 빠이빠이.


등교시키고 집에 와서 12시까지 글 쓰거나 자료 찾고, 

밥 먹고, 한자공부를 하다가 시간 되면 다시 학교로 가서 아이를 데려오는 게 평일 나의 스케줄이다.

아이 등교시키느라 1교시 수업을 할 수 없어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생태강사도 올해는 일단 휴업 상태다.

일은 내가 못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준 안내문 상으로는 돌봄 교실을 신청할 자격도 안되지만

일을 줄이더라도 아이랑 함께 하겠다는 내 의지가 컸다. 

미로같이 뻗친 좁은 골목 사이로 차가 다니는 동네 구조상 등하교 길이 위험하기도 하고,

아이가 하교했을 때 맞아주는 엄마가 있었으면 했다.


내가 국딩이었던 머나먼 옛날,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썰렁한 집이 싫었다. 

엄마는 일하고 6시가 넘어 집에 왔다. 집에 온 엄마는 저녁 준비하고 집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늦게 온 아빠는 잠들기 전까지 티브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일요일에는 계속 잠만 잤다.

일하고, 가사노동하고, 공부까지 시키느라 힘들고 스트레스가 심했을 엄마는 자식들에게 자주 화를 내고 별것 아닌 일에도 매를 들었다. 

그 당시 생각했을 때도,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생각해보면 따스한 가정은 아니었다.


80년대 평범한 가족의 장녀였던 나는 드라마(2층 집이고, 대가족이 살고, 집에서 실내화를 신으며, 풀메이크업을 하고, 외출복같이 화려한 실내복을 입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나 미쿡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앞치마를 입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간식을 들이밀고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렴'하는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 꿈꾸던 그런 엄마는 아니더라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되어주기로 했다. 

적어도 아이가 1학년때 만이라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바쁘다. 

일단 데려가고 데려오는 게 일이다. 

월~금요일까지 매일 아이의 스케줄이 다르다 보니 알람 설정을 해놓았다. 

어느 날은 방과 후, 어느 날은 학원, 어느 날은 도서관 강좌. 

금요일은 하교 후 좀 쉬라고 비워놨는데 심심하다 난리여서 결국 여기저기 뒤져서 무언가를 신청하고 있다. 

도서관 홈페이지, 서울시 공공예약 서비스를 수시로 들여다보는 게 일이다.

저렴하고 집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다.


아이는 외동딸이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가 베스트프렌드다.

엄마랑 놀고 싶다고 하지만 엄마는 아이랑 노는데 재주가 없다. 

8년째 어떻게 놀아줘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아직도 답을 못 찾았다. 내년에도 답을 못 찾을 듯하다. 

아이가 놀아달라고 하면 내 머릿속엔 하얗게 안개가 낀다. 눈앞은 캄캄해지고. 사고 중지! 

도대체 어떻게 놀아줘야하나. 어찌어찌 같이 놀고 있어도 나는 금방 지루해져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아이가 사랑스러운 것과 아이랑 놀아주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렇게 8년을 버틴게 용해서 세계 7대 불가사의가 바로 여기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나마 가장 잘 놀아줄 수 있는 게 등산이다.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손 꼭 잡고 집 뒤에 있는 산으로 고고씽.

아이는 2시간가량 산 타고, 꽃이랑 곤충구경 하고, 도시락 까먹는 걸 무척 즐거워한다.

요즘은 줄넘기에 심취해있어서 집 근처 공원으로 가 나는 걷거나 뛰고, 아이는 줄넘기를 한다.

아직까지 엄마 바라기인 아이는 너그럽게 이런 엄마를 받아주지만 나중에 사춘기가 와서 엄마 따위 저 멀리 치워버리면 어쩌나...  그러니 그 전에 잘 놀아줘야하는데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놀아주는데 재주도 없거니와

혼자 가사노동을 하다 보니 해야 할 일도 많고, 내 일을 할 시간도 부족하다 보니 

차라리 전문가한테 맡기자 해서 외부로 다니고 있다. 


놀아주기의 외주일까.

뭐 어때. 

난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고, 될 수도 없는 걸.

모든걸 내가 다 할 수는 없다.


그렇게 외부 프로그램을 찾으면서 느낀 것.

도서관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저렴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아서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다. 

대신 수강인원이 적어서 신청날 광클릭을 해야 한다. 덕분에 알람이 더 늘었다. 

알람이 울리면 나는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미리 대기를 한다. 

인기 있는 강좌는 금방 마감되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도 마찬가지. 아이들 프로그램은 금방 마감되기 때문에 역시나 광클릭 필수. 


그러다 보니

글 쓰고 자료 보다가 갑자기 프로그램 신청한다고 대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신청한 프로그램을 아이가 다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초등 1학년 엄마 한 달째.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신청하면서 지내고 있다.


이것이 초등 1학년 엄마의 숙명이랄까. 아니 나의 숙명이겠지. 

엄마들의 생활은 다 다르니까. 엄마란 이름으로 퉁치지 말아야겠다. 

엄마란 스펙트럼은 넓고도 깊으니까.


각자의 방식으로 초등 1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여,

3월도 무사히 보냈으니

남은 1학년 무사히 잘 지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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