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시나요?
아래는 최근에 쓴 글이에요.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나와 타인을 어떻게 잘 분리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거든요. 잘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노이즈 캔슬링' 이라는 단어가 좋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단어는 차갑고 기계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따뜻한 울림을 주기 시작했다.그 변화는 꽤 우연이었다. 아침 출근길, 버스 안 낯선 얼굴들과 귀를 두들기는 발소리를 마주한다. 어떤 날은 이어폰 속 노래에 파묻혀 사람들의 숨소리조차 잊고 무심히 지나갔다. 하지만 어떤 날은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리가 '소음'이라는 이름 아래 묻혀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소리들은 타인의 삶 이야기와 흔적인데 말이다.
처음엔 그저 노이즈 캔슬링이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타인과 소통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목적을 위해 걷는 이들의 모습. 그건 너무 정없지 않나요. 그 말대로였다. 타인과의 유대, 삶을 부대끼며 생기는 파열음조차 '노이즈'라는 이름으로 캔슬되는 세상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오래된 헤드셋을 꺼냈다. 하루 한 시간, 오롯이 나를 위해서. 자유롭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때론 밀린 업무를 꺼내 한 숨을 푹 내쉬기도 한다. 그래도 좋았다. 헤드셋을 쓰고 버튼을 누르면, 세상이 고요해진다. 그 안에서 나는 비로소 참된 자유를 느낀다.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의 소음—그들의 고민, 나의 조언, 허공에 떠도는 문장들의 잔향—이 머릿속을 짙게 묻는다. 하지만 헤드셋을 쓰고 버튼을 누르면, 바깥의 신선함이 묵은 잔향을 데려가고 나만의 공간을 연다.
노이즈 캔슬링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내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문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몰힙하는 시간의 소중함. 어쩌면 현대인에게 필요한 건 이 시간을 조절하는 버튼이 아닐까. 타인에게 집중하는 순간과 나를 위한 시간은 구분하는 일은 늘 어렵기만 했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헤드셋을 끼고 버튼을 눌러 타인과 나 사이의 시간을 조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