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섬이 아니기에 싫든 좋든 다른 이와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하지만 관계에 시달려 보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나와 비슷해도 문제, 달라도 문제, 좋아도 문제, 싫어도 문제, 여기를 봐도 문제, 저기를 봐도 문제. 산다는 건 오만 사람들과 별의별 문제로 씨름하는 일이다. 중생들만 함께 사는 괴로움을 느끼는 건 아니다. 승가 역시 사람이 모인 곳이기에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제일 처음 가르친 이는 이전에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였다. 그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는데 이들이 최초의 제자다. 이후 출가 하는 사람이 늘어나 제자들의 무리는 점점 커졌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가는 스님들의 공동체를 상가(Samgha)라고 한다. 상가는 원래 정치조직이나 상공업자들의 동업조합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나중에 불교 교단을 뜻하게 되었다. 상가를 음역音譯한 말이 승가僧伽다.
인도에는 예나 지금이나 몬순(Monsoon)이라 부르는 우기法寶가 있다. 6월에서 9월까지 약 4개월간 많은 비가 내리는데 이때 내리는 비의 양은 1년 강수량의 80%에 이른다. 이 시기에 수행자들이 한 곳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하는 제도를 안거安居라고 한다. 안거를 지내는 이유는 쏟아지는 비 때문에 탁발을 나가기가 힘들고, 우기에 활발히 활동하는 벌레나 싹을 틔운 식물을 자기도 모르게 밟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들도 우기에는 한 곳에만 머물렀는데 불교 초창기에 몇몇 열성적인 비구들이 포교를 위해 돌아다니곤 하였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부처님께서는 안거를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남방불교에서는 여름에만 안거를 지내지만 북방불교에서는 여름에 한 번(하안거夏安居), 겨울에 한 번(동안거冬安居) 총 두 번의 안거를 지낸다.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다. 부처님오신날이 음력 4월 8일이니 행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하안거가 시작된다. 안거의 시작을 결제結制, 끝남을 해제解制라 하는데 해제일은 우란분절(백중)이기도 하다.
안거를 지낼 스님들은 머물고자 하는 하는 사찰에 허락을 받고 입방 절차를 밟는다. 큰 방에는 스님들의 법명과 소임이 적힌 용상방龍象榜이 붙는다. 법랍이 높든 낮든 누구 하나 빠짐없이 소임을 맡는 것이 원칙이다. 3개월 동안 매일 최소 8시간 이상 정진하는데 일주일간 잠도 자지 않고 눕지도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기도 한다. 해제 전날이 되면 사용하던 좌복과 이불을 세탁하고 옷을 수선한다. 해제날에는 머물던 요사채와 짐을 정리한 후 법회에 참석한다. 조실스님의 법문이 끝나면 스님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하안거는 마무리된다.
3개월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게다가 전국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제한된 장소에서 지내는 건 스님들이라고 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박부영이 쓴 《불교풍속고금기》를 보면 안거와 관련한 여러 갈등(?)을 엿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소임을 정하는 일이다. 공평하게 소임을 나눈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쉬운 소임과 어려운 소임이 있을 것이고, 법랍이 높은 스님에게 맡기기에는 부담스러운 소임이 있을 수도 있다. 책에 언급된 가장 어려운 소임은 동안거 때 불을 맞추는 소임이라고 한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온도 변화가 극단적인 대한민국의 기후 때문에 고통받는 직업 중 하나가 기차(또는 지하철) 기관사이다. 기관사는 온도 때문에 수많은 민원에 시달린다고 한다. 선방 역시 누구는 덥다 하고 누구는 춥다 하여 온도 맞추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이 책이 출간된 건 2005년이라 18년이나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겠지만 이런저런 알력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수행자들이 모인 공동체도 이럴진대 중생들의 공동생활은 어떠할까.
피와 애정으로 묶여있다 하여 신성시되는 가족 역시 갈등에서 비껴갈 순 없다. 제79회 아카데미 각본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미스 리틀 선샤인(원제: Little Miss Sunshine)>은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한 가족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후버 가족인데 누구 하나 범상치 않다. 마약 때문에 양로원에서 쫓겨났지만 여전히 마약을 끊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여자 타령을 하는 할아버지 에드윈, 사람을 승자와 패자 딱 두 종류로 나누고서 입만 열면 아무도 듣지 않는 ‘9단계 성공 이론’을 떠들어대지만 정작 돈은 한 푼도 못 벌고 있는 아빠 리처드, 2주 내내 저녁 메뉴로 똑같은 패스트푸드 닭 날개 튀김을 내놓는 엄마 셰릴, 철학자 니체에 심취해 있는 데다가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조종사가 되기 전까지는 말 한마디 안 하겠다며 9개월째 입을 닫은 장남 드웨인, 안경을 끼고 통통한 뱃살을 가졌지만 어린이 미인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목표인 막내딸 올리브가 후버가족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셰릴의 동생 프랭크가 후버 가족에 강제로 합류한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에 관한 최고의 학자라고 주장하는 프랭크는 애인과의 스캔들 때문에 사랑도, 직장도, 명예도, 집도 잃고 자살 시도를 했지만 실패하고 누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집안은 파산 직전이고, 대화의 99%가 언쟁인 부부와 다른 인물들도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느라 후버가족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유일하게 가족 모두의 사랑을 받는 올리브가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게 되자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온 식구가 함께 캘리포니아로 출동하게 된다.
