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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르샤 Oct 03. 2020

Thank you. My hand.

엄마 인생 새로고침 프로젝트

   

 18cm 이것은 팔목 주름부터 중지 끝까지 내 손의 길이다. 손바닥은 넓적하고 손가락은 길다. 학원 강사 시절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가 싫어서 손톱은 바짝 깎았다. 지금도 바짝 깎아야 기분이 좋다. 긴 손톱이 어색한 이유. 손가락 마디는 굵다. 결혼반지를 꼈을 때, 마디 부분에서 반지가 손가락을 통과하는 게 어려웠다. 그렇게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마디 안쪽에서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손등의 혈관은 울퉁불퉁 솟아있다.     



  

설거지를 할 때는 고무장갑 없이 맨손으로 했다. 깨끗한 로션 발라주는 일은 드문 일이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면 얼굴이 가려진다. 주변에서는 `남자 손 같다`라고 말했다. 남성적 이미지가 쌓여 갈수록 내 손은 주머니 안에 있었다.  나의 외모에 어울리는  손은 작고 아담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남자 친구들과 악수를 하면 손이 크다고 한 마디씩 했다.  귀엽고 앙증맞은 손이 부러웠다. 하얗고 피부가 미끌미끌한 손도 부러웠다.    



  

손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많은 일을 도와주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상 내 손은 칠판 판서를 한다. 나의 설명을 글과 그림으로 옮겨서 듣는 이의 이해를 도왔다. 손은 나에게 오랜 기간 돈을 버는데 큰 몫을 했다. 우리 딸에게 머리를 쓰다듬어주거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줄 때도 손이 있었다. 아이들은 포근한 손을 가져다 대면 얼굴에 미소가 번졌었다.    




  키보드를 치는 지금, 운동화의 뒤축을 펴서 발에 신발을 끼울 때, 저녁 세안을 할 때, 예쁘게 로션을 바를 때도 넌 24시간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바로 실행하였다. 책 쓰자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너무 좋아서 깨알 같은 물개 박수를 쳤다. 그때 내 마음을 표현한 것도 손이었다.    




  집안 구석구석 먼지가 쌓인 곳도 손이 있으면 뻑뻑 문질렀고, 살짝살짝 털어내기도 했다. 문이 잘 안 닫히면 망치 대신 주먹으로 쿵쿵 치기도 했다. 손이 하루 종일 쉼 없이 움직이는 줄을 미처 알지 못했다. 손에게 고마운 일을 쓰고 나니 예쁘지 않다고 타박했던 일이 미안하다.     




 외형보다는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것이 내 삶의 중요한 가치이고 그렇게 살아가려 애써왔다. 그러나 나의 신체에게는 그러지 못했음을... `외부에서 이렇게 생긴 것이 좋은 거야.`라는 기준으로 나의 몸을 봐왔다. 글을 쓰다 보니 손은 충분히 자신의 임무를 100% 다했다. 공로상을 줘야 한다. 포상으로 1일 휴가를 생각하다 이내 마음을 접는다. 파업하지 않도록 고마움을 가득 담아 나의 손을 쓰다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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