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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Dec 16. 2021

2021년 작업일지 9

여름, 가을, 겨울

이사, 방통대 복학 등등 바쁘다는 핑계로 작업일지도 계속 안 썼다. 1학기 농사를 그럭저럭 마무리했고, 2학기 농사는 망했다. 이사하면서 집이 멀어지다 보니 학교에 들러 작물을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기록은 남겨야 할 것 같아 그간 찍은 사진 몇 장이라도 올린다. 



 6월에 심은 벼는 걱정과 달리 무럭무럭 자랐는데 꽃이 무척 더디게 피어서 8월 말에 꽃을 관찰했으며, 10월이 되어도 잎이 초록색을 발하며 빳빳하게 서 있더니 찬바람 맞고 급격히 누렇게 변해버렸다. 새일미 품종이었는데 영호남 지역에서 자라는 품종이다 보니 서울과는 맞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벼를 심은 곳은 학교 건물 사이에 있어서 동쪽으로만 빛을 받을 수 있어 빛도 부족했을 것이다.  4개의 대야에 2개는 새일미가 심겼고, 다른 2개는 다른 품종이 심겼는데(담당 선생님이 달라서 어떤 품종을 심었는지 모르겠다) 같은 시기에 심었느냐 꽃이 피는 시기와 익는 시기가 완전히 달랐다. 새일미는 이삭도 많이 달리지 않았다. 쭉정이가 좀 많았다. 비료도 안 주고, 관리도 안 했는데 이렇게 자라주어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대로 해보고 싶다. 밭벼도 도전해보고 싶다. 그런데 벼 모종 구하는 게 힘들어서 고민이다. 새일미도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그 어느때보다 인맥의 부족이 아쉽다.

 아이들과 모내기를 하고, 짚으로 허수아비도 만들고, 직접 낫으로 벼베기도 했다.  허수아비 만들기는 좀 걱정했는데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했다. 물론 일부 아이들은 대충대충 했지만. 쓰레기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대나무 지지대와 짚, 마끈으로만 허수아비를 만들게 했다. 대나무, 짚, 마끈은 추후에 재활용하기도 좋고, 처리하기도 좋다. 대신 끝나고 뒷정리한다고 식겁했다.


 



 가을에는 배추, 무를 심었다. 배추는 늘 심을까 말까 고민하는 작물이다. 벌레가 너무 달려든다. 학교 텃밭 수업이라 농약 치기도 애매하다. 농약을 쳐도 된다고 해도 밭이 작아서 농약 사는 것도 고민되는 것이다. 친환경농업에서 많이 쓰는 난황유를 뿌려보지만 효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 알맞은 때에 쳐야 하는데 그거 맞추는 게 어렵다. 학교 내 텃밭이라 이른 아침이나 오후 늦게 가려고 해도 문이 닫혀있고, 주말에는 아예 하루 종일 문이 닫혀있다. 아이가 어려서 나 역시 일찍이나 늦게 갈 수도 없다. 가을 농사 전에 퇴비도 주지 않고 웃거름도 1번밖에 주지 않아 배추도 무도 엄청 작았다. 이럴때는 수확의 기쁨이 아닌 괴로움이 앞선다. 수업 커리큘럼에 웃거름이나 난황유를 넣지만 날씨나 일정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텃밭 강사로서 고민되는 지점이다. 내년에 또 텃밭 강사로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하게 된다면 가을에는 배추보다 그나마 나은 무만 심겠노라 다짐한다. 


 수확하고 밭 정리하고 나서 멀칭을 했다. 짚, 왕겨, 낙엽 세 개로 덮었는데 낙엽을 맡은 아이들이 요리 빼고 조리 빼며 일을 안 한 덕분에 낙엽 멀칭은 하나마나가 되었다. 도시농업 관리사 공부할 때 안철환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것이 흙의 맨 살이 드러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말이 인상 깊었던 나는 이번에 멀칭을 해보았다(원래 선생님께 배운 것은 작물이 자라는 도중에 하는 풀 멀칭이었지만). 원래 퇴비 넣고 멀칭을 해야 하는데 퇴비가 없어서 퇴비는 패스했다. 봄이 되면 짚은 그냥 걷어내면 될 것이고, 낙엽은 멀칭 했다고 하기에는 뭣한 수준이라 문제 될 게 없고, 왕겨는 퇴비랑 같이 섞던가 걷어내면 될 듯. 걷어내면 일이 좀 많겠지만 말이다. 상자텃밭은 특히나 거름이 고갈된 상태여서 내년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한다.  왕겨를 그냥 흙과 섞을 경우 질소기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 좀 우려된다. 누가 담당하던지 텃밭 강사라면 그 정도는 알겠지. 내가 내년에도 이어서 할지 어떨지는 아직 모른다.  해도 안해도 걱정 반 기쁨 반이다. 아니 걱정 6, 기쁨 4 가 맞을 듯. 




일 년 농사는 끝났지만 농사 수업은 끝나지 않아서 농사 없는 농사 수업을 하고 있다. 이것도 곧 끝이 난다. 나는 도시농부로서 일 년간 성장했나? 모르겠다.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나는 도시농부로서 일 년간 행복했나?  조금 망설여진다. 내 땅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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