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키와 아직 친했을 때의 어느 날, 근처 괜찮은 카페에서 만나 브런치를 먹고 있었다.
주로 소피와 나, 디키 이렇게 셋이서 같이 놀곤 했지만 오늘은 소피가 데이트약속이 있었다.
"Did you hear from Sophie about this guy she is seeing? I hope it is working out well. It seems like it since she didn't show up this morning?"
"Well, I don't know, Narsha. She has gone through all those freaks and is still dating someone without a break."
"Hmm... no one knows, maybe this time, it will be a good person, you know? Sometimes people move on by seeing good people. I think that's where she is at."
"No... that's not it. I've known her for a long time, and I should mention. I think she is co-dependent."
방 두 개짜리 집을 사고 나서 약 1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나는 월급의 절반을 대출이자를 갚는데 쓰고 사실상 모이는 돈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혼자서 살겠다고 버텼었다.
혼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사생활 보장과 자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특이하게도 내가 쓰고 있는 것에 더해서 2인용 매트리스를 하나 더 사고, 치우고, 사고, 처분하는 짓을 그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방을 내놓고 입주자를 구하려면 그 사람이 어떤 체구이건 간에 2인용 크기의 묵직하고 커다란, 강력한 스프링 때문에 한 번 공기를 먹으면 어디 접어서 박아둘 수도 없는, 방안에 진짜 코끼리를 둔 것 같은 그 웅장한 존재를 들여놔야 한다. 사람은 분명 한 명인데, 왜 항상 두 명 치를 준비해둬야 하는 것일까.
방 크기가 넉넉할 때는 그렇다 치고, 방 크기가 작아 더블침대를 놓으면 그 옆으로 책상 하나만 겨우 들어가고 의자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 해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방의 절반을 침대에게 내주는 것을 선호한다.
다니던 회사를 예상치 못하게 퇴사하고 금전적인 한계를 느낀 나는 결국 입주자를 들이기로 결정했다. 이 전까지는 항상 내가 더블침대를 쓰고, 입주자는 1인용 침대나 혹은 싸게 구매한 2인용 침대를 놓고 구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매트리스를 사는 대신, 내가 쓰던 질 좋은 매트리스를 세를 내어주는 방에 두고 한국에서 쓰던 방식의 순면요 비슷한 것을 거금을 주고 일본에서부터 주문했다. 그리고 목공학교를 다니면서 만들었던 침대 다리를 이용해 주문한 요에 사이즈를 맞춰서 동양식 침대를 짰다. 이곳 문화 특성상 이 딱딱한 나무침대에 요 하나 얹어놓은 것을 선호할 입주자는 없을 것이지만, 적어도 이 침대와 요는 접거나 분해해서 보관할 수 있어 필요하지 않을 때 공간을 차지하지 않을 것이므로, 처분하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을 것이다.
만으로 서른셋, 한국 나이로는 넷이나 누군가는 다섯이라고도 할 나이가 되기까지, 성인이 된 이후 나는 1인용 크기의 침대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약혼자와 결별한 후 누군가와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한지도 1년 하고 2개월 즈음이 넘어간 후, 어쩌면 가장 2인용 침대를 구비해두어야 할 시기에, 내 손으로 1인용 침대를 짰다.
방을 내주기까지 이 침대를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을 수도 없이 하면서, 왜 나는 2인용 혹은 그 이상의 침대 크기를 포기하기가 어렵나 질문하게 된다. 최근에는 데이트조차 안 하면서도 2인용 침대를 혼자 쓰며 베개는 항상 두 명이 잘 수 있게 정돈해 두고, 누가 옆에 있는 것처럼 한쪽으로 치우쳐 잤다. 마치 언젠가는 누군가가 이 자리를 채울 것처럼, 아무도 없는데도 어느 날 내 삶에 들어올 그 존재를 의식하면서.
그리고 궁금해졌다. 2인 침대를 고집하고, 두 명이 누울 자리가 보이지 않으면 다음 광고로 넘어가는 그 많은 독신들은 과연 나와 같은 심리로 그러는 것인지. 나처럼 그렇게 불확실한 미래의 어떤 존재를 위해 그 공간을 당장 절반 뚝 떼어 비워두는 것인지.
9년을 여러 희로애락을 거치면서 사귀어온 남자친구와 드디어 결별했을 때는 이 정도면 만족하고 타협하고 살아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에 진절머리가 나있었다. 새로운 문화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서, 나에게도 선택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와 결별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과 만남과 이별을 거치면서, 누구를 만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된 것 같다.
어느 순간, 어릴 때 읽던 동화책이었는지, 티브이에 나오는 숫한 연애 관련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누군가를 만나 자식을 낳길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 때문이었는지, 난 항상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그 의무감을 나 자신보다 우선으로 두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통하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당연히 행복하고 축복받을 일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연애를 하면서 공통점이 있었다면, 결국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관계가 지치고, 부탁받지도 않았는데 내 공간이나 시간을 희생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맴돌고, 그 사람은 그걸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해하고, 그 사람때문에 내 삶이, 내 정체성이 없다고 탓하는 이런 식의 꼬리의 꼬리를 문 우울감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는 데에만 성인이 된 후로도 12년, 약혼자와 결국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걸렸다.
관계에 대한 기대감에 의해 형성된 그 무언가로부터 나를 해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단단하게 뿌리 박힌 상호의존성은,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는 혹이나 상처 따위가 아니다. 마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여러 순간에 걸쳐 잘게 잘게 칼집을 내어 그 안에 심어지고, 내 세포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유착되어 있는 그런 종양과도 같다. 이 것은 내 몸 곳곳에 스며있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인지 아니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심어져 그렇게 자아와 충돌하는 것인지 구별하기가 힘들다.
얼마 후 정신과 상담을 통해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같은 날 지나간 시간을 초단위로 세어주는 앱을 깔았다. 원래 앱의 용도대로 술을 안 마신 날짜를 세려는 것도 아니고, 우울증 약을 얼마동안 먹었는지 관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얼마동안 내가 관계를 찾아 헤매지 않고 버틸 수 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모종의 결핍감이 점점 옅어지는지 관찰하며 이겨내야 했다.
"I wanted to be sober from co-dependence."
그렇게 1년 하고 3개월이 지났다. 날짜를 세던 앱은 오래전 지워졌고, 약은 몇 달 전에 끊었다. 1인 침대에서 자고, 쉬는 날에는 이렇게 글을 쓰고, 내 입맛대로 그림을 그려 집에 걸어두고 있다.
이렇게 혼자를 인정하는 여정을 한 단계 더 나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누군가를 만나 온전히 사랑할 준비가 된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올해가 기대되는 군...

*Cover image by pvproductions