이들이 탄 구닥다리 폭스바겐 밴은 처음부터 불안하더니 결국 클러치가 고장 나 출발할 때마다 식구들이 버스를 밀다가 차례로 뛰어 올라타야 하고, 경적마저 고장 나는 바람에 운행 내내 빵빵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가족이 사는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 대회가 열리는 캘리포니아 리돈도(redondo) 해변까지는 차로 꼬박 이틀이 걸리는 거리. 밴의 상태만큼이나 여행도 엉망진창이다.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여행 도중 일어나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스러운 자잘한 사건사고와 ‘그것이 알고 싶다’스러운 대형 사건사고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영화에서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을 담당하던 올리브 역시 후버 가족의 일원답게 크게 한 건을 터트려 등장인물들과 시청자까지 모두를 기겁하게 만든다. 올리브가 공연 도중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무대에 난입한 가족들은 합심하여 올리브를 향한 비난과 경악을 다 같이 짊어지는데 총 102분의 상영시간 중 이 5분이 유일하게 후버 가족이 가족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결국 경찰에 연행된 이들은 다시는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열리는 미인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훈방된다. 고장 난 밴을 탄 이들은 여전히 파산 직전에다 온갖 문제가 도사리는 ‘홈 스위트 홈(Home sweet home)’을 향해 출발한다.
이렇게 쓰니 굉장히 심각하고 우울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는 놀랍게도 코미디 영화이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뭐 하나 좋게 해결된 건 없고, 변화된 사람도 없어 갈등-반성-변화-화합이라는 공식을 통해 가족애를 강조하는 기존의 가족영화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래서 같은 범주로 묶어도 되나 싶은 희한하고 아찔한 가족영화이다.
후버 가족은 누가 봐도 콩가루 집안이라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민음사)’고 했지만 행복한 가정이라 하더라도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다.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공동체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롯된 여러 문제들이 존재한다. 산적한 문제들을 헤쳐 나가며 개인으로서 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사람들은 화내고, 울고, 싸우고, 웃으면서 자신의 욕망을 뚜렷이 들여다보고 타인의 욕망과 타협한다. 공동체 역시 있던 사람이 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목표와 규모를 바꾸기도 하면서 부단히 변한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이런 과정을 잘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은 지금 비록 실패의 구렁텅이에 있지만 그 사실에 아랑곳없이 실패를 툭툭 털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서로가 이해가 안 되고 미워죽겠지만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과감하게 손을 내밀어 밝음으로 이끈다. 한 사람이 들어오고 한 사람이 빠졌지만 이들은 여전히 후버 가족이다. 이처럼 함께 산다는 건 따로 또 같이 나아가는 것이다.
함께 사는 일이 힘에 부치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공동체의 지향점을 대조해서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거나 정 안 되면 이별을 고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나의 목표를 잊고 ‘다 함께’에 잠식되면 결국 공동체에서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천덕꾸러기가 된다. 내가 온전히 서야 따로 또 같이 나아갈 수 있다.
승가에서는 안거가 있는 여름과 겨울을 공부철이라 하고 봄과 가을을 산철이라고 한다. 안거 동안 깨달음에 닿고자 치열히 수행하는 스님들처럼 우리 재가불자들도 나를 바로 세우는데 매진하면 더위를 물리침은 물론이고 함께 사는 지혜도 얻게 되지 않을까.
사진 출처
1. 대한불교조계종 출가-출가이야기- 언론에 비친 출가, '불기 2557년 동안거 결재 법어'
http://monk.buddhism.or.kr/bbs/board.php?bo_table=1030&wr_id=4
2. 위키피디아, '미스리틀선샤인'
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C%8A%A4_%EB%A6%AC%ED%8B%80_%EC%84%A0%EC%83%A4%EC%9D%B8
3. IMDB, 'Little Miss Sunshine(2006)' Photo Gallery
https://www.imdb.com/title/tt0449059/mediaind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