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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힘들다고 했을 때, 나는

by 나르샤

하고 싶은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도 믿었다.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유롭지 않았다.

아이가 울 때마다 내 탓 같았고, 남편의 한숨에도 내가 부족한가 싶었던 10년 전. 어떤 10년을 보냈는지 돌아보니, 이제야 보인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이 생겼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았으며, 내 속에 욕심이 가득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현재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고 싶은 모습으로 한 발씩 다가간다. 그 모습에 다가가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내일 또 나는 한 발을 내디딜 테니까. 이것을 계속 반복 연습 중이다.

나의 불안이 잠잠해지니, 마치 안개가 걷히듯 아이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짜증 내는 것처럼 보였던 표정이 사실은 피곤함이었고, 떼쓰는 것 같았던 목소리가 사실은 도움을 구하는 신호라는 걸.

어제 남편에게 퇴근 후 소고기를 구워달라고 말했다. 남편은 많이 피곤해서 다른 걸 먹자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가슴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을 것이다. '나는 안 힘드냐', '나는 하루 종일 뭐 했는데', 그런 말들이 목까지 차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이 그냥, 인정이 된다.

"그럼 내가 오리를 구울게. 10시에 경은이가 오면 소고기 구워줄게."

이렇게 쉬운 대화가 과거에는 어려웠다. 남편이 힘들다고 하면, '나는 안 힘드냐'는 마음이 화산처럼 분출했었다. 내 힘듦을 먼저 알아주지 않으면 억울했고, 내 수고를 인정받지 못하면 화가 났다.

지금 이렇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많이 힘든 하루였구나. 오늘은 내가 힘이 있어. 맛있게 구워줄게. 힘내!"

나와의 평화가 타인과의 평화가 됨을 느낀다. 내가 나를 인정하니, 남편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나에게 너그러워지니, 아이들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늘 이렇지는 못한다 해도, 또 이런 날도 있을 테니까 괜찮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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